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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나의 집, 나의 키리에(Kyrie) - 연극 '키리에' [공연]

능동적 구원서사의 판타지

by 장연우 에디터
2026.03.24 10:37

 

 

[키리에] 2023 공연사진 1 ©국립정동극장.jpg

 

 

독일의 어느 검은 숲에는 섬뜩하고도 슬픈 전설이 있다. 이 숲을 지난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숲은 사람을 집어 삼키고 그들의 기쁘거나 슬픈 생을 단번에 소멸시켜 버리는 ‘죽음’의 공간으로 통했다.

 

그래서일까. 저마다의 안식을 찾아 이 숲을 찾은 이들이 있었다.


검은 숲의 근처에는 숲을 닮은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다. 어느 천재 건축가가 원래 그곳에 있던 집을 허물고 다시 지은 집. 그는 그 집을 짓고 오래 지나지 않아 과로사했고, 미처 소진되지 못한 그 영혼이 집에 깃들었다. 그는 이제 ‘집’ 그 자체가 되었다. ‘집’은 그것을 ‘이기적인 에고이스트’의 형벌로 여긴다. 그는 소중한 이들을 위하여 집을 지어줄 순 있었지만 집이 되어주진 못한 걸 후회했다.


25년이 지나 그 집에는 ‘엠마’와 그의 아픈 남편이 살게 되고, ‘엠마’는 안식을 찾아 검은 숲에 찾아오는 이들을 돌본다. ’집’은 그들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그들의 삶에 때때로 개입하며 타인을 위해 울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견고했던 자의식의 벽을 죽어서야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집’이 껴안은 ‘엠마’와 ‘엠마’가 돌보던 ‘관수’, ‘목련’, ‘분재’는 원래의 목적, 혹은 의도를 거슬러 죽음을 기각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에 다가감으로써 자신의 삶을 구원하고자 했던 이들은, 이 숲과 집에서 죽음을 포기하고, 다시 삶을 향해 되돌아간다.

 

이후 그들의 삶에 대해 관객은 알 수 없다. 그들의 삶으로의 귀환은 행복이나, 더 나아진 삶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아직 ‘구원’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키리에] 2023 공연사진 6 ©국립정동극장.jpg

 

 

‘키리에(Kyrie)’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라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말로 ‘주님’을 의미한다.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말이었던 ‘키리에’는 극 속에서 나와 타자에 대한 구원으로 그 외연이 확장된다.

 

하지만 단순히 죽음의 기각, 혹은 실패가 그들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키리에>는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 대립항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어서도 ‘집’처럼 자의식에 갇혀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장치가 거의 없는 여백의 무대를 바라보며 관객이 상상한 검은 숲의 전설은 실체가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전통적인 구원 서사를 전복한다. 그들에게 구원은 검은 숲에서의 소멸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죽지 못했다. 그들이 죽지 못한 까닭은 서로를 응시하고 돌보다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방식은 서로의 생을 조금 더 지연시키고, 죽음을 유예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구원을 빈칸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키리에] 2023 공연사진 2 ©국립정동극장.jpg

 

 

‘집’은 결국 죽음을 미루고 삶을 돌보는 ‘임시 피난처’가 된다. 한때는 타인을 위하지 못했던 존재가 이제는 타인을 사랑으로 끌어안고, 삶을 지연시키는 공간이 된다는 점에서 이 집은 구원의 ‘완료’가 아닌 구원의 ‘지속’을 꿈꾼다.

 

구원서사의 새로운 판타지를 제안하는 <키리에>는 4월 15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4월에는 대전 지방공연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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