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과 위안부 문제 협상이 주요뉴스로 올라왔다. 이를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 평가는 엇갈렸다. 나는 그 협상 내용을 잘 모른다. 다만 세월호 참사 때와 같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한 가지 뿐이다.
“잊지 않는 것”
나는 그 순간 삶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허허벌판 낯선 허름한 곳으로 종분(김향기)과 영애(김새론)는 끌려갔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들은 일본군 성적학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힘이 없었다.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소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 뿐 이었다. 순응하거나 죽거나. 영애는 그렇게 치욕스럽고 구차한 삶을 놓으려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며, 나라도 영애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나와 영애에게 종분은 이렇게 충고한다.
“죽는 건 쉽다. 사는 게 힘들지…그러니 한 번 버텨내서 살아보자.”
그렇게 종분은 죽지 않고 버텨 결국 살아남는다.
나라면 그 날 일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종분은 그 치욕스러운 순간과 함께 살아남았다. 위안부 생활을 벗어나 고향에 돌아온 종분에게 남아있는 희망은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종분의 위안부 생활에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종분은 결국 고향을 떠나, 그렇게 가족 한 명 없이 평생 홀로 살아간다. 그렇게 꿋꿋이 버텨온 종분은 후손들에게 그날 일본의 만행을 밝힌다. 죽어가며 영애가 종분에게 한 부탁(그 당시 소녀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을 들어주고, 나아가 종분은 많은 이에게 그날 일을 알린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종분과 같이 살아남았다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날을 일을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숨기고 살아갔을 것이다.
여러 작품 속에서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을 보면, 나는 평생 그들의 발끝도 쫓아가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런 작품들을 접하려 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언제가 내가 좀 더 성숙해 지면, 이 부끄러움이 작품 속 훌륭한 인물처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계속 이런 작품들을 보고, 읽고, 듣고 즐길 것이다.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눈길]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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