[Opinion] "노래는 저의 운명이죠" / 영화 -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 [시각예술]

마가렛트는 부를 가진 여인이다.
글 입력 2016.03.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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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트 여사.jpg
 
 
 
 
 
 
유니버설뮤직의 초대로 15일 화요일에 홍대입구 8번 출구 근처의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을 관람하였다. 사상 최악의 소프라노였다는 플로렌스 젠킨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영화. 일전에 플로렌스 젠킨스는 아니지만, 어느 소프라노가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르는데 음이 올라가지 않아서 팔을 휘두르고 몸을 비틀며 오페라 리허설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음은 흔들리는 데다 올라가지도 않고 모션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지려고 했지만 최대한 참았는데 소프라노를 둘러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죄다 웃음이 터질 듯한 걸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결국 빵 터지고 말았었다. 이 영화도 그런 구성일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시놉시스
 
1920년 파리, 음악을 사랑하는 남작 부인 마가렛트의 자선 음악회가 열린다. 참석한 손님들은 그녀의 노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만 이들에게는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바로 마가렛트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최악의 음치라는 것. 급기야 신문에까지 소개된 그녀의 공연, 이에 용기를 얻은 마가렛트는 정식 콘서트를 열겠다고 선언하는데...



후술하는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영화 리플렛에 보면 "화려한 풍자", "인상적이며 감동적이고 재미있다!"라는 평이 쓰여있다. 영화를 보기 전엔 이 두 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아주 뛰어난 희비극"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평이 가장 시선을 끌었다.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끝없이 연출되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끝없는 외로움과 결핍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마가렛트는 부를 가진 여인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조르쥬는 남작의 지위를 가졌으나 부는 없었던 남자였다. 마가렛트와 조르쥬가 애당초 사랑으로 결혼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조르쥬의 입에서 '아내는 내 지위를 보고 결혼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신랄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의 시작이 사랑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마가렛트는 남편을 사랑하게 된 것임에 틀림없다. 극의 초반부에서 나타나는 전쟁 고아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에서 마가렛트는 자신이 노래할 순서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편이 도착해 있는지를 집사 마델보스에게 물어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음악회 시간에 늦추기 위해 일부러 차를 멈추고 보닛을 열어 기름을 손에 묻히는 조르쥬의 모습을 보면 그가 마가렛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마가렛트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조르쥬가 왜 음악회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않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르는 마가렛트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운데 그 주변에선 그 누구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는다. 그녀가 음치라는 것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 그 음악클럽의 철칙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관전하는 신문기자 루시앙과 키릴, 그리고 당일에 초청된 성악가 아젤은 웃지 못할 상황을 목전에 두고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인다. 아젤은 마가렛트가 음치인 것을 본인이 모를지 의아해하고, 루시앙은 사람들의 반응을 재미있게 여기며 키릴은 마가렛트가 야성적이라며 치켜세운다.


이 날을 기점으로 세 사람은 마가렛트와 엮인다. 후원자가 없어 그저 간간히 노래를 하는 것밖에 없었던 아젤은 해외를 오가는 메조소프라노로 성장한다. 루시앙과 키릴은 마가렛트의 공연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은 기사를 싣고 마가렛트와 엮이게 된다. 두 남자는 마가렛트를 돈줄처럼 여기는 모습을 보이며 그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접근한다. 특히 키릴은 1차대전이 끝나고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그 시대(1920년)에 급진주의자였는데, 자신과 같은 급진주의자들이 모이는 집회 무대에 마가렛트를 세우기도 했다.


남편의 지인들로 구성된 음악클럽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노래를 부르는 게 다였던 마가렛트에게, 찬사로 일색된 기사와 외부 무대의 경험은 아주 색다른 자극이 되었다. 그녀는 조르쥬에게 실제로 음악당에서 콘서트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런 마가렛트를 보는 조르쥬는 아주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단순히 마가렛트가 음치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수준을 넘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가 왜 그렇게 마가렛트에게 애정없이 대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조르쥬 자신과 마가렛트가 속한 음악클럽의 또다른 일원인 프랑소와즈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질척거리는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자신의 꿈에 매진하는 마가렛트의 모습은 너무 밝아서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사실 마가렛트가 이렇게까지 현실감이 없는 것은 비단 남편 조르쥬만의 탓은 아니었다. 조르쥬와 더불어 집사 마델보스가 아주 적극적으로 마가렛트를 속이는 데 가담했기 때문이다. 마델보스는 마가렛트의 공연이 끝나면 팬들의 선물이 왔다며 저택 1층을 가득 채운 꽃다발들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게도, 마델보스가 다 주문한 것이었다. 마델보스는 마가렛트가 오페라 가수처럼 분장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마델보스는 마가렛트를 꿈 속에서 살게 만들었다. 마델보스에게 마가렛트는 최적의 피사체였기 때문이다.


꿈만 바라보며 사는 마가렛트는 루시앙을 통해 오페라 가수 페지니를 선생으로 영입한다. 페지니는 마가렛트의 노래를 듣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마델보스의 눈짓과 마가렛트의 부를 감안해서 흥미롭다는 평을 하고는 마가렛트의 노래연습을 돕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 실질적인 교습을 했다기보다는 그저 교습의 구색만 갖추고 돈을 뜯어내기에 급급했다고 보는 게 맞다. 애당초 마가렛트가 교습으로 교정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대감도 없이 돈만 보고 교육에 임했던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가렛트는 무대에 서지만 결국 무리한 탓에 무대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실신했다가 병원에서 다시 깨어난 마가렛트는 기억이상증세를 보인다. 자신이 왕년에 세계를 돌아다녔던 오페라 가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조르쥬는 결국 의사와 함께 논의한 후 마가렛트에게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의사는 마가렛트의 동의를 구해 그녀의 노래를 녹음한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로 한 당일, 조르쥬는 마가렛트가 진실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에 저택에서 병원에 있는 마델보스에게 전화한다. 당장에 그 실험을 멈추라는 것을 전달한다. 그러나 마델보스는 자신의 피사체인 마가렛트의 완벽한 추락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기에 조르쥬의 명에 불복한다. 의사와 마델보스뿐만이 아니라 아젤과 루시앙, 키릴, 페지니와 그의 주변 사람들까지 초청한 그 자리에서 마가렛트는 자신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다.
결국 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마가렛트. 그런 그녀에게 달려들어 조르쥬는 그녀를 껴안는다. 그 모든 상황을 관전하던 마델보스는 자신이 그리던 피사체의 완벽한 추락을 목도하고 이를 사진기에 담으면서 영화는 끝맺어진다.




극의 초반까지만 해도 마가렛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그저 웃음이 나오기만 했다. 그런데 조금씩 내용이 전개될수록 마가렛트의 노래에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서글프게도 마가렛트는 주변 모든 인물들이 페르소나를 내려놓지 않은 상태로 그녀를 대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모든 것을 터놓고 소통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꿈만을 생각하고 꿈에만 매진하며 그것을 위해 사는 마가렛트는 항상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너무도 슬프고 외로워보였다.

마가렛트는 극 중에서 지속적으로 조르쥬에게 '당신을 위해 노래한다'는 표현을 한다. 그녀는 밝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남편 조르쥬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원하던 그 사랑은 끝내 받지 못하고 극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버리던 마가렛트의 마음 속을 가득 채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충격? 배신감? 그것도 아니면 절망? 관객들이 무엇을 생각하든 결국 절대 고독 가운데 있었던 마가렛트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감독 자비에 지아놀리 감독은 플로렌스 젠킨스의 음악을 듣다가 이 영화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음치인지 모르는 소프라노가 첫 공연을 열고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도 그녀처럼 각자만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라며 이 영화의 제작 의도를 밝혔다.

현실이라 믿고 싶은 것을 현실로 인식하고 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 사람은 무너지는 것 같다. 마치 마가렛트가 그랬듯이 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스스로를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그런 영화였다.
자아성찰적인 의미를 떠나서도 이 영화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불어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그리고 프랑스 영화 특유의 정서가 묻어나는 연출에 빠져들 수 있는 영화였다. 특히 마가렛트 여사 역의 까뜨린느 프로의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음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사랑스러움과 외로움, 거짓과 진실 그 모든 간극을 보여주는 영화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 이 작품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에게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쌉싸름한 메세지들을 무수히 던질 것이다.



** 마가렛트 여사의 플레이리스트
들리브,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케루비노의 아리아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
비제, <카르멘> 중 카르멘의 아리아 ' 하바네라'
벨리니,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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