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천계영의 SNS 글로 알게 된 책이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라는 제목, 그리고 깔끔하면서 직관적인 표지를 보고 바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늦은 저녁에 버스를 타고 서점에 가서 사 왔었다. ‘책 수선’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꽤 낯설기에 책 수선가가 어떤 직업인지 빠르게 이해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의 표지를 본다면 바로 책 수선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책의 저자는 ‘재영 책수선’이라는 이름으로 책 수선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작업실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는, 낡거나 찢어졌거나 페이지가 뜯어졌거나 무언가가 묻어 오염된 책들이 모인다. 그 책들은 재영 책수선의 손을 거쳐 찢어진 페이지가 다시 붙고, 촌스러웠던 표지가 세련되게 바뀌고, 색이 바랜 배면이 깨끗하게 정돈된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내 생각은 ‘세상에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구나’, 그리고 ‘찢어진 종이가 다시 붙는다는 게 가능해도 되는 거야?’였다. 마치 연금술사의 기록을 읽는 것 같았다. 물론 마법을 부리거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아무런 흔적 없이 훼손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약간의 티가 날지언정, 찢어진 종이가 테이프 없이 다시 붙는다는 건 너무 놀라운 일 아닌가?


재영 책수선의 『'89 시행 개정 한글 맞춤법 수록 국어대사전 상/하』 수선 작업 전과 후 사진 (c) 재영 책수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책 수선가가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의뢰받은 책들의 사연과 사진, 수선 과정, 수선 후 사진들이 에피소드의 형식으로 펼쳐지는 책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텐션을 유지하는데, 읽다 보면 이 책 수선가가 얼마나 섬세한지, 의뢰인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 감수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깜짝 놀라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궁금증은 ‘이런 책 수선/복원 기술을 어디서 배우는 거지?’였다. 일단 나는 책과 지류를 수선하는 법에 대해서 배운다는 학과는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을 품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저자는 지금까지 몇 번 있었던 오프라인 강연 자리에서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꼭 ‘책 수선을 언제 어디서 처음 배우게 되었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의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에 미국의 대학원에서 ‘북 아트’와 ‘제지(製紙, paper making)’를 전공했다. 그러면서 종이를 다루고 만드는 법을 익히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 보존 연구실’에 취직했고 그 과정에서 지류 수선과 복원 기술을 습득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책을 복원하는 기술을 가진 대형 도서관이 있나? 잘 모르겠다. 한국에는 훼손된 책을 보다 튼튼하고 깨끗하게 손보는 기술을 책 복원, 책 보존, 책 수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서 검색해 보아도 원하는 검색 결과를 찾기가 힘들었다. 복원, 보존, 수선이라는 단어들 중 저자는 ‘수선’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수선이라는 말의 어감이 동네 세탁소를 연상시키며 친숙하기도 하고, 저자가 하는 일은 단순히 책을 망가지기 전의 상태로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재영 책수선은 의뢰자의 사연과 요구사항을 담은 표지를 새로 만들거나, 없던 가름끈을 만들어 주거나, 헤드밴드에 예쁘게 색깔을 넣어 주는 등 책의 외관을 조금 바꾸고 대신 작업자의 진심과 애정을 담아 책을 새롭고 멋진 모습으로 변신시킨다(물론 구하기 어려운 희귀서적들은 책의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 복원만 한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저자의 미감, 기술, 색감 조합 능력을 지켜보는 것도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재미 포인트이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이 주었던 인상 중에 아주 강렬했던 것은 전체적인 책의 만듦새이다. 책 수선가가 지은 책답게, 180도로 시원시원하게 펼쳐지는 하드커버 양장본의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종이의 질도 매우 뛰어나고, 표지와 속지의 디자인도 훌륭해서 정말 책장을 넘길 맛이 나는 책이다. 속지가 매끈매끈하면서 적당히 두껍고 뒷장의 글씨도 거의 비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밝은 개나리색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완성시키는 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관심이 투입되었을까.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좋은 점 중 하나는, 읽는 사람도 자신의 추억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독자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만약 책 수선을 의뢰한다면 어떤 책을 고를지 생각하기 위해서다. 초등학생 시절 내용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채로 읽었던 천계영 작가의 순정만화 '하이힐을 신은 소녀', 매일 손에 끼고 살았던 만화로 보는 고전 명작 시리즈, 꼬깃꼬깃해진 어린이 잡지들.


재영 책수선의 『해리 포터 시리즈』 수선 작업 전과 후 사진 (c) 재영 책수선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 내가 어릴 때 읽던 책들은 엄마가 대부분 남한테 나눠주었다. 이 때문에 우리 집에는 이제 내가 푹 빠졌었던 '코믹 메이플스토리'도 없고, 'why' 시리즈도 없고, 한국인들이 가진 그리스 로마 신화 지식의 일등공신인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도 없다. 가끔 그 생각을 하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작가 재영 책수선이 말하듯, 나의 손을 떠난 책들이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또 새로운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고 그 몸에 고스란히 세월과 애정의 흔적을 입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 처럼, 책 수선과 책 복원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는 미래가 빨리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장래 희망에 ‘책 수선가’를 적는 어린이들도 많아지고 책 수선 작업실도 거리에 심심찮게 보이는, 그런 미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책 수선 원데이 클래스도 많이 생길 테고, 나도 찢어진 종이를 다시 붙이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