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그녀들에게 돌을 던지랴? 체홉 : 파우치 속의 욕망

글 입력 2015.05.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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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하시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이 남았더라 

요한복음 8장 7-9


고백하건대, 나는 연극을 잘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극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연극을 볼 때마다 그 밀접함에 압도되고, 생생한 연기에 놀라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극장으로 걸음을 옮겨본 적은 없으니, 나는 그런 면에서 참 학습능력이 없다. 연극은 나에게 있어 잊어버리고 있다가 어느날 서랍 한구석에서 굴러나온  선물과 같은 것이다. 보고, 감탄하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발견하고 감탄하게 된다.
이번에 본 체홉의 연극도 이와 같았다. 파우치 속의 욕망을 주제로 한 네개의 이야기들은 어긋난 사랑을 네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연극의 첫 장면은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세 명의 여인들로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를 회피하고, 어딘가 위축되어있다. 연극은 이내 이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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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의 일상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


불륜이 소재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말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체홉의 여인들이 했던 것은 틀림없는 불륜이다. 하지만 일상의 지루함과 주체할 수 없는 욕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선뜻 비난하기 힘들다. 

'약사의 아내'는 그런 이야기의 전형이다. 젊고 아름답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남편과의 삶은 쓸쓸하기 이를데 없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방인의 관심조차 기껍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희극적으로 표현되엇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관객들은 한밤중의 밀회가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황폐한 약사 아내의 삶이 잘못된 형태로나마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결국 한밤의 로맨스는 잠에서 깨어난 약사로 인해 스러지고, 모든 것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아가피아'는 불륜에 한발 더 발을 들여놓는다. 그녀 이야기의 결말은 '약사의 아내'보다 더 파괴적이다. 그녀는 숲속에서 연인 사프카와 시간을 보내고 남편이 돌아오는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지만, 어느 날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프카와 밤을 보내고 만다. 애초에 불륜이라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던 아가피아와는 달리 사프카는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마지막에는 아가피아의 애타는 부름은 외면당하고 만다. 
 
'불행' 은 가장 마지막 이야기면서 '아가피아'와는 다르게 남자 쪽에서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구도다. 일리인의 구애를 거절하면서도 항상 여지를 남겨두는 소피아의 모습은 제목 그래도 파우치 속에 숨겨진 뒤틀린 욕망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자신을 아껴주지 않는 남편과의 삶에 지친 소피아에게 잘생기고 지위높은 일리인은 우월감과 충족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일리인의 대사는 안정과 스릴을 동시에 느끼고 싶은 모든 이들의 폐부를 찌른다. 

'나의 아내들'은 불륜에 초점을 맞춘 여타의 이야기와는 다른 흐름을 지닌 극이다. 연극은 푸른 수염의 편지를 통해 진행된다. 편지를 쓰인 말투 그대로 연기하기 대문에 관객들은 푸른 수염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푸른 수염은 자신의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며 베일에 싸인 일곱의 아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 성가셨던, 바람피웠던, 노래가 시끄러웠던, 너무 똑똑했던, 씀씀이가 헤펐던, 그리고 단순히 운이 나빴던 7인의 아내들은 우리 주변의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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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여인들로 시작한 연극은 세명의 여인들과 한 명의 남자로 끝난다.
맺어지지 않은 결말은 막이 내린 후에도 관객의 생각을 무대에 묶어놓는다.  푸른 수염은 여인들의 부정을 꿰뚫어본것인가? 그는 새로운 아내를 맞이할 것인가? 여인들은 그들이 원하던 연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녀들이 원하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모두 손잡아줄 이 없이 혼자서 기차를 기다린다. 그 여행이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위한 한걸음인지, 아니면 단순히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것인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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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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