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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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누가 나를 보고 있는지를 신경 쓰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시선 안에 있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그 시선이 사라지는 순간 허전함이 밀려온다.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균형을 찾으려 줄타기를 한다. 여기 이 시트콤들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를 넘어 우리를 바라보는 인물들이 있고, 그 시선을 받는 우리가 있고, 그 관계가 끝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모든 작품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시트콤은 그 시선의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 사람을 보다가 작품으로 들어가고, 작품이 나를 보고, 어느 순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삶으로 돌아간다.

 

 

 

사람에서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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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리키 저베이스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게 되었다. 그의 선을 넘는 유머, 여기에 웃은 나까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묘한 불쾌함, 흔히 말하는 'guilty pleasure'에 정신을 못 차리다 그가 영국판 오피스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대에서 인류의 평균을 깎아내리는 자조적인 유머가 오피스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해서 시트콤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즌1부터 시즌7까지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마이클 스콧은 그의 유머스타일의 귀여운 버전같다. 웃기려고 너무 애쓰다가 매번 평판을 망치고, 내용의 무례함 탓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한다. 그의 절박함은 관객인 우리에겐 코미디가 된다. 사랑받고 싶어서 매번 선을 넘는 사람인 그는, 때문에 사무실의 후임들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매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상사로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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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도 오피스와 같은 방식으로 접하게 되었다. 우연히 피비 윌러 브리지의 연극 독백 버전을 우연히 보았다. 한 여자가 혼자 무대에 서서 이야기하며 농담을 던지다가 갑자기 근본적인 우울로 파고 들어가는 방식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인상깊었다. 우스운 일상과 비극은 항상 동전의 양면같이 붙어 있다는 걸 잘 풀어낸 연극이었다. 그녀의 농담에 배 아프게 웃다가 정말 명치를 맞은 느낌은 내게 강렬하게 남았다. 그녀의 말 'we write to taste life twice'라는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아 한동안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워지기도 했다. 후에 이 연극이 사랑 받아 시트콤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품을 좋아하다가 작가를 알게 된 게 아니라, 작가가 말하는 방식을 먼저 접하고 그 웃음이 나중에 어떤 캐릭터로 굳어지는지를 따라간 경우라서 특별했다.

 


 

작품이 나를 보던 방식


 

작품 안에 들어가니 이번엔 그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오피스에서는 인물들이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카메라를 바라본다. "너도 혹시 보고 있니?" 하며 나를 포함시켜주는 방식은 감정이 배가 되도록 유도한다. 극 중 카메라를 보는 건 보통 짐이다. 드와이트나 마이클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짐이 카메라를 보며 그의 전매특허 표정을 짓는다. 주로 동의를 구하는 시선이다. "저거 정상은 아니지,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라는 무언의 합의를 요구한다. 짐을 바라보면 보통 그의 시선에 동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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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짐이 카메라를 잘 보지 않는 순간들은 보통 팸과 대화할 때다. 팸과 대화할 때만은 관객인 우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항상 팸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 끝에는 항상 팸이 자리하고 있다.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The Job" 에피소드의 장면은 둘의 관계에 있어 시선의 효과를 톡톡히 보여준다. 팸이 인터뷰 중에 짐과의 타이밍이 계속 안 맞았다는 걸 카메라에 토로하고 있을 때, 짐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오늘 저녁에 시간 있냐고 팸을 바라보며 묻는다. 팸이 그렇다고 하자 짐은 "그럼... 데이트네(Then... it's a date)"라고 말하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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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은 다시 카메라를 보는데,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무너진다. 울먹이면서 설레는, 정확히 그 사이의 얼굴을 우리를 바라보며 짓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함께 겪어온 에피소드와 그 둘의 엇갈렸던 시간이 떠올라 감동이 배가 된다. 팸 역의 젠나 피셔는 그 장면에서 실제로 카메라 뒤의 감독이 울고 있는 걸 보고 같이 울컥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카메라를 보는 행위, 카메라맨과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당신과의 공유를 오피스는 할 줄 안다. 시선을 공유한다는 게 결국 공감의 가장 기본 단계라는 걸 그 장면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플리백은 오피스와는 다르다. 그녀는 동의를 구하기 위해 보지 않고, 그저 곤경에 처한 자신의 상황을 애써 웃어 넘기기 위해 우리를 바라본다. 이빨이 못생긴 남자에게 실수로 플러팅을 했다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여동생이 이상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등장했는데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을 때, 곤란한 섹스를 하고 있을 때 드는 자신의 넋두리를 우리에게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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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즌2에서, 그녀가 자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는 걸 처음으로 알아채는 사람이 나온다. 바로 사제다. 대화 중에 플리백이 잠깐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걸면, 사제가 묻는다. "방금 어디 갔었어요? 어디 갔다 온 거예요." 플리백은 "아무 데도"라고 둘러대지만 사제는 속지 않는다. 극 중 어떤 인물도 몰랐던, 그녀가 매번 빠져나가는 그 틈을 사제만 본다. 이건 눈치가 빠른 게 아니다. 그녀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계속 따라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한참 전부터, 사제는 이미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나를 보러 가는 그 순간까지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의 끝에 누가 있는지 계속 바라본다. 이렇게 시선 끝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보는 건 엄청난 애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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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이라는 캐릭터를 보다가, 이 안에 짐이랑 마이클이 둘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은 회피형이다. 진지한 상황을 못 견뎌서 전부 농담으로 받아친다. 그게 오히려 안정적이라서 문제에 잘 안 얽힌다. 마이클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람을 좋아하고 그만큼 좋아함을 받고 싶어서 끊임없이 자기를 깎아내리고 선을 넘는 농담을 던지다가 실없는 사람 소리를 듣는다. 짐의 농담은 거리를 만들고, 마이클의 농담은 거리를 좁히려다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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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은 카메라를 보고 농담을 던질 때는 짐처럼 군다. 진지해지기 직전에 빠져나가는 사람. 사제가 "어디 갔었냐"고 물을 때 둘러대는 방식도 정확히 그거다. 근데 그 농담을 던지는 이유 자체는 마이클 쪽에 더 가깝다. 정말로 알려지고 싶은데 그게 두려워서 먼저 웃겨버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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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움직인다는 걸 알아본 데에는 내 안에도 항상 이 두 개의 마음이 같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안전하게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정말로 알려지고 싶은 마음. 둘 중 하나만 골라서 살기는 너무 어렵다. 농담으로 먼저 빠져나가면서도 동시에 누군가 그 농담 뒤를 봐주길 바란다. 플리백을 보는 내내 어느 한쪽으로도 마음을 완전히 못 놓은 이유가 거기 있다. 회피와 갈망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번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 나를 보지 않는다


 

한 학기를 같이 보낸 두 시트콤과 종강 시기에 같이 작별했다. 끝나는 자리에서 시선이 거꾸로 흘렀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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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의 작별은 따스한 졸업 같았다. 마이클이 떠나는 이유가 새로운 인연, 새로운 행복을 향해서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가 마이크를 떼고 팸과 나누는 대화를 못 들어도, 그게 슬픔의 대화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래서 남겨진 직원들도, 그 얘기를 못 듣는 우리도, 결국 그를 따뜻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다. 시선이 거둬졌지만 그 거둬짐 뒤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는 믿고 있다. 데이트를 신청받던 인터뷰에서 팸이 보여줬던 그 설레는 얼굴처럼, 마이클도 어딘가에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 작별이지만 안심이 되는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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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은 정반대다. 그녀는 처음으로 카메라가 아닌, 진짜 사람과 눈을 맞출 뻔했다. 시즌 내내 그녀가 어디로 시선을 돌리는지 알아채던 사람, "방금 어디 갔었어요"라고 물어봐주던 그 사람과. 드디어 카메라를 거치지 않고 누군가와 마주 볼 수 있게 됐는데, 그 사람이 "지나갈 거예요"라고 말하고 떠난다. 이 말이 잔인한 건, 위로로 쓰였지만 정말 지나갈지 안 지나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지나간다고 말해주는 사람 앞에서, 정말 지나갈까봐 무서운 마음, 동시에 지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는 절망감. 오피스처럼 "어딘가에서 잘 지낼 거야"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플리백이 카메라를 보지 않고 떠나는 이유는 나름 희망차다. 그녀의 시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녀도 자신의 삶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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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같이 보낸 이번 학기는 다른 두 가지 작별을 나에게 보여줬다. 오피스는 사람이 떠나도 그 사람의 행복을 믿을 수 있는 성숙한 작별이었고, 플리백은 드디어 마주 본 시선이 "지나갈 거다"라는 말 한마디로 흩어져서, 그 말이 맞을지 틀릴지 알아보는 미래가 놓여진 작별이었다. 그런데 두 학기 동안 나는 계속 보는 쪽이었다. 카메라 너머에서 짐의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받고, 플리백이 슬쩍 돌리는 시선을 따라가던 쪽. 이제는 입장이 바뀐다.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누군가의 시선 안에 있다가 그 시선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되는 건 오히려 내 쪽이다. 그래서 둘 중 어느 작별에 가까운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나와의 잠깐의 작별이 내 행복을 믿으며 보낼 수 있는 작별일 수도 있을 것이고, 지나갈지 끝내 모르는 채로 남는 작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선이 시작되는 방식, 시선이 흐르는 관계, 그리고 시선이 어떻게 종착지를 만드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 두 작품과의 작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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