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이었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두터운데 어쩐지 집에서는 집중이 잘되지 않아 노트북을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기분 전환을 위해 동네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고, 평소 구월동에 가고 싶었던 카페가 몇 군데 있어 구월동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지도 앱에서 저장해 둔 카페를 하나씩 눌러보던 중, 이름이 특이해 눈길이 가는 곳이 하나 있었다. 카페 파락호. 입안에서 둔탁하게 발음되는 글자들이 매력적이어서, 그리고 흔치 않은 디저트 메뉴가 관심을 끌어서 이곳을 목적지로 정하게 되었다.
계단을 올라 2층에 올라서자 '사랑은 열린 문'이라는, 익숙하면서도 고전적인 문장이 손잡이 위에 붙어 있었다. 그 아래 작게 적힌 '문 열려 있어요'까지, 헛웃음 나오는 작은 농담 같은 말들이 들어가기도 전부터 카페의 성격을 보여 주는 듯했다.
<파락호>에는 상당히 많은 도서가 갖춰져 있다. 널따란 책장이 가득 차 있고, 카페 중앙에 있는 두 개의 장식장에도 책이 잔뜩 올려져 있다. 몇 년 전 인기 있던 베스트셀러는 물론 최근에 발매된 도서들도 여럿 있어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별생각 없이 가벼운 생각으로 들어섰다가도 자신이 선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무수한 책들을 보게 되면 슬쩍 집어 들게 될지도 모른다.
파락호의 대표 디저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밤 티라미수, 다른 하나는 하겐다즈 약과 케이크이다. 두 메뉴 모두 크게 달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이게 디저트류에 대한 최상의 칭찬이라는 것을-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메뉴가 아니라서 매번 디저트를 주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대개 작업을 하기 위해 <파락호>에 방문하는데,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당 충전에 딱 제격이다.
<파락호>에 유독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 이유는 주문한 메뉴와 함께 나왔던 티슈에 적힌 글 때문이었다. "파락호"라는 단어가 '가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방탕한 무뢰한'을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렇게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를 카페의 이름으로 짓게 된 것이 조금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해석한 '파락호'는 단순히 방탕한 이가 아니라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누군가라는 것을 깨닫자 나도 그 행보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기꺼이 깨어지고 손가락질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니. 추락이라는 게 이렇게 멋있는 일이었나?
<파락호>의 캐치프레이즈라고 할 수 있는 '자유롭게 행복하세요'가 적힌 명패, 벽에 걸린 족자, 책장 위 전시된 부채나 도자기 등등. 카페 이름과 어울리는 인테리어 디자인도 이곳을 찾게 하는 데 한몫한다. 왜인지 조선시대 한량이 된 느낌이 든달까. 그 옛날 하릴없는 선비들이 그러했듯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적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음이 붕 뜨고 온갖 생각이 정처없이 머릿속을 뛰놀 때, 제 2의 집처럼 나의 아지트가 되어준 곳. 혹여 세상과 불화하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해 소개의 글을 써 본다.
이 글을 읽고 <파락호>를 방문할 누군가라면, 미리 반갑게 인사를 해 두겠다. '파락호'가 된 것을 환영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