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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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영화를 이길 수 있을까. 이야기라는 장르에 매료된 후로 계속 들었던 의문이다. 이야기는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삶의 뒷면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고, 난 언제나 이를 통해 두 박자씩은 늦게 삶의 어떤 면을 이해하곤 했으므로 나에게 있어 이야기란, 또 영화란,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환상의 묘약이자 삶보다 더 아름다운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보고 돌아오던 날, 이런 고집스런 내 믿음이 얼마나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삶과 영화, 그 둘 중 무엇이 무엇의 전후에 위치하고, 또 무엇이 무엇을 압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골몰할 일이 아니었음을 세 시간이 남짓한 시간 동안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는 앞에 있는 것만 보고 뒤에 있는 건 못 보잖아요. 그러니 진실의 반만 보는 거죠.” 이에 또 다른 누군가는 대답한다. “카메라가 그것을 볼 수 있게 한단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이해하기 힘든 삶의 일부를 일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영화의 강력한 힘을 분명 신뢰한다. 영화가 있기에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삶의 뒷면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의 임무인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영화가 삶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의 ‘승리’를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삶의 영역과 이야기의 영역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이들이 서로를 어떻게 돕는지,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얇은 겹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는지, 그래서 결국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의미 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오래 공들여 설명한다. <하나 그리고 둘>엔 영화가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할 수 있는지, 또 삶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한 깊은 탐구가 담겨있다. 여기엔 승패가 없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는, <하나 그리고 둘>이 말하는 영화의 힘은, 반쪽짜리 진실이나 혹은 거짓만을 손에 쥐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서 생기는 현실의 사각지대를 포착하는 것이다. 남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남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영화의 힘이라면, 그 힘은 현실의 관객으로 하여금 삶은 충분히 아름답고 신비한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데에 작용한다. 우리가 몰랐던, 혹은 반만 알고 있었던 삶의 이면과 타인의 이면, 혹은 사건과 상황의 내막은 관련 없는 것 같아 보이던 개별의 삶들이 사실 아주 치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과, 그 마주침으로 인해 계속해서 확장하고 협응하는 것이 세상이고 삶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우리가 미처 놓치며 살고 있는 이러한 삶의 신비로운 교차를 포착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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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의 이야기는 결혼식에서 시작되어 장례식으로 끝난다. 삶(결혼식)에서 시작되어 죽음(장례식)으로 끝나는, 그 모든 과정에 존재하는 반전과 교차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생의 어떤 것들이 아주 얇은 겹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신비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것이 인생이듯, 한밤중에 울려 퍼지는 이웃의 고통스러운 절규가 탄생의 첫 울음으로 이어질 수도, 순수한 아이의 풍선이 불순한 의도를 담은 콘돔이 될 수도 있는 것. 영화는 이렇듯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교차하지 않을 듯한 것들이 삶이라는 큰 사이클 안에서 끝없이 순환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많이 닮아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특히 아버지 NJ와 그의 딸 팅팅이 서로 다른 삶의 시간대에서 동일한 경험을 하는 거리의 장면은 이러한 삶의 교차성을 가장 잘 함의하고 있는 영화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그의 첫사랑과 지지부진한 소통의 문제로 헤어진 후 일본에서 다시 만나 손을 잡고 걷고, 팅팅 또한 패티와 사랑을 시작하며 대만의 한 교차로에서 손을 잡는다. 이때 화면엔 딸 팅팅과 패티의 모습이 잡히고, 동시에 아버지 NJ의 목소리가 겹치며 이들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버지의 삶은 딸의 삶과 이어지고, 교차되지 않을 것 같은 삶이 큰 사이클 안에서 순환한다. 삶의 교차와 순환을 표현한 장면들의 유려한 편집과 연출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그리고 둘>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또 다른 이유는 삶의 아이러니를 대하는 영화의 태도였다. 삶의 많은 부분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반전된 것인 듯 보이다가도 이들이 닮아있다는 것, 우리는 삶을 살면서도 뒤늦게 삶의 사각지대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기에 아이러니다. 인간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불규칙한 행과 불행의 반복 또한 마찬가지로 아이러니다. 삶이 어떤 규칙적인 흐름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원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삶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일본에서 온 사업 파트너와 진실 된 소통을 했음에도 어떤 이유로 일은 그르쳐질 수밖에 없고, 첫사랑과 뒤늦은 재회를 통해 서로간의 오해를 다 풀었음에도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NJ는 일본에서의 일들을 겪은 뒤 아내와 재회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자의 시간을 겪은 뒤 만난 부부는 삶의 행복이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결국 영화는 인간의 영원한 난제일 삶의 아이러니는 모두 이해할 필요도 없으며 그것을 알지 못함에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다만 우리의 작은 예술가 양양의 마지막 추도사에서 알 수 있듯, ‘남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남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예술의 역할임을 공고히 한 채로 말이다.

 

팅팅과의 데이트 중, 패티는 ‘영화가 탄생한 후로 인간의 수명이 세 배가 늘었다’고 한다. 상영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세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실제로 몇 겹의 삶과 나의 삶이 마주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리창 밖에 비친 세상의 풍경과 그 위로 불투명하게 비친 인물들의 얼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영화 이상의 감사한 체험을 한 것 같다. 삶과 영화, 모두에게 바치는 지독한 헌사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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