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보며 “예쁘다” 고 탄성을 지릅니다. 아름다운 여자, 꽃, 우아한 곡선. 하지만 단지 아름다울 뿐인가요? 아닙니다. 그는 미술 사조 ‘아르누보(Art Nouveau)’의 정점이자 현실과 이상의 경계 사이에서 항상 고민했던 예술적 철학가였습니다. 무하의 삶 이야기와 아르누보에 대한 기초 설명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무하의 등장
무하는 27살의 나이로 활발한 예술도시 파리에 입성했습니다. 파리의 삶은 매우 혹독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의 무명생활 끝에, 무하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창작한 파격적인 스타일의 포스터 <지스몽다> 로 스타덤에 오릅니다. 그리고 파리 아르누보의 대표자가 됩니다. (주: 아르누보는 19세기와 20세기의 과도기에 일어난 예술사조로 뚜렷한 윤곽선과 밝은 색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미가 특징이다.) 곧 ‘르 스틸 뮈샤(Le Style Mucha)’, 다른 말로 ‘무하의 스타일’은 도시 전체를 휩쓰는 자신만의 브랜드가 되었고, 파리 시민들은 무하의 미술에 도취했습니다.

<지스몽다 포스터>, 1894, 채색 석판화, 216 x 74.2(cm)
위 포스터가 무하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준 그것입니다. 그림 속 모델인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이 작품에 너무나 감명 받아
“너무 아름답네요! 이제부터 당신은 나와 함께 일할 거예요. 난 벌써 당신과 사랑에 빠졌답니다.”
라고 극찬했다고 무하의 회고록에 써져 있습니다.
2. 현실에서의 성공과 무하의 철학
19세기말의 파리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와 번영으로 ‘좋은 시절’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무하는 예술가로서의 열망과, 상업성을 저버릴 수 없는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현명하게 풀어나갔습니다. 상업예술의 트렌드를 간파하고 대중에게 사랑 받는 작품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기업과 손을 잡고 패키지 디자인에 뛰어들었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감성 마케팅’의 일종이라 할 수 있죠.

<르페브르 위틸 과자 상자를 위한 라벨 : 바닐라 웨하스>, 컬러 석판화, 20.5 x 17.8(cm)
무하는 현실에 안주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 내면을 비추어 보려 고심했고, ‘자연’을 매개로 삼았습니다. 무하는 자신의 예술이 차분한 감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처럼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했기 때문에 대중의 곁에 쉽게 존재하도록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황도 12궁>, 1896, 채색 석판화, 65.7 x 48.2(cm)
그 중 대표적인 형태가 위 작품과 같은 장식 패널화입니다. 무하는 생활 속의 예술작품이 사람들의 의욕을 북돋아 주고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패널화는 그의 생각을 현실화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나는 사적인 응접실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예술에 관련되어 기쁘다. 이것은 저렴하고,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부유한 집안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가정들에서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은 예술가가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어낸 ‘유토피아’ 입니다. 산업화 시대의 파리 시민들은 기계화와 대량생산의 물결 속에서 소외감과 공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무하는 이러한 현대인들을 잠시나마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연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줍니다. 따라서 그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사람들의 ‘감성’을 더한 시각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봄>, 1896, 채색 석판화, 103 x 54cm
바로 위와 같은 그림을 통해 각박함 속에서 고뇌하던 현대인들은 이상적은 자연의 모습을 상상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3. 무하의 도전
마흔 중반에 그는 파리를 떠나 미국을 방문했고, 조국 체코의 프라하에서 자신의 예술과 재능 기부를 통해 타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만들어갔습니다. 무하는 인간을 위해 높은 정신적 이상을 작품 속에 담기를 갈망했고, 20년에 걸친 창작의 과정을 거쳐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여 이를 고국에 헌정했습니다.

<슬라브 서사시 연작 No. 1>, 1912, 템페라, 610 x 810(cm)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작품의 목적은 가교를 놓는 것이다. 인류 모두가 가까워지고 이로써 쉽사리 서로를 점점 더 잘 알아가게 된다는 희망이 우리 모두를 격려해 주기 때문이다.”
무하의 작품들은 시대를 넘어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따스한 인간애를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이 이러한 무하의 생각을 널리 퍼뜨리는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