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파수병이 되길 자처한 사람, 김수영 [문학]

글 입력 2016.02.2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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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들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구름의 파수병>. 김수영. 1956.
 
 

   시인은 그냥 ‘나를 들여다본다.’라고 써도 될 표현을 굳이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라고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자기 자신을 객관화함으로써 좀 더 자신을 성찰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만약에’ 라는 가정법을 사용해 우연성을 통한 약간의 거리감을 두어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듯이 만들어 보다 엄격하게 나 자신을 평가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를 배반하는 것’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과 현실 생활의 괴리감이 응고될까봐 두려워하는 시인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 말쑥한 부엌,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한다. 시인으로서 시 시계에 몰두하여 글을 쓰는 삶과 현실의 일상성에 안주하여 편하게 사는 삶 사이에서 작가는 갈등하고 불안해한다.
 
  시란 문학의 한 장르로서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시란 다른 장르의 글과는 다르게 형식이나 내용 모든 면에서 자유로우며 마음껏 묘사하고 인용하고 그대로 표출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사사로운 감정이나 사상 등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현실이다. 마치 시와는 대조적인 고착되고 딱딱한 비문학적인 글처럼 말이다.
 
  구름은 저 하늘에서 시인이 서 있는 높은 산정도, 들판의 민들레도, 가난한 아이의 눈물도 내려다 볼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자유로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메마른 산정에서 자신의 모습과 극도로 대비되는 구름을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구름과 같은 삶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단지 구름의 파수병이라는 존재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시인은 약간의 변화를 추구고자 노력한다. 그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어도 다른 이가 와서 자신의 꿈을 깨워주고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고 말한다. 아무라도 자신을 틀에 박힌 이 구질구질한 일상 속에서 구제해주고 따끔하게 혼내주어 변화를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도 각자에게 정해진 기준이나 잣대가 있을 것이다. 나만의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이는 쉽지 않고 결국은 새로운 도전과 변화가 두려워 현실에 정착하고 마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다. 시인은 이렇게 자신처럼 멈춰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지 말며, 구름처럼 자유롭게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를 우리에게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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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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