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폭력의 현장에 함께 해볼 것을 권유하는 연극 < 해피투게더 >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 함께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
글 입력 2015.12.25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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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해피투게더>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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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해피투게더>를 보기 위해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을 찾아갔다. 전에도 한번 공연관람을 한적이 있었던 곳이었다. 실험적인 연출자의 신선한 시도가 있었던 극장이어서 이번 작품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극장에 불이 꺼지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극장이었다. 전에는 그렇게 컴컴한지 몰랐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곧 무대 한가운데 불이 켜지고 어떤 남자가 정장을 입고 서있었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룬 바 있는 <형제 복지원>의 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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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사회적 비난의 중심에 서있는 그가 연극의 첫장면에서 우리를 독대하다니. 하지만 비난의 대상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평범한 인상에 특별할 것 없는 남자였다.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그랬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설득조의 그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동조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예를 들어 설명한 한 사례로, 허름한 차림에 거리에서 술에 찌든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음흉한 시선으로 훑어본다면, 누가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겠는가? 어떤 법조항을 들어서라도 신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길거리에서 어떻게든 치워 버리는 게 사회적 불안과 잠재적 범죄의 가능성를 제거하고 질서를 바로 잡는 지름길이지 않겠느냐는 그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침착한 그의 자세와 진지한 설득조의 말투는 뭔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이상하도록 점점 길어지는 그의 설명 뒤에는 무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더 있는 듯했다. 그토록 긴긴 설명 뒤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는 끝까지 들어봐야 알 일이었다. 그의 말이 그렇게 길어진 이유는 어쩌면 뒤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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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에 줄줄 이어지는 긴긴 독백은 사실 평범한 우리 일상 속에 무심코 지나칠 만큼은 무난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곧 의자를 들고 쏟아져 나온 등장인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바로 아까 그 평범한 인상의 아저씨가 조용히 털어놓던 이야기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화가 나 있었고 격앙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 속에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믿기 힘든 것들이었다. 아까 처음 등장한 남자의 시종일관 별 것 아니라는 식의 말투는 그들에게 어떤 폭력보다도 더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각 두 입장의 간극은 묘하게 대비를 이루며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빛이 밝은 수록 그림자는 더 어둡게 지듯이 그들의 상처는 더 깊게 느껴졌다. 어떻게 그런 논리정연한 사회적 논조 아래 이토록 격분을 토해내게 하는 현실이 감춰져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된 울타리 안에서 자행된 인간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사회적 질서를 위한 선의 논리는 사회적 폭력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완벽하게 타당성을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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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입장의 이야기가 따로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원장과 형제복지원의 수감자들이 한 무대에서 만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선을 표방하는 사회적 논리가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떻게 수감자들조차 그 논리에 스스로를 맞춰갈 수 밖에 없는지, 어떻게 성공적으로 적응해가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폭력의 논리에 순응하다가 동조하고, 나중에는 폭력에 가담하기까지 한다. 설거지 하다가 접시 좀 깨졌다고 나를 악의 세력으로 몰아낼거냐는 울분 섞은 원장의 항의와 그 수많은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10억은 턱도 없이 모자라다는 그의 회계장부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성모마리아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원장의 부인은 천진난만하게 간식을 나눠주기도 한다. 원장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곧 무대 위에서 찬양을 늘어놓기에 다다르자, 우리는 처음 선을 위한 논리가 곧 악의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쯤 되면 우리도 처음 우리를 독대했던 원장의 논리에 무심코 동조한 적은 없었던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초반에 이어졌던 원장의 말에 조금이라도 고개를 끄덕였던 관객이 있다면, 그 이면에 숨겨진 폭력성에도 관심을 갖고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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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은 두 입장을 동시에 무대에 올려 우리와 만나게 하고, 또한 서로를 만나게 함으로, 우리를 특정 사회적 논리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 참여하게 하고 경험하게 만들었다. 무대장치는 간소하였다. 각 등장인물들이 앉을 의자와 최소한의 배경, 조명장치만으로 이야기가 전혀 지루함 없이 이어졌다. 수많은 에피소드들과 그것을 소화해 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무대 위의 여백을 빽빽이 채워주었다. 중간중간 관객을 들썩이게 만드는 노래와 춤도 지루할 틈 없이 연극에 몰입하도록 한다. 보기 좋게 열을 맞춰 노래를 부르는 원생들을 뒤로하고 극장을 나오면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간 끔찍한 폭력이 즐거운 경험과 일직선상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섬뜩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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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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