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특집극 [눈길]을 보고 나서 - 부끄러운 대답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1.05 21: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얼마 전, 일본과 위안부 문제 협상이 주요뉴스로 올라왔다. 이를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 평가는 엇갈렸다. 나는 그 협상 내용을 잘 모른다. 다만 세월호 참사 때와 같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한 가지 뿐이다.

“잊지 않는 것”
 

캡처1.JPG
캡처2.JPG
캡처3.JPG
캡처4.JPG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던 차에, 한 시상식에서 배우 김영옥 할머니 수상 소감을 우연히 듣고 드라마 [눈길]을 보았다. 드라마를 보기 전, 어찌 그 당시 소녀들의 참혹한 심정을 알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또 과거 일이라 그만 덮어 두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미 벌어진 일, 이제 와서 일본한테 사과 받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되먹지 못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내가 [눈길]을 보며, 어느새 드라마 속 위안부 소녀가 되어있었다. 내가 그 소녀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버텨 냈을까? 삶을 포기했을까? 치욕적인 그 순간을 후손들 앞에서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를 보며 나는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나는 너무 부끄러워졌다. 여기에 부끄러운 나의 대답들을 적어 보려한다.
 


나는 그 순간 삶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허허벌판 낯선 허름한 곳으로 종분(김향기)과 영애(김새론)는 끌려갔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들은 일본군 성적학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힘이 없었다.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소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 뿐 이었다. 순응하거나 죽거나. 영애는 그렇게 치욕스럽고 구차한 삶을 놓으려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며, 나라도 영애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나와 영애에게 종분은 이렇게 충고한다.
“죽는 건 쉽다. 사는 게 힘들지…그러니 한 번 버텨내서 살아보자.”
그렇게 종분은 죽지 않고 버텨 결국 살아남는다.
 


나라면 그 날 일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종분은 그 치욕스러운 순간과 함께 살아남았다. 위안부 생활을 벗어나 고향에 돌아온 종분에게 남아있는 희망은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종분의 위안부 생활에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종분은 결국 고향을 떠나, 그렇게 가족 한 명 없이 평생 홀로 살아간다. 그렇게 꿋꿋이 버텨온 종분은 후손들에게 그날 일본의 만행을 밝힌다. 죽어가며 영애가 종분에게 한 부탁(그 당시 소녀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을 들어주고, 나아가 종분은 많은 이에게 그날 일을 알린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종분과 같이 살아남았다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날을 일을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숨기고 살아갔을 것이다.
 
여러 작품 속에서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을 보면, 나는 평생 그들의 발끝도 쫓아가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런 작품들을 접하려 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언제가 내가 좀 더 성숙해 지면, 이 부끄러움이 작품 속 훌륭한 인물처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계속 이런 작품들을 보고, 읽고, 듣고 즐길 것이다.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 [눈길] 공식홈페이지
 

서포터즈6기_홍숙.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