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그리고 소설과 영화사이

글 입력 2016.02.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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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각본으로 하는 국내외 영화들 중 굉장히 흥미로운 두 작품을 알게 되었다. 2001년도에 개봉한 나카에 이사무 감독의 「냉정과 열정사이」(Between Calm and Passion)는 동명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를 각색한 작품이다. 우선 이 소설은 일본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공동 저작이고, 월간지에 에쿠니 가오리가 이야기를 쓰고, 다음 간행 때 쓰지 히토나리가 이어쓰는, 교대 연재를 하는 방식으로 쓰여 졌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에쿠니는 여자 주인공 아오이의 시선으로, 쓰지는 남자 주인공 아가타 준세이의 시선으로 그린다. 거기에 더불어 우리나라에 출판되는 과정에서 부부 번역가가 각자 한 권씩 맡아 번역 했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흥미롭다.

[문학에서 영화로의 각색]
  사실 문학과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작품에서도 서로의 모티브 혹은 이야기를 가져오는 모습들은 아주 예전부터 자주 보였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스페인 화가 베라스케스가 그린 ‘젊은 왕녀의 초상’에서 모티브를 따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피아노곡과 관현악곡을 만들었고, 이 음악을 모티브로 삼아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를 썼으며 이 소설은 내년 2016년에 영화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이처럼 한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 각자의 특성을 형성하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예전부터 이루어져 왔던 창작 방법인 것 같다.  

  특히 지금 다루고 있는 두 장르 문학과 영화는 서사예술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두 가지는 문자로 이루어진 문학작품을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시켜 영상화하는 ‘각색’이라는 방법을 통해 서로 발전해 가고 있다. 문학을 영화화 하는 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의 어려움에서, 또는 상업적 흥행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다른 고급예술에 비해 저급 예술로 인식 되었던 영화장르가 오랫동안 예술성을 쌓아왔던 문학을 통해 영화를 미학적이나 예술적으로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왔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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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이야기 Blu 와 여자의 이야기 Rosso,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두 가지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두 남녀 주인공, 두 명의 작가, 그리고 부부 번역가가 만들어낸 이 독특한 작품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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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각이라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풍경묘사가 자세히 그려지기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것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분명 이국적인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자 영화의 촬영지였던 피렌체 두오모는 두 작품을 통해 더욱 유명한 여행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페렌체 두오모‘ 하면 ’냉정과 열정 사이‘를 떠올리는 일종의 공식이 된 셈이다. 그 만큼 두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 가는 데에, 특히 두 사람의 만남에서 감동을 받는데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탈리아의 클래식한 도시들과 피렌체의 두우모에서의 상봉 장면은 소설로 읽는 것보다는 영화로 보는 것이 더 뚜렷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두오모의 풍경을 360°로 보여주면서 마치 실제로 그 곳에 간 기분까지 들게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정해진 형상을 만들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을 도와줄 수도, 방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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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의미전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경음악 등의 다른 요소들이 사용된다.
  영화에서 배경 못지않게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영화만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냉정과 열정사이를 검색해보면 영화 수록 음악 관련된 것들이 추천 검색어로 가장 많이 뜨고 있다. 영화에서 배경음악은 등장인물들의 감정 선을 이끌거나 나타내고자 하는 분위기나 의도를 극대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시작부터 두 남녀의 대화하는 목소리에 깔리는 잔잔한 음악이 아련한 느낌을 주면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10년 만에 만나는 두 사람은 소설에서는 짧고 어색한 대화로 풀어지지만 영화에서는 10년 전 들었던 첼로선율이 들려오면서 두 사람의 매개체로서도 작용한다. 점점 극으로 달하는 웅장한 음악이 들리면 그 감정에 몰입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록곡을 들으면 두 사람이 피렌체에서 상봉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소설에서는 인물의 감정전달이 세부적으로 표현되지만 
영화에서는 영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인물의 표정이나 행위 등에 의해서만 국한된다. 
  특히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는 두 인물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만큼, 같은 사건에서 두 사람의 각자 다른 심리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특히 남자 주인공의 독백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여자의 세부적인 감정은 행동이나 표정으로만 알 수 있을 뿐 소설에서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두 가지 시점으로 사건을 이끌어간다는 이 소설의 큰 특징이 영화에서는 한 풀 꺾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말하기 방식이라면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보여주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두 명의 화자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감정을 각자의 어조로 이야기한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소설 속에서 단 한 줄로 표현될 수 있는 감정이 수많은 동작과 현상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와 소설은 서로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글로써 나타낼 수 있는 섬세하고 구체적인 표현과, 영화로써 나타낼 수 있는 영상과 청각의 조화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 작품 『냉정과 열정사이』는 소설과 영화 그 중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독자를 공감하게 만드는 섬세하고 구체적인 심리와 감정묘사는 분명 소설이 우위지만 그러한 부분을 영상과 음악으로 보여주며 감상자를 몰입하게 하는 효과는 분명 영화가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만큼 두 작품을 비교하며 읽고 본다면 재미가 두 배로 더해질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정나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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