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떠오르는 신예 배우 마리아
어느 날, 유망한 이탈리아 감독의 눈에 띄어
할리우드 스타와 함께 새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된다.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듯했던 순간,
그 선택은 곧 악몽의 시작이 된다.
그 영화는 바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슈나이더다.
영화는 마리아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마리아는 꽤 잘나가는 배우의 혼외자로, 엄마의 성을 쓰며 태어났을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단둘이 보냈다. 그러다 아버지를 만나 교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불안정한 성장 배경이 뒤섞이면서, 마리아는 자신만의 자리를 찾기 위해 더 열심히 연기에 매달리게 된다.
몇몇 단역을 전전하던 마리아는 마침내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눈에 띄고, 유명 배우 말론 브란도와 함께하는 큰 작품에 캐스팅된다. 19살의 마리아에게는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촬영 현장에서 마리아가 마주한 건 기회가 아니라 착취였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인물의 리얼함'을 위해서라면 배우가 느끼는 불안이나 수치심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매 시퀀스마다 캐릭터의 진정성을 이유로 대며 마리아를 설득했지만 마리아가 받을 상처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 결과 대본에도 없던 문제의 장면이 촬영됐다.
문제의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을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은 정말 불편했다. 당황스러워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마리아, 그런 마리아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감독과 남성 스태프들, 조용히 움직이는 카메라 렌즈, 멈추지 않는 촬영... 관객으로서도 숨이 턱 막히는 장면인데, 실제 마리아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가라앉는다. 영화는 그것을 일부러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가 겪었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개봉하자마자 화제작이 되었지만 작품성보다 외설적인 장면들이 먼저 소비됐다. 마리아는 한순간에 ‘여성의 수치’, ‘돈을 위해 몸을 내놓는 사람’이라는 모욕적인 말에 시달리게 된다. 의미 있는 작품을 한다고 믿었던 마리아에게 돌아온 건 명성도 인정도 아닌, 끝없는 판단과 낙인이었다. 결국 그녀는 점점 고립을 느끼며 마약에 기대기 시작하고, 삶 전체가 무너지는 듯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영화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절망적으로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그녀가 ‘누르’를 만나면서 아주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처음 마주한 두 사람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누르는 마리아의 상처를 억지로 덮거나 치유하려 들지 않고, 그녀가 스스로 말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인물이다.
누르 앞에서 마리아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같은 여성으로서 서로의 아픔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마리아가 겪어온 고립과 상처를 ‘동정’이 아닌 ‘공감’으로 바라봐 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누르였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나 평온했던 것은 아니다. 마리아는 금단현상과 불안정한 감정 때문에 누르에게 날카롭게 반응하기도 했고, 두 사람은 때때로 부딪히며 흔들리기도 한다. 영화는 이 관계를 일시적인 구원이나 환상으로 그리지 않고,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가 아닌 인간 마리아 슈나이더의 삶 속 불안, 후회, 회복의 복잡한 과정도 솔직하게 담아낸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예술계의 미투 운동과, 친밀한 장면을 전문적으로 조율하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제도가 2018년에 들어서야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긴 시간 동안, 마리아 슈나이더처럼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 배우들이 '영화', '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착취를 견뎌야 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단지 시대가 달랐다는 이유로, 혹은 위대한 감독과 배우라는 명성 아래에서, 너무 많은 고통이 정당화되고 묵인되어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이제는 어떤 작품도, 어떤 명분도 이런 폭력을 ‘연출’의 일부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마치 영화로 훼손된 마리아의 명예를 다시 회복시켜주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마리아 슈나이더'의 삶을 오롯이 알 수 있는 영화는 11월 26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