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보고나니 어릴 때 읽었던「유진과 유진」이라는 책이 문득 생각났다. 이 책에는 똑같은 이름의 두 여자 아이가 등장한다. 같은 이름처럼 두 아이 모두 아동 성폭행이라는 큰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부모의 태도에 따라 아동성폭행을 당한 아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큰 유진의 엄마는 아이가 겪은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시켜 줌과 동시에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면서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밝게 자라면서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작은 유진의 엄마는 아이 자체에 대해 신경써주기 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사건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작은 유진은 공부도 잘 하고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둡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아이가 된다. 중학교 때 읽었던 책인데도 작은 유진이 불쌍하게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주변인의 태도 하나하나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게 아이이다. 어른들 눈에만 안보이게 아이의 마음 속 상처를 덮어 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그 상처를 다뤄줄 그 누군가조차도 온전하게 갖춰지지 못한 아이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한공주는 부모님마저 따로 사는 가정환경에서 끔찍한 일을 겪은 후, 어른들이 만든 방치된 환경 속에서 어떠한 선택도 할 수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름이 공주임에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도망 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인 아이다. 좋은 것만 보고 자라도 모자랄 공주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은 가혹하기만 하다.
언론에서 ‘밀양여중생 성폭행 사건’으로 알려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평범한 소녀가 절박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떠나기 위해 머무는 곳 >
가족환경 마저 불안정했던 공주는 부모님 곁에서 상처를 치유할 수 없었다. 공주에게 새롭게 주어진 공간은 선생님의 엄마가 사는 집이었다. 쾌쾌하고 어두워 보이는 방이 새롭게 공주가 머물 곳이다. 누가봐도 안식처로 삼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주는 익숙하다는 듯이 짐을 풀고, 그 공간에서 생활해 나간다. 보호자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덤덤한 태도로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공주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공주와 선생님의 엄마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선생님의 엄마는 불륜을 통해 만난 사람을 배우자로 삼으면서도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동네 아줌마들이 찾아와 머리채를 잡아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난다. 사람들에게 맞고 나서 생긴 상처를 일종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증거로 삼기위해 공주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할 만큼 말이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피해자가 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공주와는 다르다. 사람들은 어린 공주에게 피해자가 될 자격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 공주가 가족 누구와도 함께 지내지 못하면서 선생님 댁의 엄마에게 조금씩이나마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공주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거액의 합의금이 아니라 평범한 중학생처럼 살 수 있는 일상 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공주에게 일상을 되찾아 주기는커녕 자꾸만 새로운 환경으로 떠나라고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나마 공주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었던 선생님의 엄마마저도 공주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새로운 배우자가 경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주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경찰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보호가 되면서도 잘못이 없는 아이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 중간에 공주는 울면서 "사과를 받는데 왜 도망가야 하냐"고 말한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건을 겪고 나서도 아이에게 안식처가 될 만한 곳은 없었다.
< 스스로 위안하는 방법 >

공주가 자신을 극단으로 내몰지 않고 스스로 위안하기 위해 찾은 통로는 바로 음악 이었다. 텅 빈 음악실에 혼자 남아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공주의 목소리는 한없이 맑고 투명하다. 전학 간 학교에서 공주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친구들은 공주의 재능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공주는 과거에 강제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상황을 억지로 촬영까지 했던 기억이 떠올라 쉽사리 친구들과 가까워지진 못한다.

자칫하면 영화의 분위기는 우울한 분위기로만 빠질 수 있었지만, 친구들의 노력으로 공주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Give me your smile" 이라는 가사를 담은 공주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순수한 우정으로 공주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
새롭게 다가온 친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공주가 유일하게 스스로 배우려 하는 것은 수영이다. 공주는 큰 사건을 겪은 후부터 계속해서 수영을 배우려고 한다. 공주에게 수영은 세상을 피해 스스로를 가장 자유롭게 두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도 물과 관련 된다. 상징적인 엔딩 장면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 놓고 아파할 겨를도 없이 어른들의 지시에 의해 떠남을 반복하고 있는 공주의 상황을 보면, 세상을 피해 물속에 있을 때 안정을 느끼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물속에서는 마음대로 울부짖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듯이. 그만큼 이 세상에서 공주가 기댈 곳은 없었다.

<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더 미안해지는 이야기 >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내 일이 아닌 끔찍한 일은 애초부터 보지 않으려하고, 차라리 몰랐으면 눈감으려 한다. 이 영화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조심스럽게 화두를 던져준다. 영화를 보기 전에 대충 소재에 대해 알고 보는 사람은 시작부터 왠지 모를 찝찝한 마음으로 스크린을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곧 이 이야기가 시작되면 결코 자극적인 소재로 관객을 모으기 위한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며,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저지른 일이 맞는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이 사건을 개인적인 문제로 화살을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 문제가 결코 피해자와 가해자만의 법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겨준다. 실화를 소재로 한 만큼,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제2의 공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과 미래의 자식들도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사건을 저지른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무관심 했던 세상 사람들과 경찰들도 책임을 회피할 수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한명을 피해자나 가해자로 이름붙일 순 없다는 의미에서 공주는 특별하게 취급 되어야 할 피해자도 아니다. 다만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가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사랑받고 자라야 할 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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