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밥을 먹으면서 무엇을 볼 것인가? 음식이 식기 전 빠르게 화면을 유랑하며 최적의 콘텐츠를 찾아내야 한다!
오래된 방송들을 재가공하고 추억을 떠올리는 일이 늘어나는 만큼, 20년째 우리의 곁을 지켜주고 있는 ‘밥 친구’가 있다. 바로 ‘하이킥 시리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시즌은 ‘하이킥 유니버스’의 선두 주자라고 볼 수 있는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거침없이 하이킥>은 2006년 11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채 1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방영하였지만,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으며 한국 시트콤 방송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수많은 밈과 클립 영상 속에는 굵직한 경력의 국민 배우들부터 톱스타들의 풋풋한 신인 시절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이킥이 또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유튜브의 ‘오분순삭’ 채널이었다. 필자 역시 해당 채널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과연 채널의 목적대로, 잠시 휴식 시간을 채우기 위해 영상을 틀면 순식간에 ‘5+N분’가량을 몰입하며 '순삭'당하곤 했다.
사실 당연한 것이, 대부분의 영상이 5분인 것처럼 둔갑하고 있다. 영상 상단에 뜨는 타이머는 뻔뻔하게 5분이 남은 시점부터 등장해 흘러가기 시작한다. 또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할 정도로 센스 있고 유쾌한 편집자의 자막은 애청자층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황당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이러한 채널의 매력은, 방영 당시 시청하지 않았던 젊은 세대들까지 새로운 시청층으로 유입시켰다.
하이킥은 정말 매 회차가 알차고 재밌지만, 그중에서도 근본 에피소드 회차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고 여러 번 돌려본 에피소드이기에 강력히 추천한다.
웰컴투 민용랜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독특하면서도 단연코 빠질 수 없는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창고에서 민용의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봉'이다. 남녀노소 거주자든 방문객이든 스스럼없이 이용하는 이 생뚱맞은 이동 수단인 봉은 없으면 서운한 요소가 되었다. 봉을 타고 내려오며 툭 던지는 대사나 봉 하나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가족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 집안의 시끌벅적한 생동감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다.
봉을 타고 올라가면 드러나는 옥탑방은 가족 몰래 이혼 후 숨어 살던 민용의 거처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민용만의 방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되기도 하고, 순재의 서재가 되기도 하며, 준하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숨어드는 피신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낸다. 때로는 객식구들이 제 집처럼 머무르는 이 작은 아지트는 결국 모두가 모여드는 '민용랜드'로 거듭났다.
객식구 대전
민호의 단짝 친구 범이는 하이킥 하우스를 제 집처럼 넘나드는 '넘버원 객식구'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범이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력한 라이벌이 불쑥 나타난다. 바로 윤호의 친구 찬성이다. 찬성이는 랩과 춤을 선보이고 토끼 모양으로 사과를 깎는 등 특유의 넉살과 화려한 장기로 식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다. 이에 범이는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대체 왜 자기 집을 놔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가 싶다가도, 타인의 집에서 마스코트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웃음이 터진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잼컨'이 끊이질 않는 하우스이기에, 제 발로 찾아와 식구가 되기를 자처하는 객식구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성적이 오른 윤호
하이킥이 사랑받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극 중 윤호는 쌍둥이 형 민호와는 달리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었지만, 서 선생을 만난 뒤 마음을 잡고 성적을 올린다. 그러나 가족들 사이에서 윤호는 여전히 모범생 민호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런 윤호의 노력을 가장 먼저 알아준 건 아빠 준하이다. 평소 순재에게 구박받으며 어리바리해 보이던 준하였지만, 그는 아빠로서 자신만의 서투른 방식으로 아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물론 해미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윤호와 민호 형제를 사랑한다. 다만 때로는 그 진심이 서로에게 닿지 못해 엇갈릴 뿐이다. 가족이기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서운함이 작은 말 한마디와 손길로 눈 녹듯 풀리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우리네 가족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
여전히 거침없이 하이킥!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던 존재와의 이별은 슬프다. 비록 시트콤답지 않은 쓸쓸한 이별로 마무리했지만, 극 중 하이킥 식구들은 여전히 우리 곁 어딘가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하이킥이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잘 녹여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3대 대가족의 모습은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면서도 끝내 밥상 앞에 모여 다 같이 밥을 먹는 끈끈한 가족애를 상기시킨다. 투박하고 서투르지만 따뜻한 휴머니즘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뭉클한 감동을 준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 속에서, 하이킥이 주는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은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에 대해 말해주는 듯하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식지 않은 밥 한 그릇을 두고, 여전히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들의 세상을 다시 한번 마주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