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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시간예술이라고 불린다. 말 그대로 시간성을 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 말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정 순간에만 존재하는 울림과 파동은 당연하게도 결코 되풀이될 수 없다. 특히나 클래식 음악은 정제된 음원의 형태로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그 실연의 현장에서 연주자와 함께 숨쉴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이번 문화초대로 접한 공연은 2001년생의 젊은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의 국내 첫 내한공연으로, 9월 3일 토요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나 오페라를 통해 클래식 공연을 몇 차례 접해봤지만 오로지 피아니스트 홀로 무대를 채우는 리사이틀은 처음인데다 피아노에 대한 지식조차 전무한 탓에 약간은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열의로 가득한 선율에 빠져들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단독공연에서는 실연자의 집중력과 관객 간의 일대다 상호작용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며 보완할 수 있는 합주와 달리, 오롯이 무대를 감당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내가 이번 공연에서 원했던 부분도 이것이었다. 음악가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집념과 예술을 향한 갈망을 직접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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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이력만으로 예술가의 역량을 대변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차이코프스키 영 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 우승으로 얻은 ‘피아노 신동’이라는 별칭이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와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더불어 발레리 게르기예프, 리카르도 샤이, 미하일 플레트뇨프 등의 저명한 지휘자와의 만남 등 그의 화려한 약력을 보자 공연을 향한 기대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는 어떤 연주를 보여줄 것이며,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떤 감상을 느끼게 될까.

 

드디어 9월 3일 오후 6시 무렵이 찾아왔다. 너무나 오랜만에 방문한 공연장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클래식 공연 직전의 분위기가 기분 좋은 설렘을 가져다 줬다. 차분하면서도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스탭들의 바쁜 움직임, 기대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대화, 그리고 모처럼 즐기는 토요일 저녁의 시원한 공기가 반가웠다.


2층 관중석에서 탁 트인 1층을 내려다보니, 클래식 공연 특유의 따뜻한 조명을 내리받아 반짝이는 피아노가 연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로지 피아니스트 한 명만을 위한 군더더기 없는 무대를 보니 그의 연주가 더더욱 궁금해졌다. 이내 정각이 되자 말로페예프는 무대 위로 입장해 관객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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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으로 시작됐다. 폭풍을 뜻하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져 동명의 별명이 붙은 이 곡은, 잔잔하게 밀려오다가 점차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폭풍우와도 같은 전개를 보여준다. ‘템페스트’는 내 귀에도 익숙할 만큼 대중적인 곡이었는데, 안정적인 선곡으로 공연을 시작해 관객들이 남은 연주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배려하기 위함이었으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그 뒤로는 내게는 다소 낯선 곡들이 이어졌다. 다음 곡은 니콜라이 메트너의  ‘피아노 소나타 사단조, 작품번호 22’로, 메트너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라흐마니노프와 동시대를 살았던 러시아의 작곡가다.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인물로 알려진 만큼 이 곡도 다음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마치 혼란한 인간의 내면을 표출하듯이 말로페예프는 때로는 산뜻한, 때로는 묵직한 타건으로 곡조의 변화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이끌었다.

 

2부는 스크리아빈의 ‘5개의 프렐류드, 작품번호 16’으로 시작됐다. 1부에서의 긴장감을 내려놓고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에 몸을 내맡길 수 있었다. 유려한 선율에 관객들의 자세도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연주 역시 스크리아빈의 곡이었는데, 공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중후반부를 스크리아빈으로 선곡한 것이 흥미로웠다. ‘두 개의 즉흥곡, 작품번호 12’ 역시도 풍부한 멜로디가 아름다웠지만 점차 격정적으로 변화해가는 화음을 좇다 보니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정신마저 요동치는 듯했다.

 

공연의 피날레는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작품번호 33’이었다. 자연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고 알려진 이 곡에서는 투명하고 맑게 울리는 가락이 귀를 사로잡았다. 연습곡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그가 음악으로 그려내는 풍경의 깊이감에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경쾌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손놀림에 밴 노련함이 2층 관객석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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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탓에 한 시간 사십 분 가량의 공연을 과연 전심으로 즐길 수 있을까 싶었던 걱정이 무색하게, 공연은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끊이지 않자 말로페예프는 몇 번이고 다시 무대에 올라 앵콜 연주를 선물했다. 현장에서는 앵콜이 몇 곡인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는데, 후일담으로는 무려 6곡에 달했다고 한다.


스스로가 창조해낸 선율에 완전히 빠져든 예술가의 모습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곡에 완전히 몰두해 모든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장면, 음악에 심취해 멜로디를 춤추듯 그려내는 몸동작,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수백 쌍의 눈과 귀를 묵묵하게 감당하는 모습, 관객의 찬사에 보답하기 위해 의자에 다시 앉아 약간은 민망하게 미소를 짓는 인간적인 표정까지도 뇌리에 깊숙히 새겨졌다.

 

그의 모습을 보니 니체가 주장했던 디오니소스적 예술이 떠올랐다. 이는 곧 작품과 예술가가 합치된 형식의 예술로, 이에 기초한 가장 높은 차원의 장르가 음악이라고 했다. 오래 전 완성된 곡의 내면을 파고들어가 그 기조를 예민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색깔대로 해석한 뒤 끝나지 않는 연습으로 그것을 체화했을 과정을 상상해 보면, 그것이 곧 작품과 예술가의 하나됨이 아니었을까. 처음 마주하는 한국 관객들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세계를 표출한 그의 앞날을 기대 어린 마음으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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