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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두 번 본 여름, 다정해진 이유 -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남매의 여름밤〉 음성 해설 상영회와 서수연 작가와의 만남

by 최은파 에디터
2026.07.16 14:30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jpg

 

 

영화는 오랜만에 할아버지 집에 다시 모이게 된 가족의 이야기다. 사업이 어려워진 아버지를 따라, 남매는 방학 동안 낯설고도 낯익은 그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고모까지 더해져, 한 지붕 아래 세 세대가 모인다. 특별한 사건이 크게 벌어지진 않는다. 다만 평범한 여름날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 사이사이에 웃음과 다툼과 침묵이 스민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내 여름 하나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와 함께 광명의 한 집에서 3주를 지낸 적이 있다. 매일 마트에서 황도 캔 두 개를 사 오시던 할아버지, 고모와 함께 간 극장에서 먹던 캐러멜 팝콘, 할머니를 따라나선 교회 가는 길. 영화 속 낡은 이층 양옥집을 보는 내내, 나는 그 여름 안에 있었다.

 

 

남매의 여름밤 2층 집 전경.jpg

 

 

영화를 두 번 봤다. 상영회에 가기 전, OTT로 먼저 한 번. 눈을 감고 본 건 아니었다. 다만 나중에 음성 해설이 붙은 버전으로 다시 봤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궁금해서였다. 그 차이를 확인하려던 마음은, 서수연 작가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처음 맡았을 때 눈을 감고 드라마를 먼저 들었다던 그 장면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옥주가 동주에게 저리 가서 자라며 쳐둔 모기장은, 대사만 들었을 때 내가 아는 1, 2인용 크기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는 방 전체를 덮을 만큼 컸다. 고모가 옥주에게 캔을 건네며 마시겠냐고 묻는 장면도 그랬다. 대사만으로는 그게 술인지 음료수인지 알 수 없다. 옥주가 쌍꺼풀 수술비를 빌려달라 했다가 거절당하고 화가 나서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닫는 장면에서는, 시각장애인 관객에게는 맨발로 걷는 소리와 문이 끼익 걸리는 소리만 들린다. 문틈에 커다란 코끼리 인형이 껴 있고, 옥주가 그걸 발로 차버린다는 사실은 알 도리가 없다.


서수연 작가와 같이 음성 해설 작가의 일은 바로 그 빈틈을 채우는 일이었다. 인형의 존재를 문장으로 세우고, 발로 차는 순간까지 소리 안에 넣어주는 일. 책 제목 그대로,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게 만드는 순간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여기 적은 건 영화 초반부의 장면 몇 개일 뿐이다. 나머지는 직접 보고 들으며 확인해 보시길 권한다. 어느 장면에서 스스로 음성 해설 작가가 되어본다면, 당신도 그만의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순간 하나를 만들어보게 될 것이다.

 

*

 

배리어프리 영화는 대개 두 가지 버전을 하나의 상영에 겹쳐 놓는다. 화면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음성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설이 동시에 흐른다. 이번 상영에서 그 해설을 낭독한 건 배우 박정민이었다. 재능 기부로 참여하여 잔잔하게 위로를 주는 목소리는 두 시간 가까이 거의 쉬지 않고 이어졌다.

 


보이지만 볼 수 없는 작가와의 대화.jpg

 

 

GV를 진행한 이다혜 기자는 이 낭독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짚었다. 감정을 실어 연기하도록 훈련된 배우에게, 음성 해설은 오히려 감정을 덜어내야 하는 낭독이기 때문이다. 자막의 글자 크기가 대사의 크기에 따라 커지지 않듯, 음성 해설도 정보값을 같은 볼륨과 같은 감정으로 일관되게 전달해야 사이사이의 대사와 효과음이 또렷하게 들린다는 설명이었다.


서수연 작가는 대본 분량이 A4로 칠팔십 페이지, 단행본 한 권과 맞먹었다고 전했다. 실제 녹음에는 세 시간 반이 걸렸다고 했다.


질문은 낭독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 관객은 작가의 문장이 유독 짧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단어로 되어 있다는 점을 짚었다. 작가는 쉽게 쓰고 싶고, 듣는 동안 장면이 절로 그려지도록 쓰고 싶은 게 자신의 목표라고 답했다.


다른 관객은 영화 후반, 오후 4시 53분이라는 구체적인 시각을 굳이 알려준 해설이 인상 깊었다며 이유를 물었다. 작가는 그 숫자 하나에 이미 서정이 담겨 있다고 답했다. 낡은 이층집, 늦은 오후의 빛. 그 시간을 그냥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름의 기억을 저절로 불려 나온다는 것이었다. 설명을 더 얹지 않는 것, 그것도 이 작가가 지켜온 다정함의 한 방식이었다.


GV의 마지막 질문 시간, 내 차례가 왔다. 책에서 읽은 세 가지 덕목 중 마지막, ‘따뜻한 마음’. 그리고 음성 해설을 ‘다정한 종합예술’이라 부른 그 표현에 대해 묻고 싶었다. 사실 나는 상영 전 OTT로 영화를 먼저 보면서 작가의 시선을 흉내 내보려 했지만, 자꾸만 분석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이 장면엔 어떤 소품이 있고, 인물의 눈썹이 몇 도로 찌푸려졌는지를 세는 식으로. 그 다정함이라는 걸 어디서, 어떻게 길어 올리는지 궁금했다.


서수연 작가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다정함을 찾으려 애쓰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다정함이라는 것. 시간을 내어 이해하려 하는 마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실수했을 때 다음엔 더 잘 써야지 하고 마음먹는 것도 다정함이라 했다. 그리고 다정함이 퍼지는 방식에 관해 말했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구에게 “나 이거 봤는데 좋더라, 이거 필요하더라”라고 건네는 말 한마디. 그렇게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것. “다정함은 강하다”고 그는 말했다. 조용히 퍼지지만, 세상을 데우는 데는 그 조용한 방식이 가장 강하다고.


이 영화가 저마다의 여름을 소환하는 힘을 가졌다는 확신은, 음성 해설과 함께 다시 보면서 더 분명해졌다. 그 힘의 절반은 소리에, 나머지 절반은 그 소리 사이를 채우는 누군가의 다정함에 기대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텃밭에 남겨진 할아버지의 빈 의자와 초록빛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이 있다. 눈으로만 봤을 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적인 컷이었다. 그런데 음성 해설과 함께 다시 보니 달랐다. 문장 하나하나가 시처럼 쌓여, 화면을 눈으로만 좇을 때보다 오히려 그 장면을 더 오래 붙잡게 했다. 화면이 다 전하지 못한 결을, 문장이 대신 채워주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었다. GV에서 작가는 오프닝과 엔딩에 유독 공을 들인다고 했다. 낭독을 맡은 배우의 목소리를 미리 떠올리며, 영화가 건네는 서정을 과하게 설명하지 않고 담담하게 눌러쓰려 했다고. 그 절제가 텃밭 장면에서 내가 느낀 여운의 정체였다.


GV에서 작가는 음성 해설을 오디오북처럼 즐기는 비장애인 청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필요에서 시작된 서비스가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기대를 걸어본다. 텃밭의 그 마지막 장면을 문장으로 다시 만난 뒤로는, 음성 해설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보조 장치가 아니라 비장애인 관객도 작품을 더 깊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감상법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상영관 조명이 켜지고도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스크린 안의 여름이 끝난 자리에서, 작가와 관객이 나눈 다정함의 대화가 또 하나의 여름을 열었다. 상영관을 나서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권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한마디가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나 역시 다정함의 가지 하나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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