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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를 거두는 시.jpg

 

 

첫 행을 필사하고, 마침표를 찍었다.

 

평소 시를 쓰지 않는다는 부끄러운 증거이다. 종결어미로 끝나는 문장에는 반사적으로 구두점을 찍는다. 이런저런 글쓰기 습관에 대해 생각해 보다, 시에 문장부호를 잘 쓰지 않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시인이 꺼린다기보다는 시가 그것을 거부한다는 느낌이 컸다.


운문과 산문의 가장 큰 차이는 사칙연산에서 비롯된다. 운문의 장점은 뺄셈에 있고, 산문의 장점은 덧셈에 있다. 시는 곧 함축이다. 함축된 시어로 행을 이루고, 그 행과 함축이 연을 이룬다. 그 사이 공백 또한 시로서 작용한다. 혹자에게는 휴지의 시간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삽입할 여백이 된다.


한편, 산문은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소설을 예로 들자면,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문장을 더해야 한다. 물론 개중에서도 시와 비슷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 있다. 다만, 그러한 것들을 보통 ‘시적이다’라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문장부호로는 마침표와 쉼표, 느낌표 그리고 물음표 등이 있다. 시인에 따라 그 빈도나 인상이 상이하지만, 공통적인 면모도 있다. 느낌표와 물음표는 표현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시와는 서먹하다. 마침표는 보다 절제되었지만, 종결의 의미가 강하다.


실제로 <서시>의 첫 행인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다음 마침표를 찍었을 때,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들었다. 한편, 쉼표는 문자 그대로 휴지의 기능이 있을뿐더러, 전후 문장을 주목하여 환기한다. 이성복의 <서시>에는 총 두 번의 문장 부호가 나오는데, 모두 쉼표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첫 번째 쉼표는 가혹하다.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호명한다. 쉼표는 휴지로 기능하여 상대방의 화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어떠한 응답도 받지 못한 채, 그는 정처 없이 기다리고야 만다. 자신을 보지 못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인지, 당신에게 외면당했음에도 애써 부정하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두 번째 쉼표 앞 ‘어두워가며’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첫 연에서 이미 시의 배경은 저녁으로 설정된다. 충분히 어두웠을 시간을 고려하면, 크게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저녁에서 밤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진행이다. 둘째, 두 연을 다른 날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는 다시금 상대를 기다리게 된다.


셋째, 행의 시작에 시인이 숨겨둔 ‘마음이’라는 시어를 발견하는 것이다. 화자의 마음은 어두워간다. 이어지는 ‘몸 뒤트는 풀밭’은 ‘풀밭처럼 뒤트는 몸’으로 도치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종합하면, ‘마음이 어두워가며 풀밭처럼 뒤트는 몸’으로 ‘당신을 부르는’ 화자가 된다. 이때 쉼표는 그사이 공백에서 독자의 감상이 작동하도록 기능한다.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시가 소설이었다면, ‘춤춥니다’를 끝으로 응당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종결하기를 꺼린다. 시를 종결하는 순간, 그의 마음도 끝날 것만 같기 때문 아닐까. 그는 마지막 연을 쓰고서 자신이 시인임에 감사했을 것이다. 독자는 알 수 없고, 온전히 시인만이 알 수 있는, 혹은 그조차 모를지 모르는 어떤 감정을 시의 속성으로 은밀히 덮어두었다. 더욱이 ‘서시’이기에 마침표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제목 아래서 시는,


영원히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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