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쉬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보고 왔다. 여러모로 참 싱거운 영화다,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싱겁고 어색한 기류 안에서 느껴지는, 가족이란 이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책임과 사랑을 포착하고자 했던 누군가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몸담았던 공동체이자, 지금은 그로부터 꽤 멀어져 어색함까지 느껴짐에도 여전히 그곳에 가면 내가 닮아있는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 어색한 분위기와 의중을 알 수 없는 대화, 그럼에도 의도치 않게 맞춰진 드레스 코드. 그런 것들.
영화는 3부작으로 구성되어, 1장에선 어머니가 없는 아버지의 집에 남매가 찾아가는 이야기, 2장은 아버지가 없는 어머니의 집에 자매가 찾아가는 이야기, 마지막 3장엔 부모가 없는 남매가 부모의 집에 찾아가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라는 제목을 보고 한 가정 안의 네 구성원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각 장의 가정은 모두 다르다. 어머니를 여읜 아버지와 남매, 아버지가 없는 어머니와 자매, 그리고 부모를 여읜 남매의 이야기는 인물도, 지역도,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다. 다만 이 세 가정이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라는 이름 아래에 묶일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정이 언젠가 겪게 될, ‘멀어짐’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장의 남매는 자동차 안에서 아버지의 ‘파악하기 힘든’ 성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아버지는 가난하고, 수입원을 알 수 없고, 성격이 특이한 인간이다. 도착한 아버지의 집은 빈곤하고 남루하였으나 어쩐지 신식으로 보이는 가구와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되는 값비싼 시계가 배치된,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혼란의 공간이다. 어색하게 앉아 부재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유머가 오가고, 의례의 안부를 물은 뒤 마치 시간이 됐다는 듯 자리를 뜨는 자식들과 갑작스레 음식을 해주겠다며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 더 유예하고자 하는 아버지. 미국 동부에 사는 누군가가 아니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하고도 뻔한 일련의 순서들. 다만 놀랍게도 이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남매가 떠나고 남루했던 아까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소위 ‘때 빼고 광낸’ 아버지가 멋진 차를 타고 홀로 집을 유유히 떠나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마치 연극에서 맡은 자신의 역할을 끝낸 후 실제의 삶으로 돌아가는 무비스타 같기도 했달까.
2장의 자매는 1장의 남매들과는 달리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어머니의 공간으로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첫째인 티모시는 고장 난 차를 혼자 해결하느라 애쓰고 둘째 릴리스는 친구의 차를 얻어 타며 가족들에게 그를 우버 기사라고 속인다. 특히 2장의 오프닝에서는 자매의 어머니가 자신의 상담사와 통화하며 티모시와 릴리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시퀀스를 통해 관객들은 자식들의 성격적 특성에 대한 조금의 정보를 쥘 수 있게 되고, 그들의 어머니가 그의 자식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1장과 2장의 가장 다른 지점이다.
이러한 정보 덕분에, 관객은 어머니-티모시-릴리스가 삼각의 구도로 앉은 원형의 테이블 위에서 그들이 느끼는 일종의 긴장감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 각자가 가진 콤플렉스와 이를 숨기기 위해 포장된 말들, 세대와 성정의 차이 때문에 어긋나는 대화들, 어색한 눈 맞춤과 리액션까지.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던 1장과는 달리, 2장의 가족은 서로의 본 모습을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음에도 그들이 가장하는(혹은 연기하는) 어떤 역할을 존중해주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인 감상으론, 무비스타처럼 홀연히 떠나버린 아버지가 등장했던 1장이 충격의 반전극이었다면 2장은 내내 긴장되는 교묘한 심리극 같았다.
3장은 부모를 잃은 남매가 부모가 생전 거주하던 공간에서 그들의 유류품을 정리하는 이야기이다. 남매는 부모의 집에 들어가기 전 이곳저곳을 들리며 부모에 대해, 서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이 너무 유약하게 느껴진다’는 남매의 대화를 통해 영화는 그들에게 있어, 또 모든 자식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모든 자식에게 있어 부모란 영원히 거대한, 그리고 영원히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들이라는 것. 유류품을 정리하며 알게 되는 것들, 부모가 남기고 간 생의 흔적들이 너무나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부모라는 이름 이전에 존재하는 그들의 존재가 쉽게 잊힐 수 있는 환경에 자주 놓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모두가 자신이 태초에 함께였던 그 공간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세대가 끝나고 결국 자식의 세대로 이어지듯이, 우리는 우리 이전의, 혹은 이후의 세대가 남기거나 이어받을 어떤 흔적들을 보며 어렴풋이 그들의 생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멀어짐의 공백을 더듬으며 어렴풋이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싱거운’ 영화로 표현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싱겁다는 단어가 불러낼 어떤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이미지를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이 영화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임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의미심장한 반전극 같기도, 교묘한 심리극 같기도, 추리극 같기도 한 이 이야기들은 유려하게 이어지는 옴니버스도 아니고, 아주 감정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자연히 기대하게 되는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흐름도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곳과 그들처럼, 싱겁고 익숙한 관계들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싱거운 감상 이후에 곱씹게 되는 풍족함을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