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주문화여행: (3)앤디워홀이 마신 코카콜라와 내가 마시는 코카콜라는 다르다 [여행]

사전에 모든 것을 계획하고 찾아왔다면 이렇게 반갑고 뿌듯할 수 있었을까.
글 입력 2016.01.1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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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 KIMO (구덕진)

"A J라는 이름은 역시 게임에서 내가 사용한 이름이고 Artist Jin이라는 이름이기도하다. 복잡하고 여러가지 이름을 사용했지만 결국 나는 한국이름 구덕진과 작가이름 A J Kimo 이 둘을 사용한다. (……) 어느나라 국적인지도 알 수 없으며 이 사람이 동양사람인지 서양사람인지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 이름 하나에 별 장난을 다 친 것처럼 보인다. 분명 많은 장난을 쳤고 그 장난 속에 탄생한 것이 내 이름이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만들어내고싶다. 그래서 이름조차도 내 스스로 만들어내고 사용하고 싶다."

출처: 작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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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없던 무언가를 마주하면 대부분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정말 반갑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이번 제주도여행에서는 완벽한 전자다. 이름부터 특별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제주도 연동의 한 작은 카페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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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덕진, Coca-Cola(c), 2012 / (아래) Andy Warhol, Coca-Cola Bottles, 1962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코카콜라 그림이 흡사 앤디워홀의 것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비슷하다 느꼈던 내 생각이 이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똑 부러지게 작가는 말한다. <앤디워홀이 마신 코카콜라와 내가 마시는 코카콜라는 다르다>라고 말이다.






그는 등가교환을 말한다. 등가교환이란 마르크스경제학에서 나온 말로 상품과 화폐가 서로 동일한 가치로 인정되어 교환된다는 이론이다. (……) 사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등가교환이다. 과거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앤디워홀이 이 등가교환을 기반으로 대중이라는 트렌드를 끌고 나와 평등이라는 환상을 심어줬다는 점과 비교해 본다면 부등가교환을 기반으로 한 그의 예술론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그는 생산을 위한 생산을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목표가 소비를 위해 생산되는 코카콜라의 양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인류는 지금까지 소비를 위해 생산을 해왔다. 이렇게 생산된 것들을 결국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생산을 위한 생산은 결코 소멸하는 법이 없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한의 생산인 것이다. 방법적으로 대량생산이라는 점에서 앤디워홀과 흡사하지만 앤디워홀의 그것이 소비를 위한 생각이었다면 그는 무한의 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앤디워홀이 마신 코카콜라와 그가 마시는 코카콜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2012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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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것을 대중 앞으로 가져와 하나의 ‘소비상품’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앤디워홀이다. 그는 예술을 ‘소비하는(혹은 할 수 있는)것’으로, 그리고 이러한 소비로 예술이 상품으로 대량생산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즉 ‘소비’가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소비가 일어나야 이 경제가 굴러가는 사회이다. 수요가 없는 것들은 존재 이유가 없어지고 결국엔 버려진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품’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대중들이 찾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존재의 이유’는 바로 누군가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 작가는 소비가 아닌 ‘생산’에 주목하고 있다. 앤디워홀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거부한다. 아마 그는 ‘소비를 위한 생산’이란 결국 어떠한 무언가가 ‘소비’되는 순간 그것의 가치도 함께 소비되어 잃어버린다고 본 것 같다. ‘소비’가 되는 그 순간에 그것은 본분을 다 한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생산을 위한 생산’은 어떠한가. ‘생산’을 위해 생산되었기 때문에, ‘생산’이 되었다는 것 자체로 이미 가치를 획득한다. 그러니 소멸하지도, 가치를 잃을 일도 없게 된 것이다.

소비중심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꽤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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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이라 스스로 테마를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테마에 맞는 여행을 하고 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사실 나 역시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혼자 돌아다니다가 잠시 쉬어갈 겸 향한 곳에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 테마에 걸맞는 꽤 근사한 컬렉션을 보고 온 셈이 되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이와 같은 '우연한 만남'은 계획하지 않았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전에 모든 것을 계획하고 찾아왔다면 이렇게 반갑고 뿌듯할 수 있었을까.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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