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곧 일행이 도착할 테지만,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짧지 않다 보니 조금 막막하다. 혼자 있어 편하면서도 누군가와 털어놓고 대화 나눌 수 없는 상황이 외롭긴 해서 그런 것 같다.
어쨌거나,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쉬이 여유롭게 있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오늘 하루 쉬기로 했다.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는 숙소 안에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마치는 이야기를 몇 자 적으며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언제나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에디터 활동의 첫 기사는 영화 <어댑테이션>을 두고 ‘내게 결핍이 있더라도 그조차 나의 일부임을 인정한다면, 사랑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것에 열정을 쏟는다면, 그럼 함께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다뤘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결핍’을 세세히 뜯어보고 누누이 열어보면서 ‘나의 결핍’에 관해서는 글이든 작은 메모든 남겨본 적 없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결핍’과 연결 지어 내가 맺은 관계와 사건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나의 결핍’은 받아들일 수 없던 거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나를 인정하고 납득하는 척, 세상 모든 것을 통달해서 빈정대고 차가운 척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영화 <어댑테이션>을 쓰면서 드디어 ‘나의 결핍’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세, 아니, 최소한 창피해도 담담하게 토해낼 준비를 한 것 같다.
단 한 번도 남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사랑했던 음악, 책 <점선뎐>을 읽고서 처음으로 밝혔던 심리 상담 과정, 아무도 관심주지 않을까 봐 애정없는 듯이 보도기사 형식으로 썼던 F1, 꽁꽁 감춰두고 좋아해 온 예술 모티프, 노벨문학상과 두 문제적 작가에 관한 생각까지.
매주 쓰고 싶은 걸 하나씩 떠올려서 쓰던 시기라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느려도 꾸준하게 내 결핍을 드러내 왔음을 느낀다.
위의 주제들이 어떻게 결핍이라 할 수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파이트 클럽> 3부작으로 답하고자 한다.
나는 ‘책벌레라는 별명이 전혀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너무도 익숙했고, 왁자지껄한 교실보다 조용한 도서관 또는 미술학원이 편하며, 외화와 팝송을 좋아하는 애’였다. 내 관심사를 대화 주제로 가져오면 돌아오는 반응은 늘 떨떠름한 표정과 어색한 웃음뿐이었다.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미워할 순 없으니까, 내 입맛을 탓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호불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모르는 척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취향이 드러난 기사를 사람들이 읽는 거다. 나중에 창피할까 봐 많이 거르고 걸러냈는데도 거기에 누군가 관심을 보이고 댓글을 달아줬다. ‘내 결핍이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내가 사랑하는 것에 열정을 쏟은 것’뿐인데 말이다.
그럼, 내가 나를 ‘이상한 애'라고 자각하던 순간을 담아도…, 그때부터 늘 목 끝까지 걸려있던 영화를 토해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파이트 클럽> 세 편을 연달아 게재했다.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때때로 힘껏 애쓰곤 한다. 또한 아직도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을 가끔 한다. 종종 남몰래 나쁜 짓하는 것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그런 찌질하고 못된 심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안다. 그런 일탈을 떠나서 항상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것도 잘 안다. 덧붙여 더는 내 취향의 맛과 멋을 무시하지 않고 냅다 사랑하는 나를 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많은 것이 저물어 간다. 대학생의 신분을 벗어나는 게 겨우 반년 남았다는 불편한 진실처럼, 좋아하는 드라마 <베터 콜 사울>의 마지막 시즌이 진행되는 요즘처럼,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끝마치는 이번 기사처럼.
사실 근래 들어 행복하다고 입 턴 적은 있어도 진심으로 그렇게 느낀 적은 없었다.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이번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며 내 감상을 적어낼 때마다 겪은 카타르시스는 행복이라 부를만한 경험이었다. 이에 더해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행복하다’고 마무리 지은 것 역시 우러나온 표현이었다. 이 또한 확언할 수 있다.
내가 살아가며 이런 감정을 낯 뜨거운 줄 모르고 뱉어내는 날이 오다니. 아트인사이트에게 고맙다.
어쨌거나,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자 한다. 들어가는 말로 외롭다며 징징대놓고, 제주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로 글을 이끈 것만 봐도 이미 그렇게 지내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외쳤듯, 나를 사랑하고 나의 모난 것도 안아주며 나를 이끌어주는 삶을 우선으로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