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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와 선이


 

물 만난 물고기에게 흔히 기대되는 덕목이 있다. 그토록 바라던 물을 만나 넘실넘실 춤을 추는 것. 그동안 숨구멍을 조이던 손길을 벗어나 유영하듯 헤엄치는 것.


악동뮤지션 이찬혁이 그린 물고기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2019년 출간된 그의 소설책 '물 만난 물고기'에서는 예술가로서의 가치관을 좇는 선이와,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뮤즈 해야의 모습을 통해 물고기가 물을 만나는 아름다운 여정을 그렸다. 때론 자유로이 들판을 뛰노며(수록곡 Freedom), 가끔은 배를 삼켜오는 파도에 몸을 내맡기며(수록곡 뱃노래).


옷 없이 걷고 싶어, 아무 상관 없이 시선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어린 때로 돌아가서

집 없이 살고 싶어, 온 세계를 누비며

두 눈에 담은 것도 없이 방에 갇혀 있긴 싫어

- Freedom (앨범 '항해')


둘의 모습은 자못 사랑스럽다. 해야의 소원은 얼룩말을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파란불을 기다리기 위해 빨간불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파란불이 켜지면 어느새 그곳을 떠나고 없다는 상상력은 뜻하지 않은 생각의 전환을 선물해준다. 해야와 선이가 자유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그 여정에 동참하고픈 생각이 들다가도 두 사람을 마냥 지켜보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을 한 명으로 좁히자고 한다면 독자는 분명 한 치의 의심없이 뮤즈 해야를 꼽을 것이다. 세상의 굴레와는 사뭇 달랐던 해야의 모습이, 죽음까지 불사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해야의 자유로움은 선이의 열망까지도 감싸안기 때문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주인공의 조연을 자처하는 서술자 선이의 모습에서 사랑이 느껴진다. 삶의 영감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을 지닌다. 이 사람을 빛나게 해주고 싶고, 기쁘게 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나답기 위한 죽음'은 우리가 물 만난 물고기에게서 기대하던 인상과 사뭇 다르다. 어쩌면 선이는 노래를 통해 해야와의 이별에서 느낀 침잠할 만큼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해야가 해야다워지는 모습을 나홀로 지켜보며.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거지 (앨범 '항해')

 

 

 

선이의 창의성


 

해야에게서 시선을 돌려 선이를 본다. 선이는 줄곧 예술가로서 음악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고민해왔다. 여정을 시작하고 이야기를 끝맺은 지평선 앞의 카페에서부터, 해야와 만나 끝없는 영감을 받을 때까지.

 

 

"그건 바로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들은 예술가 사이에서도 진정한 예술가지. 자신이 표현한 것이 곧 자신이 되는 사람이거든. 예술가인 척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런 삶을 살지 못해"

 

- 물 만난 물고기 p.64

 

 

선이의 예술관은 소설이 물밖을 나온 2019년 이후로 꾸준한 업데이트를 거쳤다. 자신만의 철학과 자유를 외치는 이찬혁에게 모순된 접근일 수 있으나, 아티스트 이찬혁이 자신만의 가치관을 키워나가는 과정은 자기실현으로서의 창의성 담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창의성의 비밀 (1) 참조)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예언하듯이 살길

- 물 만난 물고기 (앨범 '항해')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음악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어요. 만약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직업이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저는 제 생각을 어떤 창작물로 만드는 사람인데, 음악도 그중 하나인 거죠."


2022년, 첫 솔로 정규앨범 [ERROR]를 발표했을 때의 인터뷰 일부다. 침묵 인터뷰, 거리 안의 소파와 같이 일명 눈에 띄는 행동들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했던 시기다. 이찬혁은 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휘둘리지 않는 법, 자기만의 방식대로 떳떳하게 사는 법"을 터득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생각과 행동을 창작물에 옮겼다. 2023년 발표한 '이찬혁비디오'에서 이찬혁은 배우로 분한다. 배우 신세휘의 보컬에 춤을 추고, 개그우먼 신봉선의 보컬에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이 비디오 안에는 마치 해야와 선이가 함께 들판 속에서 춤추는 듯한 모습, 선이가 파란불과 빨간불을 오가는 공항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찬혁은 올해 6월에 발매된 가수 빅나티의 신곡 MUSIC을 피처링하며 또 한번 자신이 만들어가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줬다. "거리에서 들리는 인기가요 듣기 싫어 귀를 막는" 그의 모습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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