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좀 듣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LP 커버들.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무지갯빛 프리즘, 불 타는 사람과 악수하는 [Wish You Were Here],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Houses of The Holy] 등.... 현대에서까지 그 예술적 가치가 여전히 회고되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킨 사람들. 바로 힙노시스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진실>은 <킹스맨>의 콜린퍼스가 제작하고, <모스트 원티드 맨>의 안톤 코르빈 감독이 연출한 음악 산업 황금기의 순간들이다. 1970년대 록 음악에 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나는, 시사회에 가기 며칠 전부터 핑크 플로이드 앨범을 시도 때도 없이 재생하곤 했다. 2003년에 태어난 내가 그때 당시의 감성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101분간의 다큐멘터리는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당겼다.
어느날 스톰의 집 문 앞에 시드가 휘갈긴 낙서 Hipnosis. 힙(hip)하고 똑똑하다(gnosis)라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스톰 소거슨과 오브리 파월은 그들만의 디자인을 해나간다. 영국 케임브릿지에서 어릴적부터 친했던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시드 바렛이 핑크 플로이드 밴드를 결성하고 첫 앨범 커버 디자인을 맡긴 것이 그 시작이다. 힙노시스는 그 뒤로 레드 재플린, 폴 매카트리, 섹스 피스톨즈, 텐씨씨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LP 커버를 디자인하며 그들만의 독자적인 디자인 내세운다. CG도 포토샵도 없던 시절, 암실에서 직접 뽑아낸 사진들로 탄생한 빛나는 예술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다큐멘터리는 총 17개의 앨범 커버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은 4,000여 점이 넘는 시청각 자료는 실제로 그들의 작업 현장에 함께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덕분에 힙노시스 회사가 지닌 역사나 LP 커버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이고, 스톰과 폴(파월) 혹은 그 주변인의 관계성까지를 생생히 알 수 있었다. 불같고 까탈스러운 성격을 참을 수밖에 없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고 창의적인 스톰의 아이디어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구현해 내는 폴의 촬영 실력을 만나 완성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Led Zeppelin의 [Houses of The Holy]
그러나 폴은 돌의 모양이 모두 팔각형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결국 사진을 직접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해 훌륭한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실현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힙노시스다운 것이다. (물론 폴은 어느 정도 예산을 고려하고자 했지만 말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35kg 조각상을 옮겨 찍은 폴 매카트니의 [Greatest]
다큐멘터리 자체의 작품성과 연출력도 꽤나 주목할 만한 포인트이다.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fact를 나열하는 것이기에, 지루하지 않게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록 음악 자체에 대한 큰 관심이 없는 관객들도 흡입력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힙노시스 : LP 커버의 전설> 다큐는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17개나 되는 에피소드를 유연하게 연결해낼 수 있었던 것은 스타일리쉬한 편집기법과 그래픽이 잘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잘 잡아낸 유머스러운 포인트와 귀를 사로잡는 록 음악의 사운드가 지루할 틈 없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다큐가 그렇듯 유명인들의 개인 인터뷰를 편집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인터뷰 사이사이의 거리감을 짧게 연출한 점이 좋았다. 개개인의 인터뷰였지만, 같은 장소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있는 기분이랄까.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그때 그 시절의 청춘과 낭만을 떠올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었다.
개인적이고 사소한 에피소드는 힙노시스라는 위대한 디자인 회사의 창립자라는 이미지를 허물고, 어리고 패기 있던 청년에게 다가갈 디딤돌을 마련해주었다. 자신의 전성기, 열정이 가득했던 한때를 같이 추억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아시스 밴드 노엘의 딸이 LP 커버를 모르는 것처럼, 오늘날의 앨범 아트워크는 어쩌면 그저 아이튠즈에 표시되는 작은 정사각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해서 맴도는 엔딩 크레딧 삽입곡 10cc의 'Art for Art's sake' 처럼. 더 이상 LP를 듣지 않을지라도, 아트워크를 펼쳐보지 않을지라도, 앨범을 사지 않을지라도. 예술은 그저 예술로 남아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이 많이 들면 어떻고. 비효율적이면 어떤가. 무모하고, 용감하고,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힙노시스를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심장 뜨거운 열정과 낭만을 함께 느낄 수 있을 나, 그리고 모두를 위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