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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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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이례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졌고 기온은 연일 기록을 경신 중이다.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조차 쉽게 떨어지지 않는 요즈음이다. 뉴스를 틀면 온열질환 예방법이 소개되고 있고 소셜 미디어로 눈을 돌려보면 더운 날씨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나 역시 여름을 썩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여름을 싫어하는 유형에 가깝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눅눅한 습기, 쉽게 잠들지 못하는 열대야. 분명히 불쾌한 점이 많은 계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름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는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노을이고, 다른 하나는 여름에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들 때문이다.

 

어떤 영화는 여름을 견딜 힘을 주고, 어떤 영화는 지나간 여름의 추억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보정한다. 여름은 사계절 중 가장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는 계절이다. 해가 가장 길게 뜨는 계절이자 장마로 골머리를 앓는 계절이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여름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오늘은 그런 여름의 다채로움을 머금은 영화 4편을 소개해 보려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여름의 풍경부터 건조한 햇볕이 내리쬐는 유럽의 여름, 그리고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밤까지 골고루 준비해 보았다.

 

 

 

<걸어도 걸어도>

한적하고 평화로운 오전, 평범한 일본 가정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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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기 속 아침을 맞이하는 저마다의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주방에서는 도마 위 재료를 손질하는 소리가, 담 너머에는 옆집 이웃이 빗자루로 나뭇잎을 쓸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초록빛으로 싱그럽게 물든 골목 따라 바람이 가볍게 흔들리고, 푸른 바다의 윤슬은 수평선 너머로 반짝인다.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오랜만에 모인 한 가족이 주고받는 어색한 농담이 소리를 가득 채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는 가족이라는 가깝고도 먼 관계에 생긴 균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영화다. 여름의 고요한 아침 풍경처럼 이 가족의 겉모습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이 분주하게 얽혀 있다. 끝내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은 가족이라는 이름을 뒤흔들어 놓는다. 평화로운 어느 여름날의 아침 공기처럼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잔향을 남기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 이탈리아 한 가족의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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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이탈리아 여름에 찾아온 한 손님. 살결에 닿는 햇볕은 뜨겁고, 보기 좋게 열린 복숭아는 당도 높게 익어간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도로 위로 두 자전거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가로지른다. 잔디밭에 잠깐 누워 햇살을 즐기기도 하고, 호수에 몸을 던져 보기도 한다. 모든 장면이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이 여름의 한낮은 그 누구라도 사랑에 빠져버릴 것만 같은 시간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은 그해 여름 손님과 함께 찾아온 열일곱 소년의 강렬한 첫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숨기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감정의 열기로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오고 간다. 식사 중에도 느껴지는 시선과 은근슬쩍 이루어지는 가벼운 접촉을 지나 이 여름의 사랑은 뜨거운 태양 아래 선명하게 피어난다. 짧지만 강렬하게 스쳐 지나가는 한여름의 첫사랑 같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하루의 열기가 식는 초저녁, 노을로 물든 유년기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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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 자전거를 타는 나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 녀석의 발걸음 소리. 어둠이 서서히 밀려들면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울려 퍼진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평상에 걸터앉아 가스레인지에 오징어 한 마리 구워 먹는 저녁. 하루의 끝자락에서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2020)은 잊고 지냈던 당신의 아주 사적인 여름밤 한 장면을 조용히 불러낸다.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았던 낮의 소란이 저물고 나면, 나도 모르게 놓쳤을지도 모를 솔직한 감정을 들여다본다. 이 영화는 그 작은 틈 사이로 스며들어 깊은 감정의 골을 따라 마음을 세심하게 어루만져온다. 더위를 견딘 하루의 끝에서 여리고 지친 당신의 저녁을 부드럽게 보듬어줄 영화.

 

 

 

<중경삼림>

도시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밤,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홍콩의 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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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 간판의 불빛으로 번쩍이는 골목들 사이 매캐한 담배 연기와 오토바이의 매연이 뒤섞인다.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오래된 선풍기 소리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음악이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감정과 여러 이야기가 순식간에 교차한다. 붐비던 인파는 잠시 흐려지고 오로지 너와 나만 선명해지는 시간.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은 고독과 외로움의 감정을 밀도 깊게 담아낸 사랑스러운 영화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80~90년대 시절 홍콩을 배경으로 네 남녀 사랑의 시작과 끝을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잃어버린 사랑을 붙잡거나 새로운 사랑에 닿지 못한 마음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돈다. 영원할 것처럼 빛나지만 결국 스쳐 지나가기에 더 눈부신 도시의 여름밤을 닮은 영화.

 

*

 

시간, 날씨, 상황에 맞춰 골라본 리스트인 만큼 이 중 당신의 하루에 딱 맞는 영화들이 운명처럼 찾아가기를. 비록 이 순간은 덥고 불쾌할지라도, 이 영화들이 올여름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계절로, 그리고 여름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쯤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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