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극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두 가지 의미의 ‘정의’를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표현해 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극의 제목인 정의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정의(Definition)이다.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연출가 남성과 무용가 여성이 생각하는 연극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서로 충돌한다. 두 번째 의미는, 정의(Justice)이다. 극중극은 클레어가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Justice)가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연극은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연극을 연출하는 과정의 이야기와 함께 연극 ‘정의’의 이야기가 사이사이에 들어가는데,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연출가와 무용가의 의견이 점점 충돌해감에 따라, 연극 ‘정의’의 이야기도 절정을 향해 긴장감을 더해 간다. 연극은 총 다섯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1. < 연출가와 무용가의 만남 >
연출가와 무용가가 만나 연극 ‘정의’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장면은 연출가가 주도하고 무용가는 대체로 수긍한다.
● 정의 Scene 1 : 까페
큰 부자인 클레어는 고향인 귈렌 시를 방문한다. 클레어의 엣 연인인 알프레드와 클레어가 다시 재회하고, 알프레드는 자신이 클레어와 친한 사이임을 시장과 시민들에게 내세운다. 클레어는 사람들에게 1,000억을 기부하겠다고 밝힌다. 귈렌 시에 500억을, 나머지 500억은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클레어의 조건은 “1000억으로 정의를 사겠다”는 것이다. 그녀가 사고 싶은 정의는 그녀와, 그녀와 알프레드 사이에 낳은 사생아를 배신한 알프레드의 죽음이다.
2. <갈등>
연출가와 무용가의 의견이 조금씩 불일치를 보이기 시작한다. 연출가는 무용가의 연출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는 Scene 2는 알프레드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용가는 이 장면은 알프레도가 오히려 아내의 눈치를 보는 장면이라고 반박한다. 결국 연출가의 양보로 두 번째 장면은 합의를 보게 된다.
● 정의 Scene 2 : 알프레드의 집
청천벽력같은 클레어의 선언을 들은 알프레드를 그의 아내가 위로한다. 알프레드는 사람들이 결국 돈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지만, 아내는 시장이 그렇게 두지 않을것이라며 알프레드를 격려한다. 알프레드와 클레어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이들은 집에 돈이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돈을 벌러 집을 나간 상태이다. 게다가 알프레드와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가게 또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가계 상황은 좋지 못한 상태인데, 사람들은 매번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다. 알프레드는 빚으로 생활 수준이 올라갈수록 자신을 죽여야 할 필요성이 더욱 더 커진다며 좌절한다.
3. <갈등의 심화>
연출가와 무용가와 갈등이 더 깊어진다. 경찰서 장면을 무용가는 화려하게, 연출가는 무게감 있게 구성하고 싶다. 이 둘은 무용가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서로의 의견이 충돌한다. 연출가는 무용수도 대사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무용가는 무용수들은 그저 무용만 하면 될 뿐이라는 생각이다. 조연출은 이 둘 사이에 중재자로 나서 다툼을 해결한다.
● 정의 Scene 3 : 경찰서
알프레드는 경찰서에 찾아가 클레어를 살인 교사죄로 고소할 수 없는지를 문의한다. 하지만 경찰은 알프레드의 절실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살인 교사죄로의 고소는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4. <계속되는 갈등>
연출가와 무용가의 서로 다른 예술 가치관은 둘 사이의 갈등을 더더욱 심화시킨다.
● 정의 Scene 4 : 클레어가 매입한 까페
클레어가 매입한 한 까페에서 알프레드와 클레어가 다시 마주친다. 클레어는 알프레드를 죽여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리겠다며 알프레드에게 죽어줄 것을 촉구한다.
5. <갈등의 최고조>
‘정의’의 마지막 장면을 앞두고 연출가와 무용가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알프레드가 죽음을 맞는 장면을 연출가는 알프레드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겠다는 보도를 듣게 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아내가 알프레드를 독살하게 함으로써 알프레드가 가장 큰 배신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그의 외로운 죽음을 부각시키자 제의한다. 하지만 무용가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독살은 좋은 생각이 아니며, 고전은 고전다워야 한다고 반박하고 둘은 크게 다투고 무대를 떠난다. 조연출은 남은 무용가들에게 묻는다. “뭔지 아시겠어요?”
● 정의 Scene 5 : 잡화점
알프레드는 라디오로 자신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는 중계를 듣고 있다. 아내가 들어와 진정하라고 준, 독이 든 음료를 마시고 알프레드는 죽음을 맞게 된다. 아내는 알프레드를 독살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정의 때문이라고 말하며, 알프레드 덕에 우리와 우리의 도시가 살았다고 얘기한다.
6. <완성된 연극>
무용이 가미된 연극 ‘정의’가 완성된다.
새로운 연극이었다. 흔히 보기 힘든 극중극 형식을 취한 것과, 모자라는 역할(연극 ‘정의’속의 교장선생님과 시장 역할 등)을관객 참여를 통해 자연스레 채우는 것은 굉장히 신선했다. 또한 극중극으로 다루어졌던 ‘정의’라는 연극은 굉장히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는 연극 같아 보였다. 클레어가 연극 초반에 “1000억으로 정의를 사겠다”라는 대사를 던졌을 때, 나는 이 이 연극이 그냥 극중극으로만 다루어질 연극이 아니라는 예감이 느껴졌다.
결국 클레어는 1000억으로 정의를 샀다. 시민들은 결국 돈 때문에 알프레드를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도(물론 알프레드가 죄를 저지른 못된 인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돈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한 것이라고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한다. 클레어가 산 것은 과연 진짜 정의였을까? 돈으로 한 개인이 정의를 구현한다는 점은 작가의 아이러닉한 메시지가 담겨진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정의’라는 원작의 심오한 메시지가 극중극 형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조금은 묻힌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쉽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대극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는 두 가지 다른 뜻의 정의를 한 가지의 연극으로 묶었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신선하다.
연극을 보고 나서 도서관에서 원작 ‘노부인의 방문’을 찾아 결말 부분만을 읽어 보았는데, 시민들이 돈만을 바라는 자신들의 속물근성을 ‘정의의 구현’이라고 부르짖는 모습을 작가는 상당히 아이러닉하게 그려냈다. 조만간 원작을 정독하며 이 연극에 대한 나 자신의 정의(definition)을 내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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