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어른이 되기 전에, 다시 읽은 "어린왕자" 이야기[문학]

글 입력 2015.03.0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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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어린이였던 그 때를 생각하지 못한다. 마치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성숙함을 강요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상처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몸은 어른이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어린이 같은 사람이 있다. 또 어린이가 너무 어른스러워서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난 어떤 어린이였는지, 지금은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생일선물로 <어린왕자> 책을 선물 받은 것이다. 너무 오랜만에 내 손에 들어온 책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별 감흥 없이 읽었던 책이다. 단지 순수했던 그 때는 어린왕자가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별에서 온 건지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다시 읽어본 <어린왕자>는 새롭게 다가왔다. 어린왕자는 그대로였는데, 내가 커 버린 것이다.



 작은 별에서 살던 어린왕자의 유일한 소통 상대는 장미꽃이었다. 어린왕자는 아름다운 장미에게 설렘을 느꼈다. 그러나 그 설렘은 곧 상처로 변했다. 장미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까칠한 말투로 요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왕자는 장미꽃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었다. 바람막이로 덮어주기도 하고, 매일 같은 얘기도 옆에서 들어주었다. 어린왕자에게 자신의 가시가 호랑이의 발톱과 대적할 만큼 강하다고 수도 없이 말했던 꽃이었다.


  장미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날 때 어린왕자 앞에서 피어났듯이, 헤어질 때도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이려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왕자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싶어 했다. 사실 어린왕자는 장미꽃이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해줬을텐데. 장미꽃은 떠나는 어린왕자가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끝까지 모질고 까칠했다.


  하지만 어린왕자는 여러 별을 거쳐 지구에 오기까지 한시도 장미꽃을 잊은 적이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중 어딘가에 자신의 장미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했다.



  가만 보니 장미꽃의 말과 행동이 나와 너무 닮은 것 같아서 울컥했다. 어렸을 때 <어린왕자>를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보니, <어린왕자> 책을 통해 내가 어느새 장미꽃처럼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엄살을 부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그런 티를 내면 주변 사람들이 떠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장미꽃처럼 내 감정을 숨기고, 언제나 강한 척을 해야만 했다. 사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날 떠날만한 사람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장미꽃의 가시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듯한 경고였다. 모순적이게도 내 옆에 남아주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느껴질수록 가시를 더 뾰족하게 내세웠던 것이다. 마음을 주었다간 그 사람들이 없으면 정말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까봐 무서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밀어내려 했던 겁쟁이다. 서글프게도 장미꽃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장미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려고 도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처음부터 밀어내려고 했던 태도가 까다롭게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함께 있었을 때, 이런 장미꽃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기엔 어린왕자의 사랑도 성숙하지 못했다.



  장미와 함께 있던 별을 떠나 지구까지 온 어린왕자는 갈 곳을 잃은 비행기 조종사를 만난다. 어느 날 어린왕자는 비행기를 고치는데 바쁜 ‘나’에게 꽃의 가시가 왜 필요한 거냐고 묻는 다. 성가셨던 ‘나’는 어린 왕자의 질문에 귀찮다는 듯이 가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꽃들이 괜히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어린왕자는 화가 난 목소리로 꽃에 있는 가시는 약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꽃은 연약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 가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면 무서워 보일 거라고 믿고 있다고.


  이 말을 통해 어린왕자는 장미꽃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떠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미꽃이 자신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어린왕자 떠나지 못할까봐 끝까지 마음을 숨겼듯이, 어린왕자는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도 외로움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있는 장미꽃의 모습을 보기가 가여워서 떠난 것일 수 있다. 이미 둘은 마음 속 깊이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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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어린왕자는 장미꽃에게 돌아가기 위해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미 서로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길들여진 장미꽃에 대한 책임을 모른 척 하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어린왕자는 그동안 혼자 두었던 장미꽃의 곁에 가기 위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별빛처럼 사라진다. 마지막까지 자신보다도 장미꽃을 먼저 생각한 마음이 너무 순수해서 찡했다.



  나도 이제 어린이는 아니기 때문에 미숙하나마 어른이 되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어린왕자처럼 순수한 그 마음만큼은 잊고 싶지가 않다. 영원히 어른과 어른이 아닌 것의 경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싶다. 적어도 어린왕자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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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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