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바쁜 일상을 보낼 때면 그때 그때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눈앞의 일을 좇는 데 급급하게 된다. 예술은 이럴 때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감성을 천천히 두드려 깨우며 지친 맘을 달래준다. 연말 공연을 볼 때 꼭 위로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쉽게 아련해지는 것도 예술의 효능 덕일 것이다.

 

연말에는 해피엔딩으로 밀봉된 선물 상자 같은 작품보다도 뒷맛이 조금 쓴 작품을 보고 싶어지는데, 여운을 느끼면서 한 해를 느리게 보내고 싶어서다. 좋은 기회로 올해 크리스마스는 연극 <쇼팽 블루노트>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쇼팽 블루노트>는 제목의 '블루노트'가 암시하듯 쇼팽의 사랑과 특유의 섬세한 정서를 그려내는 연극으로, 히로타 슌지의 섬세한 피아노 연주와 두 배우의 연기를 넘나들며 쇼팽의 이야기와 음악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다른 언어와 다른 예술로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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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쇼팽을 연극의 축으로 두면서도 조르주 상드를 단순한 히로인이 아닌 살아 숨쉬는 예술가로 설정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기획자는 사랑을 불타는 정염과 헌신 같은 일방적이거나 표면적인 측면이 아니라 주고 받는 것이라는 명제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설정한 듯했다. 조르주 상드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쇼팽이라는 캐릭터는 비로소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조르주 상드와 쇼팽의 극중 비중을 조절하며 조르주 상드는 쇼팽의 연인이면서 쇼팽 또한 조르주 상드의 연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관객은 견지하게 된다. 특히 조르주 상드 역의 배우가 해설자를 겸하기 때문에 <쇼팽 블루노트>는 곧 작가 조르주 상드가 쓴 사랑 편지 내지는 책이라는 것을 연극을 보는 중에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의 입을 빌려 묘사되는 쇼팽은 섬세하고 낭만적이면서도 연민을 지닌 따뜻한 인간이다. 쇼팽이 숱한 클래식 음악가처럼 고고한 천재성으로 홀로 빛나기보다 조르주 상드의 손끝에서 인간성과 감수성으로 점철된 인물로 재조명되었다. 조르주 상드가 직접 이름 붙인 '블루노트'처럼 그의 세상은 어쩌면 조르주 상드의 언어만으로 설명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둘의 이별이 예견된 만큼, 극중에서는 쇼팽이 조르주 상드의 소설에서 그를 향한 경멸과 자기연민에 분노하며 사랑을 의심하는 대목도 나온다. 연극을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연출과 설정을 바탕으로 조르주 상드는 줄곧 쇼팽을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여겼다고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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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의 예술을 비유하고 녹여낸 해설 뿐만 아니라 쇼팽이 사랑을 말하는 언어인 음악을 피아노 연주 실연으로 표현하는 연출 또한 인상적이었다. 초반에는 몰입을 해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섬세한 피아노 연주가 동반되었기에 쇼팽이라는 캐릭터를 연기로 표현한 것 이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쇼팽은 소년같은 순수함과 몹시 예민한 감성을 지닌 음악가로 조르주 상드를 만나기 전 짝사랑했던 여인에게도 마음을 끝끝내 고백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연주를 할 때 작은 컨트롤에 온 신경을 기울였던 이유가 사랑이라면 그의 음악은 온통 세레나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르주 상드와 함께한 시간들이 곧 음악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에, 곡 작업에 집중했던 시간은 곧 조르주 상드에게 전할 말을 세공하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쇼팽 자신도 피아노와 연인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쇼팽의 음악이 섬세한 선율로 바로 앞에서 들려올 때, 포근하고 다정한 감성을 담은 히로타 슌지의 연주는 그 시간을 나긋이 읊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연주가 곧 조르주 상드와의 시간을 회고하고 복기하는 방법이자 영원한 사랑을 염원하는 방법이었음을 연주를 통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조르주 상드가 쇼팽의 유일한 연인이 피아노라고 말하며 눈물 지었을 때, 조르주 상드가 곧 그의 연인이며 피아노였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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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술에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개인적인 관계 사이에서는 무수히 많은 섬세한 감정이 탄생하며 이것이 예술을 보다 복잡한 경지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쇼팽 블루노트>에서는 이렇게 사랑이 예술에 부리는 마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랑이 예술의 도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전한다. 연극 속 쇼팽과 조르주 상드를 보면 사랑을 위한 예술과 예술을 위한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의 과정과 결과로 예술이 있기도 하지만 예술로 사랑을 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하려는 노력과 예술 이전에 신뢰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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