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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부자가 되어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다거나 연예인이 되어 인기를 누리는 상상 말이다. 이런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때, “타인의 몸에 들어간 나는 ‘나’인가 ‘타인’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특정인의 정신을 지배한다고 해서 내가 진정으로 타인이 될 수 있을까?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육체와 정신, 그리고 그 사이의 자아와 욕망을 탐구한다.


크레이그 슈바르츠는 거리에서 꼭두각시 인형 공연을 하는 퍼펫티어이자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실업자이다. 무기력하게 생활하던 그는 아내인 로티의 권유로 7과 1/2층에 위치한 기묘한 회사 ‘레스터 기업’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크레이그는 같은 회사의 여직원 맥신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그가 퍼펫티어라는 사실을 알고 단호하게 거리를 둔다. 낙심한 크레이그는 서류철을 캐비닛 뒤로 떨어뜨리는 실수를 계기로 이상한 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 문 안으로 들어서자, 땅굴 같은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배우 존 말코비치의 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크레이그는 15분 동안 말코비치의 감각을 완전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을 로티와 맥신에게 알리고 맥신은 ‘존 말코비치 되기’를 사업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많은 사람이 돈을 지급하고 존 말코비치의 몸 속으로 들어가길 원했고 사업은 점점 큰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존 말코비치 되기'에 각기 다르게 반응하며 욕망과 자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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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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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는 말코비치가 되어 커리어적으로 성공한다. 본래 그는 예술을 하기 위해 퍼펫티어로 살아왔지만,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멸시받는다. 그는 처음에는 맥신과 만나기 위해 말코비치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관찰자 역할을 하지만,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던 재능을 이용하여 말코비치의 정신과 행동을 완전히 지배한다.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쫓기는 신세였던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에 들어갔을 때는 너무나 쉽게 배우에서 퍼펫티어로 커리어 전환을 하고 전 세계에 인형극의 시대를 이끌며 권위와 인기를 얻는다. 말코비치의 몸과 정체성으로 경험한 자유와 힘은 현실에서 외면받는 크레이그의 삶과 극명히 대비된다.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라는 말처럼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재능과 능력이 말코비치의 몸에 들어가 있을 때 드디어 세상의 빛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인형극에는 끝이 존재한다. 결국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에서 나오면서 타인의 육체와 정체성으로 얻은 명예, 사랑, 그리고 유명세를 모두 잃게 된다. 타인의 삶을 빌려 얻은 성공은 껍데기만 남긴 공허함임을 보여준다.

 

 

 

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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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는 말코비치가 되어 사랑을 얻는다. 말코비치가 된 로티는 맥신에게 완전히 빠져들지만, 맥신은 로티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한 몸 안에서 두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과 말코비치 안의 로티를 좋아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로티는 계속해서 맥신을 원하며 남편이었던 크레이그와의 사이도 파국으로 치닫는다. 반면, 맥신은 크레이그가 들어간 말코비치와 사랑에 빠져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로티는 포기하지 않고 완전히 존 말코비치가 될 기회를 얻지만, 그 기회 대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맥신을 만나며 추격전 끝에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로티의 이야기는 타인의 힘에 기대기보다 자기 자신의 의지로 통해 욕망과 사랑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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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신은 말코비치가 될 기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자의로 그의 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회를 가지고 타인을 조종하고 돈을 버는 데 이용한다. 이러한 행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맥신의 매력이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당당한 태도와 자기 확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지킨다. 그래서 크레이그, 로티, 그리고 말코비치까지도 그녀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상황을 주도하고 기회를 자신의 삶과 사업으로 확장한다.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고히 지키는 능력임을 보여준다.

 

 

 

존 말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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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존 말코비치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조종당하며 결국 말코비치가 되지 못한다. 그는 영화 내내 등장하지만 우리는 타인이 들어간 그의 껍데기만 볼 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야 말코비치의 잠재의식 속을 들여다보며 그가 수치스럽고 불안한 순간을 많이 경험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성공한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공한 배우처럼 보였지만, 그의 힘들었던 과거와 타인이 그의 몸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연민과 불쌍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끊임없이 말코비치를 비추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늘 자아가 도난당하는 그는 영화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인공도 될 수 없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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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 되기》는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은 끝이 있는 인형극과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뇌 속에 15분간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과 많은 이들이 한순이라도 말코비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을 보며 왜 우리는 근본적으로 타인이 되고 싶어하는지 생각해보았다. 15분이라는 시간은 짧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오면 더 큰 공허함 밖에 남지 않지만 그 짧은 순간의 쾌락을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은 추악하게까지 보인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그의 몸에 들어가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그의 삶을 탐닉하고 집착하게 된다. 특히, 그의 몸을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코비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은 기괴하게 느껴진다. 말코비치가 성공한 배우가 아니었더라도 사람들은 그가 되고 싶어했을까? 그의 돈과 유명세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도 타인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결핍을 타인의 삶에 대한 관음으로 충족하려는 인간의 모습에서 무력감과 나약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자기 확신을 가지고 타인의 삶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던 맥신과 말코비치가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선택을 바라보며 나 또한 만약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나의 욕망과 가치관은 어떻게 움직일지를 생각하게 된다. 타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한 코미디적 설정과 특이한 상상력 속에 담긴 인간의 자아, 욕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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