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너는 쉴 때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럼, 아주 자연스레 영화, 책, 전시를 보고, 음악 감상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문득 앞서 얘기한 것들을 ‘좋아한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좋아한다’라고 말을 하기 위해선 그것들이 내게 충분한 의미가 부여될 때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내가 오래 붙잡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스트리밍 사이트로만 들을 때는 어딘가 허전하다. 공연을 직접 찾아가거나, 음악이 담긴 레코드를 손에 쥐었을 때 비로소 마음이 충만해진다.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음악을 오래 듣고 싶다면 컴퓨터나 휴대전화 속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멀쩡하다는 전제조건 하에 레코드를 사는 것보다 MP3 파일이 훨씬 오래 남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레코드를 샀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손에 쥐었을 때 느낀 건 단순한 ‘물건을 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쌓아온 시간을 산 것’ 같은 감각이었다. 내 과거와 현재가 작은 원반 위에 새겨진 듯했고, 이제 평생 이 음악과 함께하리라는 확신이 본능처럼 밀려왔다.


그 순간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은 물론, 단 한 곡이라도 마음에 들어오면 앨범 전체를 들어본 뒤 그 곡이 담긴 레코드를 찾아 모으기 시작했다. 잡을 수 없는 음악이 손으로 만져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나만의 세계 속으로 흡수되는 경험이었다. 그 세계를 하나둘 확장해 나가는 과정은 지금도 삶의 중요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아무튼, 레코드⟫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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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만든 사람


 

저자는 어린 시절 두 가지 꿈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가수가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두 꿈은 결국 음악을 향한 한 가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20대에 스윗소로우라는 그룹 활동을 통해 무대에 오르며 첫 번째 꿈을 이루었고, 시간이 흘러 40대가 되었을 때는 두 번째 꿈까지 실현했다. 남들에겐 단순한 직업의 선택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음악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또 그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왔는지가 차분히 드러난다. 노래를 불렀던 순간에도, 레코드를 사 모으는 시간에도, 가게에서 손님과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음악은 늘 중심에 있다. 그 모든 행위는 취향을 넘어 삶의 결을 만들어내며, ‘내가 살아 있다’라는 감각을 확인시켜 준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음악을 듣고 나누는 일상이, 어느새 저자의 삶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 된 것이다.


⟪아무튼, 레코드⟫는 결국 좋아하는 것을 기록한 책이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왜 레코드를 손에 쥐게 되었는지, 왜 지금도 그 일을 멈추지 않고 있는지를 고백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자신의 시간을 하나의 앨범에 담긴 트랙리스트 처럼 펼쳐 보인다. 그 안에는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오랜 시간 지켜온 마음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여러 방식이 겹겹이 쌓여 있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쌓아왔는지, 무엇을 지켜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음악의 순간들은 결국 그가 살아온 삶의 결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은 음악에 관한 기록이자,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붙잡아온 한 사람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아무튼, 좋아하는 걸 붙잡는 일


 

책을 읽는 내내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좋아하는 음악과 앨범을 모으면서 “이 순간이 나를 살게 한다”라는 감각을 수없이 느꼈기 때문이다. 특정한 레코드를 고르고, 그것을 턴테이블에 올린 뒤, 바늘을 살며시 내리는 순간 들려오는 첫소리에는 단순한 음악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손끝과 귀, 그리고 추억이 얽혀 만들어내는 이야기 그 자체다.


‘아무튼’이라는 단어는 말로 길게 풀어내기 어려운 생각과 마음들이 압축된 단어 같다. 결국 ‘아무튼’이라는 한 마디로 귀결되는 무언가가 저자 성진환에게는 음악이었고, 그 음악을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레코드였다.


좋아하는 것은 불현듯 다가오는 운명 같은 만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꾸준히 신경 쓰고 시간을 들이는 사이에 깊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첫 음반을 손에 쥐었을 때의 본능적인 확신처럼, ‘좋아한다’라는 감정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잘 잡고 곁에 두다 보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삶의 무게를 달리 느끼게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게 많으면 삶이 윤택해진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아무튼’시리즈를 권하고 싶다. 각 책은 하나의 취향을 깊이 탐구하며, 그 안에 담긴 삶의 결을 보여준다.


아무튼, 좋아하는 것은 우리를 ‘잘’ 살아 있게 도와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게 음악이든, 책이든, 영화든, 혹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무언가든. 중요한 건 그것을 붙잡고, 시간을 쌓아가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다 보면 삶은 훨씬 단단해지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 좋아하는 것들을 붙잡아두고, 그 마음을 기록하며, 다른 이들과 나누는 일이야말로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누군가의 ‘아무튼’을 읽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아무튼’이 피어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피지컬 음반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을 더 소중히 여기며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음악의 모든 순간이 물리적으로 새겨져 있고 기계가 그걸 읽는 모습을 내가 보면서 듣는다면, 나는 그 물건을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다. 만약 언젠가 이것과 멀어지는 날이 온다면, 아마 더 이상은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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