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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의 세상은 이해할 수 없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로 가득하다. 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현재의 세상이 가능한 최선의 상태일까? 모순을 설명할 수가 없어서, 철학은 그토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경고는 잔잔한 삶 표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내 세상에는 신이 늘 공기처럼 존재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나에게, 신이 없을 수도 있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만의 논리와 생각을 다듬어 나갔다.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신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바꿀 힘이 있다면, 왜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지 않는가? 신의 존재를 둘러싼 기초적인 철학적 고찰에 불과했지만, 내가 무신론자가 되기에는 충분한 이유였다.

 

내가 이 책의 5장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신’의 개념과 존재에 대해 펼쳐지는 다양한 논의는 잠시 잊고 살았던 사유의 즐거움에 불을 붙여주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보지 않은 것을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신대륙의 존재를 믿었던 콜럼버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처럼 비록 우리는 관찰할 수 없더라도 그것이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 이것은 다양한 과학적 발견의 기초가 되었고,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 되었다.

 

‘믿음’이란 인간이 모든 것을 완전히 볼 수 없고, 알 수 없음에 기반한다. 만약 내가 무언가를 완전히 알고 있다면, 그것을 믿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건 더 이상 확률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신’을 믿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일반화해도, 우리는 모든 인간을 한 틀 안에 끼워 넣을 수 없다. ‘신’은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아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가 신을 믿는 것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창조자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그 창조자가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를 주관한다고 믿는 것이다. 나아가 이 절대자가 우리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더 나은 삶과 사후를 보장해주리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이 물질적인 세계의 삶이 끝이 아니라고, 우리의 삶이 이런 형태를 지니게 된 것은 절대자의 의도 때문이라고 믿는 것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종교는 대중을 위한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과격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나는 동의한다. ‘신’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종교에서 설명하는 것이 신에 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신’은 ‘절대 선’과 다름없다. 이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 선한 자는 상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은 우리가 믿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모든 문화권에서 종교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하고 좋은 삶을 살면 보상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보편적이다. 하지만 ‘선함’과 ‘좋음’은 지나치게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다. 가장 대표적인 ‘성경’ 역시 현대에는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성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하고, 완전무결하며,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불변한 존재여야 한다. 신은 언제나 가능한 최상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은 시대별로, 문화권별로 조금씩 바뀌어 왔다.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정의하는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은 힘을 가진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애초에 신이 완전하고 전지전능하다는 것 또한 인간의 주장이다. 우리가 인간과 똑 닮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만들어 냈다면, 우리 자신을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구의 순환하는 자연환경을 어떤 온실 안에 그대로 재현해냈다고 해서 신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것, 이런 삶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설사 창조되었다 할지라도 어떤 의미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어떠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이 삶 안에서 그것들을 찾지 못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다 읽었지만, 많은 문제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철학의 본질(이렇게 쓴다면 또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일 것이다. 일생의 절반 이상을 정답을 맞히고 지식을 배우는 학생으로 살았던 나에게 답을 적는 칸을 비워 두는 일은 참 어렵다. 많은 사람이 철학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답을 찾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철학은 거슬리게 느껴질 뿐이다.

 

나는 여전히 ‘신’-종교가 설명하는 보편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시간이 흐르고, 내 생각을 뒤흔들 만한 논리를 발견한다면 어느 날 신의 존재를 믿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철학은 진리가 아니다. 내가 알고, 또 믿는 것이 어쩌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이 책이 우리의 믿음과 진리에 그런 여지를 줄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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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의 철학 여행
- 세상의 모든 사유를 경험하다 -
 
 
지은이
잭 보언
 
옮긴이 : 하정임
 
출판사 : 도서출판 다른
 
분야
교양철학
 
규격
147*215mm
양장
 
쪽 수 : 576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28,000원
 
ISBN
979-11-5633-304-3 (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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