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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계절의 이유 – 배신하지 않을 버팀목 [도서]

성실하길 멈추지 않는 계절이 있어서

by 이한별 에디터
2026.06.06 14:32

 

 

찌뿌둥한 몸을 겨우 일으켜 눈 비비적거리는 출근을 준비한다. 자기 직전까지 휴대전화 불빛으로 눈을 피곤하게 한 탓일까, 뻐근하게 퉁퉁 부은 눈을 반쯤 뜨고 정신이 상쾌해질 만한 무언가를 갈구하며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 뒤에 주어지는 선택지는 두 가지. 가뜩이나 피로한 몸을 좀비처럼 가눌 것인지, 다시 태어난 새 생명처럼 활기찬 발걸음을 디딜 것인지. 그리고 이건 오직 날씨와 계절만이 결정할 수 있다.

   

자칭 ‘날씨의 아이’라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날씨가 내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내 기분도 땅으로 박히는 빗물처럼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반면, 해가 쨍쨍하거나 온도가 딱 맞는 바람이 불어와 그 에너지가 몸에 그대로 스며드는 날이면 눈앞의 모든 것이 반짝거려 절로 드는 행복감을 주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날씨의 빈도를 결정하는 것은 계절. 봄에는 어딜 둘러봐도 꽃이 만발해 있고 여름에는 밤보다 낮이 훨씬 길어져 해를 곁에 두는 시간도 길다. 가을에는 선선한 바람이 주는 정취를 누릴 날이 많지만, 겨울에는 밖에 나서기만 해도 몸이 쪼그라든다. 나의 기분, 나의 행복,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계절. 이 자체만으로 이 책에 눈길이 갔다.

 

 

계절의 이유_앞표지_도서출판 잔.jpg


이고은 작가의 에세이 책 <계절의 이유>에서 계절은 특별한 역할을 해준다. 처음에는 계절마다 느낄 수 있는 감상을 경험에 빗대어 쓴 글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작가에게 계절은 그런 바라봄의 대상이 아니었다. 동떨어져서 관찰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계절은 상실을 겪고 있는 작가를 위로하는 알맞은 치유제이자 버팀목이었고 나아가 인생 선배이자 사려 깊은 동반자였다. 계절은 작가에게 가깝게 다가가 감정을 상기시키고 풀어주고 있었다.


인생에는 미리 예방하거나 피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슬픈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은 무심히 찾아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아무리 작은 슬픔이라도 해도 그 무게가 가볍지는 않을 것이며, 슬픈 일은 매일매일 일어난다. 그럼에도 내일을 살기 위해 마음을 가다 듬는다. 슬픔이 해소되면서 삶은 다시 굴러간다. 그러나 머지않아 또 다른 슬픔이 찾아온다.


만약 해소할 수 없이 도저히 감당이 어려운 슬픔이라면? 수많은 내일을 버티며 살아내도 얼룩처럼 물들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무거운 납 같은 슬픔이라면.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 마음을 지속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긴 삶의 여정을 달려가기 겁먹게 한다. 가령 소중한 이를 잃는 게 가장 보편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작가는 아버지를 여의고 머지않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사랑스러운 강아지 스티치까지 떠나보낸다. 셋 중 하나만 곁에서 잃어도 얻는 상실감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일 것이다. 몇 번의 계절을 지나오며 작가는 긍정적으로 감정을 승화시켰지만 다 추스르지 못해 남은 감정은 그것대로 글에 묻어 있다. 그래서였을까, 글을 읽는 내내 작가에게 마음 다해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었던 마지막 여름이었다. 아빠가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던 그때의 나에게, 그동안 잘 견뎠다고, 애썼다고 말해 줘야지. 이 여름이 지나는 동안, 이 슬픔도 기꺼이 떠나보낼 것이다.”


- 128p, <계절의 이유>, 이고은

 

 

‘여름은 매미가 우는 계절’. 매미는 여름의 불청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치닫는 여름을 알리기에 매미만 한 게 또 없다. 여름임을 의심하지 못하게 못 박아버리는 매미는 요란한 소음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픈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위독한 아버지가 거처를 시골집으로 옮기고 편안한 낮잠을 청하려는 순간을 방해하던 매미가 미웠던 작가는 여러 번 매미를 향해 돌을 던졌다. 곧 떠날 것이 분명한 아버지를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는 모조리 다 미워서 해소되지 않던 마음은 매미를 향했다. 잘 눌러왔던 마음이 여름의 필수 방문객 매미를 볼 때마다 주체할 수 없이 괴로워진 작가는 여러 번의 여름을 지나며 태도를 달리한다. “이 여름이 지나는 동안, 이 슬픔도 기꺼이 떠나보낼 것”이라고. 심지어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라고 한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비록 내게 여름은 상실의 계절이었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은 내몸과 마음에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다시 살아갈 힘을 가득 채워 주었다. 이제 내게 여름은 생명의 계절이다. 나는 지금도, 그 찬란한 햇빛 아래를 걷고 있다.”


- 139p, <계절의 이유>, 이고은

 

 

내게도 여름이 무언가 잃는 계절이었던 때가 있다. 처음으로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을 곁에 두었던 여름이었다. 그러나 그 계절을 지나면서도,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여름은 내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작가에 비하면 아주 얕고 짤막한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작가는 상실의 늪에서 벗어나려 부단히도 노력했을 거다. 이대로 주저앉는 자신을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상실이 생명으로 다가오게 하려고 그가 쬐었을 햇빛과 흘려보냈을 눈물은 감히 계산해 낼 수 없지만 상실의 구멍을 채워 준 건 끝이 있는 계절과 성실히 돌아오는 계절이었으리라.

 

싱그러운 초록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는 여름의 잎이 빨간색으로 변하고, 그 잎마저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고집스럽게 제 자리를 지키고 나면 그 자리에는 또 팝콘 같은 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다. 그리고 또다시 반가운 초록으로 물드는 이 계절이 온다. 지치지도 않고 착실하게 돌아오는 계절을 보면 제아무리 반복되는 슬픔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대도 계속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해도 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누그러뜨려도 도저히 없어지진 않는 마음의 응어리들이 얄밉게 반복되는 이 생을 살아내는 게 벅차게 느껴질 때면 우선 밖으로 나간다. 공짜로 주어진 이 계절의 곳곳을 누비고 온몸으로 받아내고 나면, 늘 제 자리를 지키는 계절이라는 든든한 인생 선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내 앞에서 길잡이가 되어주고 앞서 나가는 계절과 같이 변모하면서 성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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