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극장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 우중산책(Walking In The Rain, 1994)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1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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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산책 (Walking In The Rain, 1994)

감독- 임순례

14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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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극장, 매표소에 한 명의 여자가 앉아있다.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는 듯 초조하게 밖을 내다보는 그녀. 오늘은 그녀의 맞선 날이다. 예쁜 원피스를 차려입고 머리도 했건만, 맞선을 보기로 한 남자는 좀처럼 오지를 않고 무료한 일과만이 이어진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극장 안에서 간간이 울려 퍼지는 얕은 소음만이 공허하게 떠도는 매표소는 권태롭게 짝이 없다.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그녀는 잔뜩 설렌 채 활짝 놀라 마주하지만, 그들은 안타깝게도 그녀가 애타게 기다리는 이가 아니다. 위 건물 장미 미용실에 근무하던 미스 조를 찾는 남자와 녹즙 기계 판매원만이 그녀를 들었다 놓을 뿐. 초조한 그녀를 두고, 무료한 극장의 시간은 완전히 멈춰버린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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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다. 매일 같은 공간에 앉아 같은 일과를 지속하다 보면 분명 시간은 가고 있는데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우리는 흐르지 않는 시간을 견딘다. 나쁠 일은 가끔, 좋은 일은 대체로 없이. 매 시각 우리는 작은 사건들과 마주하고 사건은 매번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가져다 놓는데 개 중 평범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할 사건이랄 것은 대체 생에 존재하기는 하는지. 마음 같아서는 로맨스 영화 속 멋진 남자 주인공이 당장에라도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와 무어라 말이라도 걸어줬으면 싶은데, 영화는 영화고 삶은 삶이어서 우리는 참 별일이 없고 너무나도 사소한 단편 단편의 사건과 사건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스펙터클이 일상이 된 스크린 너머를 바라보며 이렇듯 아무 일도 없이 지속되는 삶을 살아간다. 이 야속한 양편의 괴리. 그녀는 어쩌면 맞선을 볼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지겨운 일상을 깨부수고 등장할 저 너머의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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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명료한 사건도 없이 완전히 정체된 극장 속에서 그녀는 문득 뛰쳐나온다. 온몸으로 내리는 비를 다 맞고 골목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어둑하고 한없이 무료했던 시간을 벗어던진 채 그녀는 달린다. 그녀의 뜀박질은 서글퍼 눈물이 날 것 같지도 그렇다고 완벽히 자유롭지도 않다. 우리가 가장 보통의 존재인지라, 그녀는 어쩐지 그렇게 온몸으로 말이라도 걸어오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스크린 너머 그녀를 바라보는 이 편 역시, 그녀의 걸음이 닿을 끝자리가 그 비좁은 극장의 매표소 안일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어쩐지 먹먹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내리는 빗속을 달리는 그녀에게 자꾸만 시선을 두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의 반전 아닌 반전은 영화를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맞겠다. 어쨌거나 아무리 내리는 빗줄기를 헤치며 뛰어 봐도 다시금 우리는 그녀는 너무나도 보통의 존재인지라, 왕자님은 계시지 않고.


어떤 설렘 어떤 기대만이 간간이 우리를 찾아오고, 그밖에 그저 나쁠 일 가끔 좋은 일은 대체로 없으니. 어쩌면 이 지루한 삶이 참 이렇게 아무 일도 없으니 무던히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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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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