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발한 사회 참여적 예술, 송 진희 작가 [시각예술]

예술 혹은 예술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글 입력 2016.01.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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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기발한 사회 참여적 예술, 송 진희 작가


예술 혹은 예술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회 참여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여러 기교를 살린 고상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저 아름답기만 하면 예술인 걸까? 예술의 역할은 딱 잘라 말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여기,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15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展에서는 현대 젊은 작가들이 “삶 속에 파편처럼 혼재하는 모순들, 기이함, 욕망들을 찾아내고 그 문맥을 읽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상정하고 있다.  


1.-젊은시각새로운시선-type.jpg▲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展은 부산의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전시로서, 부산시립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주제는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다.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이번 작가들은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어떤 기이함을 포착하여 감상자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번 참여 작가는 박 상은(1988~), 송 기철(1982~), 송 진희(1982~), 이 은영(1982~)이다. 

예술과 사회의 접점을 넓히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송 진희 작가의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최초로 계획된 집창촌(集娼村), 충무2동-속칭 완월동-의 성매매 여성, ‘언니’들의 이야기를 그녀는 작품으로 내놓았다.  


KakaoTalk_20151231_214845610.jpg▲ 작품 속에 직접 참여해 글을 읽는 사람들
 

작품은 특이하게도 감상자의 참여를 “적극 장려”하고 나섰다. 작품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 ‘만지지 마시오’ 경고문구 대신, 어서 와서 ‘앉아서 보세요’라는 당돌한 친절함이 바닥에 적혀있었다. 나는 ‘무엇을’보라는 말인지 궁금해 자리를 깔았다. 봉투와 노트들이 각각의 책상위에 올려 져 있었다. 그건 완월동 ‘언니’들과 일반 사람들,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들이었다. 편지라는 형식이 주는 따스함과 생면부지 타인의 허심탄회한 진심을 읽어 내려가는 이 이상한 경험은 한 번도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언니’들을 마음 한 켠으로 데려왔다. 


ㅇㅇㅇ.jpg▲ 편지 뒤 커튼이 쳐진 통로 내부 


편지 뒤에는 커튼이 쳐진 ㄷ자 통로가 있었다. 벽면을 따라서 실로 직접 메시지를 기워 넣은 천 종이들이 주르륵 걸려있었다. 코너에 위치한 tv안 에서는 흑백으로 실을 기우는 손이 움직였다. 조명도 딱히 발랄한 건 아니라서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들었다. “한번만 햇빛을 보러 가고 싶다”, “나는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스무살 같다”, “내가 가기 전부터 내 이름은 정해져있었다. 잘 나가는 아가씨들은 다 지수라서 내 이름도 지수가 되었다”“나는 그래도 살고 싶었다”등등 그들의 진술을 잘 보이지도 않게 기워 넣었다. 


KakaoTalk_20151231_214847091.jpg▲ 벽에 걸려 있는 신문 스크랩
 

또 다른 모퉁이에는 신문에서 스크랩한 종이가 걸려 있었다. 완월동 집창촌 일대를 매입해 성매매 집결지에서 역사, 문화, 예술으로 공간적 전환계기를 마련하기위한 부산 발전 연구원 보고서가 검토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성매매 집결지 확산을 방지하고 폐허가 된 지역을 문화 공간으로 재활용 하여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럴듯한 그 기획에는 한 가지가 빠져있었다. 성매매로 밥벌이를 해오던 사람들에 대한 대책마련이다. 그들을 몰아낼 것이 아니라 일으켜 세워줘야 하는데 시의 보고서에는 ‘게스트하우스 설립’, ‘옛길 복원’등 그런 것과는 관련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관광수익만을 우선시할 것이 아니라, 보다 섬세한 정책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ㅇㅇㅇㅇㅇㅇㅇㅇ.jpg▲ 미술 자료실 99번 사물함
 

화살표를 따라 다시 통로 밖으로 나가면, 의문의 초대 말이 적혀있다. “미술자료실 99번 사물함으로 초대합니다.”이 말을 한번 따라 가보았다. 그 안에는 매주 토요일 열리는 완월동 걷기 참가 신청 쪽지가 담겨있었다. 


편지꼴라주.jpg▲ 완월동 언니들과 일반 사람들,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
 

삶과 예술 사이에서 모두가 ‘방관자’가 아닌 ‘개입하는 자’로 들어설 수 있는 틈새를 만들고자 한 송 진희 작가는 신비로운 창조자로서 예술가라기보다는 경험적인 조사, 자료 수집, 편집 등의 활동을 하는 사회의 관찰자 혹은 매개자로서 예술가다. 나는 편지를 읽는 순간부터 그녀가 만든 장에 들어가 ‘개입하는 자’가 되었고 마침내 완월동 걷기 신청서까지 받았다. 나는 자연스레 작가가 의도한 대로 그 세계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비록 발끝만 담갔을지라도. 놀라운 점은 이러한 과정은 거부감 없이 쉽고 가볍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뜨거운 감자인 성매매 이슈를 시원한 솔바람처럼 감상자의 피부에 와 닿게 풀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송 진희 작가는 사회의 골치 아픈 이슈들을 외면하는 시민들을 혼내지 않았다. 어려운 말로 사회 참여의 당위성을 역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접근성 좋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시립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을 자연스레 이슈의 테두리 안으로 데려간다.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치 미술로 그 사태에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녀의 예술은 ‘사회 참여’라는 사명의 무게를 내려놓고도 역할을 다 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참고 문헌

기사
국내 첫 집창촌 '완월동'역사,문화 공간 재탄생, 부산일보


[이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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