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이들이 순수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인생이 괴롭고 쓰게 느껴질 때마다, 아름다웠던 어린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정말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어린이 시절에, 어린이 시절 나름의 고통이 없었던가? 그때의 불안과 두려움은 거짓이었던가?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아해’들이 느끼는 ‘무서움’을 다양한 양상으로 풀어낸다.
아해들이 살아가기 무섭다그리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어린이들이 느끼는 실제적인 무서움을 다룬다. 부모님의 사랑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어린이의 시선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보호자 간의 갈등, 또래 집단 사이에서의 다툼 등. 어른들도 어린이 시절에 이러한 갈등을 겪어 보았지만, 올챙이 적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너무나 쉽게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별것 아니었지’라는 말로 넘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어린이들은, 그 무서움의 감정이 자신들에게는 ‘현재진행형’임을 어른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느끼는 무서움은 실존하며, 절대 가볍지 않다.
202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내는 어린이들만이 느끼는 무서움도 있다. 연극은 나보다 잘난 사람들만 보여 주는 스마트폰, 24/7 대중에게 노출되는 삶을 사는 청소년 아이돌의 문제를 다룬다. ‘노키즈존’으로 인해 사회에서 여러 번 거부당한 경험을 갖게 된 이야기도 다룬다. 지구 어딘가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어린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축소하지 않고, 그들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이 순간을 살아내는 온전한 한 사람이므로, 그들의 두려움은 지나갈 해프닝이 아니라, 현존하고 있는 감정이다.
아해들이 존재하기 무섭다그리오
이 연극은 또한, 단순히 어린이들이 무서움을 느끼는 순간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어린이 시절에 어렴풋이 느꼈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점점 더 크게 느끼는 실존적인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 역시 다룬다.
극은 ‘태어나기’ 무섭다고 하는 제 1 아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사는 건 고통이란다’라고 말한다. 사는 것은 왜 고통인가, 끊임없이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응원은 응원인 동시에 부담이다. 어린이는 막연히 어른이 되는 것을 기대한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달리는 것이 무섭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어른이 된 관객은 안다, 여전히 달리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아직도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아는 것은 요원하고, 그저 덜 무서운 척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마지막, 열세 번째 아해는 ‘나 가 무섭다’고 선언하게 된다.
어른이 된 아해도 무섭다그리오
세 개의 문이 있다. 어린이는 어느 문을 통과하여 달려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때 어른이 된 어린이가 돌아온다. 어른은 스카이콩콩을 차고 나타난다. 어린이보다 훌쩍 큰 키지만, 커진 키만큼 불안정하기도 하다. 둘은 금방 서로를 알아본다. 각자가 서로의 과거와 미래라는 것을 금방 알아챈다. 비틀비틀 위태롭게 선 미래의 자신에게, 어린이는 어느 것이 맞는 문인지 어른에게 물어보지만, 어른이 된 아해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른이 되면 단단하게 서 있게 될 줄 알았던 어린이의 희망과 달리, 어른도 키만 큰 어린이와 다르지 않다. 어른의 무서움을 목격한 어린이도 덜컥 무서워진다. 질주하는 아해들은 무서워한다.
그러나 이상의 <오감도>가 이야기하듯, ‘아해들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고, ‘13인의 아해는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다. 달리는 것이 무서워도 괜찮고,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마주한 현재는 마침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자 역설적으로 ‘달려도 괜찮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하여 어른이 된 아해는 문을 열고 달리기 시작한다.
아해들이 극장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겟소
극 외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연극은 어린이의,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연극이다. 어른의 시선에서 보는 ‘순수하고 아이다운’ 모습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 아이들의 모습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노력의 결과였을까, 어린이 배우들의 대사에 어린이 관객들은 시종일관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고려는 공연의 텍스트와 메시지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완전히 불을 끄지 않은 객석, 아이들용 방석을 미리 준비한 꼼꼼함, 아이들의 반응을 공연의 일부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가 만든 ‘열린 객석’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숨 쉬고 웃고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연극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극장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린 객석>과 같은 시도가 더 많아진다면, 극장은 더 이상 경직된 예절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감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린이 역시 당당한 주체로 서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