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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영화 <너바나 더 밴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라는 건 뭘까. 온갖 괴수들의 위협 앞에 기꺼이 자신의 등을 내어주는 것? 또는 바다에 빠진 친구와 100억원 짜리 다이아몬드를 보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를 구하러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 사실 그렇게 거창할 건 없다.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이하 <너바나 더 밴드>)의 등장인물이자 둘도 없는 콤비 '맷'과 '제이'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다 됐고, 그냥 나이가 들어서도 처음 만났던 그때와 같이 순수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충분하다고.
<빠더너스>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어느 날, 유튜버 <빠더너스> 채널에 영상 하나가 업로드된다.
스케치 코미디를 주력으로 선보이는 채널 <빠더너스>는 문상훈을 비롯한 멤버들의 낭만적인 케미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채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채널에 불쑥 업로드된 영상 하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코미디 영화를 직접 수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빠더너스는 프랑스 칸영화제 마켓에 직접 찾아가 코미디 영화 수입을 시도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한 영화를 보고 나온 문상훈은 곧장 말한다. "이걸로 하시죠." 그로부터 약 11개월이 흐른 지금, 비로소 <너바나 더 밴드>가 개봉했다.
세상은 항상 둘로 나뉘지. 꿈을 이룬 사람과,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
둘도 없는 친구 맷과 제이는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 둘째, 언젠가 리볼리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셋째, 마음이 맞는 절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맷에게는 제이가, 제이에게는 맷이 있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를 사랑하는 서로가. 맷과 제이가 가진 공통된 꿈이자 목적은 바로 '리볼리' 무대에 오르는 것. 2008년, 리볼리에서 공연을 하고자 했던 둘은 공연장 앞에 자신들을 홍보하는 전단지를 붙이면서 웃음을 주고받는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고, 이 콤비는 여전히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 서로가 있다는 것. 그리고 리볼리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은 아직도 리볼리 무대를 밟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맷이 기가 막힌 작전 하나를 떠올렸다며 흥분해 소리친다. 그건 바로 '스카이다이빙' 작전이다. CN타워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바로 아래 위치한 스카이돔으로 낙하한 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우리의 리볼리 공연을 선포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글로만 읽어도 허무맹랑한 이 작전은 스크린으로 보면 더 허무맹랑한데, 그런 와중에도 제이는 묵묵히 맷을 따른다. 그러니까 정말로 CN타워에서 뛰어내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작전은 처참히 실패하고, 제이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진다. 17년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소를 간직한 맷은 또 다른 작전이 떠올랐다며 두 눈을 번뜩인다. 그건 이른바 '타임머신 작전'이다. 맷은 타임머신을 타고 불시착한 척 연기해 사람들의 이목을 끈 뒤 리볼리에서 공연을 하자는 황당무계한 작전을 떠들어대지만, 제이는 이제 그만둘 때임을 직감한다.
세상은 늘 그렇게 둘로 나뉜다. 꿈을 이룬 사람과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
아니, 꿈을 좇는 사람과 내려놓은 사람으로.
야심찬 이야기 속 페이크 다큐멘터리
이제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그러나 모종의 사건으로 얽혀들며 정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이동해 버린다. 그들이 처음 리볼리에서 공연을 하고자 마음먹은 2008년으로. 그때부터 이야기의 볼륨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맷과 제이가 과거를 건드리는 바람에 바뀌어버린 세계선에서 좌충우돌하는 장면은 안쓰럽지만 그럴수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수습하기 위해 토론토를 질주하는 맷과 제이의 모습만으로 이미 웃음이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치였다.
토론토를 돌아다니는 맷과 제이를 보다 보면 중간중간 실제 시민들이 등장하거나 그들이 직접 개입해 주인공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의 리액션이 포착된다. 누가 봐도 '배우'가 아닌 토론토의 시민의 모습을 한 그들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연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관객은 신선한 당혹감에 빠진다. 섭외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걸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게 결국 이 영화 특유의 스타일임을 받아들이고, 모든 연출에 관대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고 나면 이제 맷과 제이는 걷잡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나아가게 된다.
내 세상은 네가 없는 세상과 있는 세상으로 나뉘어
바뀐 세계선에서는 꿈을 이룬 제이와, 그렇지 못한 맷이 아예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하지만 제이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성공을 거머쥐었음에도 어딘가 허전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농담을 받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떤 유머 코드도 통하지 않는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간절히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맷이다. 17년간 성공 근처에 다달아 본 적도 없지만 여전히 웃음을 공유하고, 실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한 원동력 말이다. 맷 역시 제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를 놓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친구니까.
내내 그렇게 한바탕 웃게 만들어 놓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가슴 저릿한 우정에 대한 고백을 하다니. 그렇게 서로를 마주한 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는 어쩐지 질투심마저 일었다. 17년 동안 변치 않고 그때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우정이라니.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이미 꿈을 이룬 거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반드시, 반드시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반드시 <빽 투 더 퓨처>를 보고 관람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영화 곳곳에 <빽 투 더 퓨처>를 오마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해 후회가 막심했다. 만약 아직 <너바나 더 밴드>를 보기 전이라면 <빽 투 더 퓨처>를 미리 보고 가시기를 권한다.
이 영화는 2008년에 찍은 웹시리즈에서부터 시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극 중 맷의 바지를 보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데, 그의 모자와 바지는 2008년 첫 웹시리즈 촬영 때부터 실제로 착용했던 소품이라고 한다. 하나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17년간 이어져 결국 영화로까지 개봉된 사실을 곱씹다 보면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 수입사 '빠더너스'라는 정체성이 더해지니 그 낭만의 농도는 더욱 짙어진다.
우정에 대한, 우정에 의한 영화 <너바나 더 밴드>는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그 너머에 있을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난 너 같은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된다고. 아무리 거대한 성공과 부를 거머쥐었다고 해도, 너 없이 재미없을 그런 삶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그렇게 <너바나 더 밴드>는 이 사회에서 점점 잊혀 가는 낭만이라는 감정을 다시 불러오며, 우리는 끝까지 가슴 한편에 낭만을 품은 채 살아가야만 한다고 소리 높여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