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앵무새 죽이기'의 타자들은 '선'인가 '악'인가?!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6.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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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앵무새 죽이기]에서 보여주는 '우리'와 '그들'

앵무새 죽이기 1.jpg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말해주는 영화인 앵무새 죽이기는 
문학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로 만들어졌다.
타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비판하면서 
소외된 이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흑백영화이다.

흑백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영화에서도 "너희들은 이렇지 않니?" 라는 요소를 넣어서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 

좀 오래된 영화인지라 바로 나의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주요 등장인물과 시놉시스를 올려주어 영화의 보편적인
주제는 어떠한지를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등장인물

진 루이스 핀치(메리 배드햄) : 스카우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여섯살 소녀. 치마보다는 바지를 좋아하는 말괄량이로 입학을 앞두고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빠가 곤경에 처했을 때 당차게 나서기도 한다. 죄와 법에 대해 전혀 무지한 어린 소녀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내용 전체가 스카우트의 회상으로 이루어진다.

애디커스 핀치(그레고리 펙) :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변호사다. 반듯한 성품과 부드러운 말솜씨를 갖고 있는데 알고 보면 주관이 뚜렷하고 용기 있는 인물이다.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 톰을 위해 변호를 맞고 마을 전체의 편견과 맞서 싸운다.


톰 로빈슨(브록 피터스) : 착하고 순진한 흑인으로 백인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쓴다. 1차 공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자 불안함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주한다. 편견과 차별에 의해 희생되는 인물이다.


부 래들리(로버트 듀발) : 정신지체 때문에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는 장애인이다.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그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괴물로 알려져 있다. 스카우트와 젬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돕는다.


마엘라 이웰(콜린 윌콕스 팩스틴) :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사는 백인 처녀. 톰을 유혹하다 아버지에게 들키자 자신이 추행당한 거라며 거짓말을 한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화자가 6살인 소녀인데 

어린아이의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사회와 '타자'의 관계를 명확히 볼 수 있으며

변호사인 애티커스가 아니라 그의 딸인 스카웃이 주인공이 됨으로 법과 정의라는 작품이 아닌

털털한 6살 여자아이가 (정신적인) 숙녀가 되어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놉시스

1932년 여름, 미국 남부의 낡고 가난한 마을 메이컴의 일상은 지루했다. “두려움 자체 말고는 두려울 것이 없는” 그곳의 여름은 무덥고 길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딸과 아들을 키우는 변호사 애디커스 핀치는 강직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가난한 의뢰인에게는 수임료를 받지 않는 그는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변호사이자 자상한 아빠다.


영화는 애디커스가 백인 여성 마엘라를 성추행한 혐의로 공소된 톰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진실과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은 톰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마을 남자들은 톰에게 린치를 가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애디커스는 톰을 보호하고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변론을 준비한다. 피해자 마엘라는 톰을 유혹하다가 아버지에게 들키자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첫 공판에서 애디커스는 완벽한 변호를 하지만 배심원은 유죄 평결을 내린다. 애디커스는 불공정한 결과에 실망하지 않고 항소를 통해 끝까지 싸우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톰이 이송 도중 도주하는 일이 벌어지고 결국 그는 보안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애디커스의 딸 스카우트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되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면서 스카우트의 성장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이제 영화에서 보여주는 '부 래들리' 와 '톰 로빈슨'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영화가 나타내는 선과 악의 구도는 어떠한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알아보려 한다.

타자인 그들인 악인지 선인지.


영화 앵무새 죽이기를 보면서 왜 제목이 앵무새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문학작품과 같이 앵무새가 하나의 상징이라 깨달아졌고 

영화에서 나타나는 앵무새는 누구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많은 에피소드들을 넣진 않았으나 

충분히 원작에서 말하고 싶던 주제를 보여준 것 같다.

앵무새 죽이기는 하나의 성장 소설에 속하는데 특별한 점은 나이 어린 소년이 아니라 

소녀가 화자이며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앵무새 3.jpg
(왼쪽이 여주인공 스카웃, 오른쪽이 변호사 아버지인 애디커스)

대부분의 문학이 보여주는 성장 소설은 소년의 시선이 많았기 때문에 

소녀가 주인공이 되어서 해설자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는 자칫하면 미국 인종차별의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인종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집 밖에 나오지 않는 래들리 집안과, 톰 로빈슨의 재판 과정을 

1부와 2부로 나뉜다면 우리가 문학작품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도 

크게 2가지를 전달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는 인간 세상을 살아가면서 작가가 두 종류의 타자를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앵 6.jpg
(왼쪽이 스카웃의 오빠, 오른쪽이 스카웃이 썸타는 남자 딜)

영화를 보면 죄가 없는 흑인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백인들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한다. 이럴 때는 배심원들 또는 백인들이 으로 보여 진다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흑인이 재판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인식관이 박혀있는 백인들의 모습은 당시 흑인들이 얼마나 타자로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것과 같다. 흑인을 감싸주는 핀치 변호사를 백인들은 혐오하며 

껌둥이 애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는 백인들의 말투가 어이없기만 했다

사회는 항상 기득권자와 아닌 자를 가려내기 바쁘다


앵무새 5.jpg
(애디커스와 흑인 '톰 로빈슨'의 법정 재판)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2명의 타자인 부 래들리와 톰 로빈슨을 보면 
백인들의 입장은 당연히 은 자신들이고 은 그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부는 집밖에 나오지 않은 외톨이 같은 사람 이였고, 백인의 우월주의에
희생되는 흑인 톰도 있었다. 세상은 이들은 으로 본다


왜 집안에 틀어박혀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하지 않는지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부당한 삶을 살아서 소통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려 버리며
흑인은 폭력을 많이 쓰고 더럽다. 라는 담론이 구축되어있는 상황 속에 


앵무새 2.jpg

(스카웃의 이웃인 '부 래들리')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들을 멸시하는 

주류 쪽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라는 울타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라고 판단하는 

그들의 생각이 이지 않을까? 인간의 삶속에서 악과 선은 또렷이 구분하기가 힘들다

특히 인종차별에 관해서는 흑인들도 백인들과 싸우며

백인도 흑인과 싸우는 관계 속에서 어느 편에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애매하기만 하다


영화에서 보면 모디, 보안관 헥, 같은 몇몇 백인을 빼놓고 서는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종차별 주의자들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영화의 제목이 앵무새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른 새들과는 달리 앵무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만 가졌을 뿐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말한다

, 해를 끼치지 않는 새(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부 래들리와 톰 로빈슨이 바로 앵무새와 같은 인간임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편견 때문에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대변하여 보여준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결론에 선과 악의 관계를 말하자면 인종차별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로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주인공인 스카웃의 성장은 

타자의 배려와 관심을 가진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는 타자를 생각함에 있어, 우리 사회를 생각함에 있어

다시한번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것 같다.

(물론, 영화가 129분이라는 장시간으로 따분해 질 수 있겠지만! 재미있었다.)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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