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기만 할 줄 알았던 햇빛이 어느샌가부터 뜨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던 지난 늦봄, 더위를 피해 서울의 한 갤러리에 들어갔었다. 그날 본 전시는 기디언 아파 개인전 The Play of Thought로 그는 고향 가나의 수도에 소재들을 재해석하여 추상적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가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일로 하나의 작품세계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수집한 것들이 작가를 완벽히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작가가 그것들을 촘촘히 쌓아가고 재해석하는 관계를 거치고 나서야 온전한 작가의 본질과 빛깔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디언 아파는 그림에서 밑칠과 아웃라인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특징이 있다. 언뜻 새어 나오는 듯한 붓 터치에 집중하다가, 작가의 본질을 이루는 밑바탕이라서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온 흔적이라고 짐작해 보았다. 때때로 우리들은 어떠한 일들에 크게 동요될 때, 이성과 감정을 감각하지 못한 채 점철되어 흐르고 마는 것처럼,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엔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의 본질은 작품 안에서 신비롭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나를 떠올려 봤을 때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취향을 갖고 있는지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영화로 1999년의 노팅힐을 떠올렸다. 왜 그 영화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신데렐라의 사랑 얘기 같아서라고 대답한다. 노팅힐은 몰라도 신데렐라는 아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영화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신데렐라와 노팅힐 모두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닌 마법이 풀린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한 소녀라는 본성을 사랑한다는 공통적인 서사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리고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고 책방 남자가 톱스타 여자를 만나는 것처럼 사랑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꾼다는 냉소적인 농담을 곁들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인 'Indefinitely' 때문에 영화를 다섯 번도 넘게 봤다.
본격적으로 나를 감싸는 표면 아래 나의 틈 사이로는 무엇이 새어 나오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봉착하면 나는 좀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는데 불편한 나의 단점들을 꽁꽁 틀어막아 그것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애쓸 뿐이다. 나의 틈 사이로는 기디언 아파의 신비로운 빛깔이 흘러나오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나의 그림이 미술관에 걸린다면 흘러나오는 틈 사이로 나만 아는 나의 단점들을 보며 헛구역질이 올라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으로 침전되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겹겹이 쌓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곁에서 보다 보면, 그들의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깔은 봄의 색만큼이나 다양하고 아름답다. 악기를 다루는 멜로디 사이로, 사진을 찍는 렌즈 사이로, 펜을 꽉 움켜쥔 손 사이로, 반듯한 영혼을 전하는 목소리 사이로, 맑은 마음을 내보이는 표정 사이로, 보이는 것들을 (욕망 없이)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그 무엇으로도 침전되어 있지 않은 나를 사랑하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나의 단점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틀어막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널어둔 빨래를 따라 생각을 게 켜두었다. 또는 밖을 걸으며 투명하게 비치는 나뭇잎 사이로 나를 투영했다. 그리고 여름이 새어 나오는 늦봄 사이로 걸음을 옮긴다. 새파란 햇빛과 회색빛 장마 사이로, 햇빛이 시끄러운 어떤 날을, 빗소리로 고요한 어떤 날을 수집하는 여름을 보낼 테다. 그렇게 쌓인 것들은 결국 나를 구성하게 될 거고, 결국 나만의 틈으로 빛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