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림트는 빈의 회화를 시들어가는 고립에서 벗어나 다시 넓은 세계로 나가도록 이끌었다. 세기의 전환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빈의 예술적 개성을 보장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클림트의 친구이자 가장 처음으로 그에 관한 논문을 쓴 한스 티체의 말이다.
황금빛의 화가로만 알고 있던 클림트는 당시 미술사에선 꽤나 이단아였다. 초기 작품부터 성공했으나 1897년 빈 미술가 협회를 탈퇴하고 지인들과 빈 분리파라는 새로운 단체를 결성했기 때문이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을 모토로 하는 빈 분리파는 오스트리아의 예술을 대표하면서도 프랑스의 인상주의, 벨기에의 자연주의 작품들도 한데 모으는 새로운 시도를 성공하기도 했다.
클림트의 도발적인 면모는 그의 작품 <의학>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당시 빈 대학교가 내부를 장식할 천장화를 위해 주문한 3부작 중 하나인 <의학>은 대학 천장화로 예상한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그림 속 중앙에는 건강의 여신으로 알려진 히게이아가 있지만 화려한 장식을 뒤집어쓴 히게이아는 병자를 치료하는 여신보다는 제사를 관장하는 사제처럼 보인다. 주변의 해골, 노인 형상들은 그림의 주제를 치유보단 고통에 가깝게 느끼게 한다.
그림이 말하는 것은 모호하지만 어쩌면 클림트는 의학을 단순히 치료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이 순환하는 과정 중 하나로 해석한 건 아닐까 싶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필연적이고, 의학은 그 죽음을 연장시키는 수단 중 하나이기에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림트의 해석은 장소와 시대에 비해 너무나도 참신해 그는 선금을 돌려주고 그림들을 되찾아왔다고 한다.
화려한 황금빛으로 시선을 끌었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Ⅰ>도 기억에 남는다. 이른바 '황금 스타일'의 대표작이 된 이 그림은 클림트의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델레가 금빛의 화려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작품은 세밀한 문양들이 돋보이는데 클림트는 마치 나뭇잎을 연상시키는 자연주의적인 요소와 네모나 세모와 같은 기하학 무늬를 통합시켜 그림에 활용했다.
이 그림은 등장 당시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마치 모자이크나 콜라주같은 그림을 보며 어떤 비평가는 쓰레기라는 악평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 작품은 클림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 덕에 매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작품이기도 하다.
도서 <황금빛을 그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클림트의 생애와 함께 다양한 작품들까지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금기를 깨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자세히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