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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나미키 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올 그린스>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눈부신 미래를 스스로 쥐고자 하는 세 여고생의 작당 모의를 그린 청춘 크라임 무비라고 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 상영하며 호평받은 영화로, 세 사람의 우정과 성장을 강렬하게 전한다.

 

 

 

1. 적법하지 않은 그들을 향한 응원


 

청춘을 닮은 푸릇함이 가득한 포스터와 예고편 영상을 봤을 때는 ‘청소년관람불가’라는 등급이 의아했다. 하지만 주요 소재가 등장한 순간 영화가 왜 해당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비록 주인공이 청소년일지라도 ‘대마’라는 소재는 청소년에게 적절하지 않다.


어느 시골의 공업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히데미는 소규모의 사이퍼 크루에서 활동하며 역 앞에서 랩을 하며 지낸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음 터놓고 있지 못하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그런 일상이 깨진 것은 그에게 관심을 보인 트랙 메이커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를 기점으로 한다. 겁탈하려는 그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한 히데미는 우연히 발견한 대마 씨앗을 훔친 채 달아난다.


히데미는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미루쿠는 한부모 가정에 그마저도 온전치 않은 부모의 방임에 이른 상황, 이와쿠마의 집안은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이다. 모두 독립을 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함께 대마를 키우고 판매하기로 한다. 답답한 시골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한 세 사람의 작당 모의는 그렇게 시작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라고 한들 대마를 재배하고 판매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악당’, ‘나쁜 짓’이라고 칭하며 그것이 범죄임을 인식하고 있다. 범죄를 미화하고 범죄자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행위 자체의 시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이르게 된 상황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힘이 없는 청소년들이 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왜 하필 그것이었어야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올 그린스>는 이러한 상황을 무겁지 않게, 때로는 발랄하게 지적한다. 성범죄, 가정폭력, 기계를 다루는 현장의 위험성 등 여러 문제 상황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 무엇도 그들의 창창한 앞날에 방해가 될 수 없다는 듯이, 그리 쉽게 무너질 만한 일은 아니란 듯이 풀어낸다.


가장 약한 자부터 죽는 법이라고 한다. 히데미의 생각이자 그가 뱉은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최대한 ‘약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범죄 현장에서 자력으로 벗어났고, 돈을 벌어서 독립하고자 했으며 협박으로부터 도망쳤다. 그것이 설령 대마와 얽혀 있더라도. 졸업식에 참여한 모두가 즐거운 듯 웃었다. 그것이 설령 대마의 영향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에서 대마는 그저 수단이었다. 그래서 행동의 이유와 과정, 결과 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약한 자들이 발버둥 치는 과정을 응원하게 되었다.

 

 

 

2. 청춘과 우정


 

협박당하는 상황을 공유한 히데미가 홀로 책임지길 자처하지만 미루쿠와 이와쿠마는 끝까지 함께 정리하길 택한다. 상황이 맞물렸을 뿐인 동업자, 우연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이상 서로를 응원하고 의지했다. 교문이 과연 지옥으로의 입구일지 출구일지 질문하던 히데미는 마치 탈출구를 찾은 양 힘차게 달려 나가고 미루쿠는 그 뒷모습에 ‘달려’라고 외치며 격려하고 응원한다. 소녀들의 초록빛 우정과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끝까지 반전을 거듭한다. 초반부 뉴스 장면을 통해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탄 남성 시신을 찾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것이 결말을 보여주는 장치인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히데미가 끝내 죽음을 택하는 듯이 보였지만 그는 그저 죽어라 달릴 뿐이었다. 이후에 세 사람이 어떻게 살게 되는지 차례대로 등장하고, 예상외로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찰나 미루쿠가 그럴 리 있겠냐며 일갈한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이 <올 그린스>의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심각하게 상황을 이끄는 듯하다가도 때때로 가볍고 발랄하게 문제를 지적한다. 미성년들의 사고를 닮은 듯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도 정직하게 표현해낸다.


우리가 알고 상상하고 겪어온 청춘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다른 의미의 ‘초록’일지라도 그들의 청춘은 푸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들의 청춘도 저마다의 초록빛을 머금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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