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난 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 기준을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거나 단순한 서사적 충격을 넘어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작품들이다. 특히 그것이 나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 더욱 깊은 인상을 받는다.
몇 년 전 늦여름에 본 영화 <헤어질 결심>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는 오후 네 시 무렵이었는데, 늦여름 특유의 공기와 잔잔한 햇살이 영화가 남긴 여운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이후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찾아보다가 “네게 미결로 남고 싶은 내 삶의 흔적”이라는 표현을 접했고, 그것이 영화의 정서를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느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내로남불’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더없이 아름답고 섬세한 로맨스로 보이지만, 그 서사의 중심에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불륜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름다운 장면들이 선사하는 심미적 쾌감과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매혹과 거부감, 동경과 불쾌감이 공존하는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나를 붙들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이러한 갈등 자체가 결국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선과 악, 참과 거짓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형성한 가치 체계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사회 내부에서의 살인은 중대한 범죄로 처벌받지만, 국가 간 전쟁에서는 더 많은 적을 죽인 사람이 영웅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선과 악은 어디에서 구분되는가. 그 경계에는 결국 한 인간의 선택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 질서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 사회의 가치에 순응하며 성실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경계를 넘어 자신만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 앞에 놓인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사회가 부과하는 도덕을 넘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예술가적 삶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 속 인간은 그처럼 쉽게 기존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안전한 줄 위에 머무를지, 아니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 내디딜지를 고민한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다만 이러한 위태로운 경계 위에서의 선택과 욕망,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실존적 갈등을 아름답고도 비극적으로 그려낸 영화가 바로 <헤어질 결심>이다. 이 글에서는 니체의 철학을 통해 영화 속에 나타난 사랑과 욕망, 그리고 실존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해준의 입장
영화의 모든 장면은 선명한 색채와 정교한 구도로 채워져 있지만, 동시에 짙은 안개가 낀 듯 모호하고 불안정하다. 이러한 시각적 분위기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위태로움을 더욱 심미적으로 드러낸다. 마치 눈앞에 내디딜 곳조차 분명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거나 다시 뒤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해준은 자신의 모든 선택 앞에서 끊임없이 망설인다. 작은 결정 하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기에 그는 두려워하며 고민한다. 남편으로서, 경찰로서의 책임과 서래를 향한 금지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점차 무너져 간다.
그렇게 해준은 서래에게 “나는 붕괴되었어요”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그녀를 떠남으로써 사회적으로 ‘옳은 삶’을 선택하려 한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래에게 다가가는 길 끝에 수많은 고통과 파괴가 기다리고 있음을 그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포로 떠나 선택한 ‘옳은 삶’은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한 채 목적을 상실한 삶의 연속이었다. 사실 해준은 서래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서래를 만난 이후에는 그 공허함이 더욱 깊어졌으며, 경찰로서의 자부심과 확신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원칙적인 사람이었던 그의 가치 체계는 서래의 등장과 함께 균열을 일으킨다.
그의 세계는 ‘붕괴’하고, 질서는 카오스로 변한다. 그러나 니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붕괴는 단순한 파멸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출발점이다. 어쩌면 해준이 서래에게 붕괴를 고백한 순간, 혹은 그녀에게 처음 관심을 품은 순간부터 그는 허무주의의 상태를 벗어나 혼돈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불면과 우울, 혼란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서래는 어느새 해준에게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자 새로운 가치가 되어 간다. 그것이 자유로 이어질지 파멸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가 살인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끌린다. 이성은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그의 본능과 무의식은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자기 자신을 향해 그를 이끈다. 다시 말해, 그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기존의 자신을 잃어버린다.
니체에게 예술가적 삶이란 주어진 도덕과 가치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내면화한 이성과 끊임없이 충돌해야 하며, 수많은 부정과 혼란을 통과해 그 안에 숨겨진 긍정을 발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준이 서래를 통해 경험하는 고통과 갈등은 예술가적 삶을 향한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해준은 끝내 자신의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을 온전히 직시하지 못한다. 니체가 말했던 “혼돈 속에서 춤추는 별”을 끝내 붙잡지 못한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망설이고 갈등하며 결정의 순간을 유예한다. 그렇게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깨달은 순간은 역설적으로 너무 늦게 찾아온다. 해준이 비로소 자신의 진실을 깨달았을 때, 서래는 이미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한 뒤였기 때문이다.
서래의 입장
서래의 대부분의 대사는 서툰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사극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웠기에 “마침내”와 같이 의미는 통하지만 일상에서는 다소 낯설게 들리는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그녀가 사용하는 중국어는 관객에게조차 번역되지 않는다. 관객은 해준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말에 의문을 품거나, 번역기의 결과를 기다리다가 오역 앞에서 함께 혼란을 경험한다. 이처럼 서래는 언어적으로도 완전히 해독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그녀는 대사와 행동, 표정 모두에서 모호함을 품고 있으며, 마치 안개 속에 머물다가 끝내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 속에서도 단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바로 해준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다. 그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택해서라도 해준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삶을 지켜가기를 바란다. 해준이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할 때조차 그녀는 꾸준히 그에게 다가간다. 첫 번째 사건에서 그의 마음을 이용할 때에도, 두 번째 사건에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때에도 그녀는 한결같이 ‘꼿꼿한’ 태도를 유지한다. 해준이 그녀에게 했던 표현처럼, 서래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살인에 가담하게 되더라도, 사건 현장의 피를 해준이 보지 않도록 닦아내더라도 망설임은 없다. 우연과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운명 앞에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그 목적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된다.
물론 이러한 서래의 선택은 쉽게 이해되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녀를 비이성적이라고 말할 것이고, 광기에 가까운 인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녀의 삶을 니체가 말한 ‘예술가적 삶’의 한 형태로 읽어보고 싶다.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가 부여한 가치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목적을 선택하고 그것을 끝까지 긍정하는 태도였다.
서래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도 해준의 기억 속에 남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녀는 해준이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붙잡고 방황하는 대신, 해준과 영원히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헤어질 결심’이다.
해준이 혼돈 속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고 자신의 내면과 씨름했다면, 서래는 물에 잉크가 번지듯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니체가 말한 ‘느림’과 본능적 확신의 태도를 보여주듯, 그녀는 불필요한 갈등으로 자신의 힘을 소모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선택한 가치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결국 서래의 ‘헤어질 결심’은 단순한 이별의 결심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해준을 향해 내린 최종적인 선택이며, 스스로 창조한 가치를 끝까지 긍정한 한 인간의 ‘예술적 결심’이었다.
나가며
영화 <헤어질 결심>은 비유와 은유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선명하면서도 모호하고, 관객은 끊임없이 미궁 속을 헤매게 된다. 영화는 주로 해준의 시점을 따라가지만, 그렇다고 그의 내면을 완전히 투명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꿈과 같은 연출을 통해 관객을 해준의 무의식 속으로 끌어들인다. 잠복근무 중인 해준이 마치 서래가 있는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연출되는 장면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며, 그의 의식보다 무의식이 얼마나 깊이 서래를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해준은 자신의 감정을 끝내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의 무의식은 이미 서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이성은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한다. 그래서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대신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라는 우회적인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유한다. 그래서 관객은 더욱 깊이 영화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 전체는 마치 안개와도 같다. 길이 보이는 듯하지만 명확하지 않고, 방향을 잡은 것 같다가도 어느새 길을 잃는다. 그리고 그 안개의 중심에는 서래가 있다. 그녀는 가장 짙은 안개이면서도, 동시에 그 안개 너머에 우뚝 솟아 있는 산과 같은 존재다. 관객은 그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녀를 따라가게 된다. 신원도, 의도도, 감정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는 살인자이면서도 연인이며, 기만하면서도 진실하다. 끊임없이 예측을 벗어나는 그녀의 존재는 영화 전체를 움직이는 미스터리의 핵심이다.
이처럼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영화를 단순한 줄거리나 도덕적 판단으로만 읽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니체의 철학을 통해 이 영화를 바라보고 싶었다. 나의 이성은 이 영화를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사랑을 다룬 불편한 이야기로 읽어낸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충동과 무의식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심미성과 예술성에 강하게 매혹된다. 그래서 이 글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거나, 인물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다만 니체의 철학을 통해 두 인물의 사랑과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한 하나의 시도이다.
니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준은 허무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무의식과 충동을 지나치게 억압하며 끊임없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서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자유와 창조의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파멸과 고통 또한 수반한다. 해준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회피한다. 그 결과 그는 혼돈 속에서 길을 잃고, 끊임없는 갈등과 망설임 속에 자신의 내면적 힘을 소모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눈앞에 두고도 결단하지 못한 채 카오스 속에 갇혀 버린다.
반면 서래는 다르다. 그녀 역시 혼돈 속에 살아가지만, 그 혼돈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창조한다. 그녀는 느리지만 확고하게 자신이 선택한 목적을 향해 걸어간다. 그 길이 외롭고 비참할지라도,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요구할지라도 망설이지 않는다. 해준이 폭풍 속에서 휩쓸려 흔들릴 때, 서래는 폭풍을 가로질러 나아간다. 그 끝이 절벽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가치를 끝까지 긍정한다.
결국 서래는 부정과 혼돈 속에서도 자신만의 긍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니체가 말한 ‘예술가적 인간’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보인다. 반면 해준은 그 가능성 앞에 섰지만 끝내 결단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나에게 <헤어질 결심>은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해일처럼 밀려온 운명 앞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선택한 두 인간의 이야기이다. 끝내 엇갈렸지만 결코 완전히 헤어질 수 없었던 해준과 서래의 관계는, 어쩌면 니체적 의미에서 서로 다른 삶의 태도가 빚어낸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예술적 사랑’의 한 형태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