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먹고사니즘’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다.
먹고사니즘이란 ‘먹고 사는 것’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생존주의적 현실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원래 먹고사니즘은 2000년대부터 쓰이던 신조어였다.
2000년대의 먹고사니즘은 정치적 무관심을 표방하는 대중을 일컬었다. 하지만 2020년대의 먹고사니즘 속에는 ‘각자도생’이라는 의미가 덧대어졌다. 나아가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는 각자도생의 먹고사니즘을 새로운 질서로 굳혀가고 있다.
어쩌면 ‘먹고사니즘’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실용적 가치를 의미할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 이후로 경제는 어려워졌으며,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경쟁 상태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가치 증명을 통한 생존 경쟁은 ‘무의미한 행위’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었다. 먹고사니즘 안에서 철학과 공감의 부재는 자연스러워진다. 즉각적인 경제적 보상이 없다면, 신념이나 사상은 무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자도생의 먹고사니즘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을까?
먹고사니즘은 단순한 오늘날의 생존 논리가 아니다. 그 기원은 역사적 위기와 국가 성장 담론에서 찾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독립한 신생 국가인 한국은 지정학적 위기와 경제 기반의 부재에 시달렸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 대립 사이에서, 국가는 국민에게 파독 광부나 베트남 전쟁 참전 등 희생을 요구했다. 군사 정권과 민주화의 물결 이후, 마침내 한국은 선진국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급격한 발전 속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먹고사니즘과 결합하여, 여러 폐해를 남기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교육 구조는 사회 전반에 ‘성과가 없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라는 인식을 고착화시켰다.
입시 경쟁은 개인의 개성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학생은 성과 위주의 존재로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은 공동체의 성장이 아닌, 치열한 경쟁과 이해타산의 집합지로 변질된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4세 고시’는 이러한 먹고사니즘적 세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4세 고시란 유아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의미한다. 의과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동 학대에 가까운 교육열은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 그러나 4세 고시에 뛰어든 학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사다리 위에 있는 의과 대학이라는 목표 아래, 아이들은 먹고사니즘을 강제로 학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먹고사니즘이 팽배해질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는 무용해진다. 구조화된 먹고사니즘은 타인의 생명조차 효율성에 의하여 계산되기 시작하고, 이에 대한 은폐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2018년 외주 노동자인 김용균 씨가 사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기업은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하고, 외주 업체는 파견이나 일용직 노동자를 투입한다. 이러한 다단계 고용 구조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분산하고 은폐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타인의 죽음을 밝히려는 시도에도 원청은 침묵한다. 생존을 위해서 타인의 생명을 거래하는 구조 내에는 먹고사니즘이 뿌리 박혀 있다. 감정 없는 계산, 책임 없는 구조, 나아가 경제 논리로 계산되는 생존 원리가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질문해야만 한다. 먹고사니즘이 삶의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경쟁과 효율을 넘어서, 공감과 협력이 우선시되는 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창조적 시간을 주고, 사회에는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단지 사는 것 자체가 진리가 되는 시대, 이제 그 상식을 돌아볼 때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