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시장에서 어디선가 패션광고 이미지나 SNS에서 본 듯한 사진들과 마주쳤다. 이 사진들의 주인공은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의 회원이었던 영국 출신 작가 마틴 파(Martin Parr)다. 특유의 유머와 관찰력으로 남긴 그의 사진들은 오늘날까지도 다큐멘터리 사진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발자취를 기리는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는 2025년 12월 세상을 떠난 마틴 파를 기리며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7월 16일(목)부터 10월 18일(일)까지 진행되며, 초기 작업부터 말년에 이르는 14개 시리즈와 500여 점의 작품, 그리고 작가가 생전에 펴낸 사진책 90권을 함께 소개한다. 1980년대 이후 확장된 소비문화와 대중관광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배경이 됐다.
전시공간은 2,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인상 깊었던 테마와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작은 세계 (Small World)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틴 파가 각국의 관광 현상을 기록해 온 작업이 눈에 띈다. 작가는 세계 각지의 관광지가 관광객에 의해 소비되는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역설적으로 각 지역 고유의 문화를 훼손하고 획일화하는 '글로벌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늘어난 관광객의 무리는 소비문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사회적 흐름에 휩쓸린 채 끊임없이 새로운 볼거리를 갈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진 속 장소는 인도 고아로, 1993년 작가가 방문해 촬영한 것이다. 이미 관광지로 상업화된 공간에서 상인들에게 둘러싸여 불편해하는 관광객의 모습이 담겼다. 휴식과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 관광객이 상인들에게 둘러싸인 아이러니한 장면은, 관광지로 상업화된 도시가 안고 있는 이면을 함께 드러낸다. 이를 통해 동시대의 상업화된 관광지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짚어볼 수 있다.
이스태블리시먼트 (Establishment)
'이스태블리시먼트'는 권력기관이나 기성제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 연작은 마틴 파가 영국 사회의 상류층과 기성 엘리트 집단의 일상과 의례를 포착한 작업이다.

드레이퍼스 리버리 65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리버리 홀을 떠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을 담은 2014년 작품이다. 드레이퍼스 리버리는 중세 상인 길드에서 출발한 런던의 전통 있는 '리버리 컴퍼니(동업조합)' 중 하나로, 오늘날에는 자선사업과 의례를 이어가는 유서 깊은 단체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영국 왕실이 권위와 상징성을 통해 명예를 유지하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정작 사진 속 사람들은 여왕을 직접 바라보는 대신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어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이 장면은 특별한 역사적 순간이라기보다, 오늘날 권위와 유명세가 이미지로 소비되는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에 가깝다. 왕실이라는 전통적 권위가 사진 한 장으로 소비되는 순간을 작가는 포착해낸다.
드라마 '더 크라운'이 그려낸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도 떠오른다. 여왕은 평생 명예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과 감정을 억눌러야 했고, 평범한 기혼 여성으로서의 삶을 누리기도 어려웠다. 왕실 구성원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였다. 현대의 시각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왕실의 관습이다. 그러한 희생의 결과가 결국 이미지와 유명세로 소비되는 것이라면, 그 전통을 지켜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 휴양지 (The Last Resort)
'마지막 휴양지'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에 걸쳐 영국 리버풀 인근 뉴브라이턴의 휴양지 풍경을 기록한 작업이다. 마틴 파가 컬러 사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자신만의 사진 스타일을 확립한 프로젝트로 꼽힌다.
이 연작은 마거릿 대처가 총리였던 시기, 이른바 대처리즘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산업구조 변화와 긴축정책 속에서 영국 북부의 노동계급 지역은 높은 실업률과 지역경제 침체를 겪었고, 뉴브라이턴의 휴양지 역시 점차 쇠락하며 노후화된 시설과 생활 쓰레기가 즐비한 장소로 변해갔다.

사진 속 가족들은 평범하게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지만, 그 주변 풍경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도 쓰레기가 나뒹구는 모습은 관람객에게 묘한 불편함을 안긴다.
이 사진들은 리버풀과 런던에서 각각 공개됐다. 리버풀에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한 일상의 풍경으로 비교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런던에서는 노동계급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인지, 그들을 냉소적이고 관음적인 시선으로 묘사한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논쟁은 마틴 파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가 매그넘 포토스에 합류하는 과정에서도 기존의 인도주의적 다큐멘터리 사진과 다른 강렬한 색채와 풍자적 시선을 두고 또 다른 내부 논쟁이 벌어졌다. 그는 1988년 준회원으로 합류한 뒤 1994년 정회원이 됐다. 그의 합류는 매그넘이 새로운 사진적 시각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계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삶의 비용 (The Cost of Living)
앞서 '마지막 휴양지'가 담아낸 뉴브라이턴의 풍경과 달리, 이번 사진에는 단정한 옷차림을 한 중산층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처리즘이 확산되던 시기에 수혜를 입어 새롭게 부상한 영국 중산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은 야외 사교 모임에 참석한 인물들을 포착했다. 그러나 즐거운 분위기와 달리, 인물들의 시선은 서로 엇갈리고 표정과 자세도 어딘가 경직돼 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보다 격식과 체면을 의식하는 듯한 모습이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풍요로워 보이는 중산층의 일상 뒤에 존재하는 계급의식과 사회적 욕망을 냉소적으로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진이 오늘날 패션 광고에서 볼 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인물들을 배치한 구도와 복고적인 색감, 연출된 듯한 어색함은 이후 마틴 파가 패션계에 끼친 영향과도 연결된다. 그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넘어 패션 광고와 SNS 등 다양한 시각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마틴파 : 사진책 90선 (Martin Parr: 90 Selected Photobooks)
3층으로 올라가면 처음 마주치는 것은 마틴 파의 사진책 90선을 모아둔 '마틴파 : 사진책 90선 (

마틴 파는 자신의 작품을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시각적 에세이'로 봐야 한다며, 여러 장이 이어질 때 비로소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생각으로 평생 사진을 엮어 사진집으로 펴냈다. 이곳은 전시를 보다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니, 다리가 아프면 앉아 있다 가는 것도 좋다.
상식 (Common Sense)
사진책 90선이 놓인 그 앞에는 여러 장의 사진을 촘촘히 배열한 '상식' 연작이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과도한 소비 양상을 기록한 프로젝트다. 마틴 파는 세계 각지에서 촬영한 사진을 지역 구분 없이 한데 배치해, 소비문화의 공통된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를 촬영했음에도 이를 통해 현대사회의 소비 문화나 패턴이 어디서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통된 관광과 오락의 패턴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사진들 또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컬러 프린트로 제작됐으며, 여러 장이 촘촘히 배열된 모습은 작품의 주제인 소비문화와도 닮아 있다. 플래시로 강조된 피사체와 선명한 색채 대비를 통해 과잉된 소비문화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 특징이며, '키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죽음의 셀피 (Death by Selfie)
'죽음의 셀피'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셀카봉의 보급으로 급격히 변화한 관광 사진의 양상을 포착한 작업이다.
마틴 파가 이 작품을 촬영하던 2010년대에는 과도한 셀피 촬영으로 인한 사고와 사망 등이 국제적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애정과 유머를 바탕으로 기묘한 일상 풍경을 드러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을 남기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셀카봉을 사용한다. 그러나 위험한 장소와 자세까지 감수하면서 사진을 남겨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 작품은 SNS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현대사회의 욕망과 그 폐해를 생각하게 한다.
북한과 남한 (North Korea / South Korea)
이 외에도 여러 테마가 이어지는데, 그중에서도 북한과 남한을 각각 다룬 연작이 대조적이어서 눈에 띈다. 작가는 1997년 단체 관광을 통해 평양을 방문했는데, 정해진 동선을 따라 깔끔하고 정돈된 곳만 둘러볼 수 있었을 뿐, 정작 현지 주민들의 실제 삶은 관광객들에게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이 경험을 두고 "막상 북한에 가보니 모든 풍경이 영화 세트장 같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그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돈된 모습만 보여주는 북한과 달리, 당시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 성장과 그에 수반된 소비문화, 그리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연작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당시 한국 소비 문화의 양상을 하나의 총체적 인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관람객들에게도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함께 밀려온다.
자화상 (Autoportrait)
전시는 그의 '자화상' 시리즈로 마무리된다. 자화상(Autoportrait) 연작은 마틴 파가 1990년대부터 작고 전까지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 형식으로 기록한 장기 프로젝트다. 작가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전통적인 자화상과 달리,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각지의 상업용 포토부스와 지역 사진관, 관광명소의 기념사진 입간판 등 각 나라 문화의 특색이 담긴 장소를 찾아가 스스로의 모습을 담아냈다.

'셀피'처럼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미지와 표현 방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마틴 파 특유의 유머가 다시 한번 드러난다. 이는 현대 소비문화 속에서 변모한 자화상의 의미를 반영하는 동시에, 전통적으로 진지하게 자신을 그려온 화가들의 자화상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위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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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파가 2025년 12월 세상을 떠난 뒤, 이번 전시는 매그넘 포토스와 마틴 파 재단의 협력을 거쳐 그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사후 회고전으로 열렸다.
평소 미술 전시나 디자인 전시는 자주 봤지만, 사진 전시는 오랜만이었다. 이전에 LIFE 매거진 사진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전시와 맥락은 비슷하면서도 마틴 파 특유의 분위기가 뚜렷이 느껴졌다.
그 맥락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에 맞닿아 있다. 사진을 통해 기사 하나만큼의 사회·문화 현상을 엿볼 수 있고, 이는 때로 기사글을 읽는 것보다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1988년 매그넘 포토스의 준회원으로 합류한 마틴 파는 이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그넘의 회장을 맡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그의 화려한 색감과 풍자적 시선이 결국 매그넘을 대표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시대가 변한 것은 물론 그의 작업이 현대 사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지금도 SNS와 패션 캠페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실제로 그는 2018년 구찌의 시계 캠페인 '#TimeToParr'를 촬영하며 패션 사진가로서도 존재감을 남겼다.
단순히 사진을 찍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만의 유쾌한 색으로 담아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것이야말로 그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다. 세상을 떠난 이듬해 열린 이번 전시는 관광과 소비, 계급과 이미지라는 그의 오랜 화두를 다시 한번 짚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뜻깊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2025년 5월 문을 연 국내 첫 사진 특화 공립미술관으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관람객이 몰리는 시간에는 동선이 혼잡할 수 있어서,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대를 골라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