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 나의 시
내 인생에서 시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중학교 2학년, 나는 중창단에 소속되어있었다. 음악 수행평가 시간에 선발된 몇몇 남자애들끼리 모여서 지도를 받았는데, 전문적인 경험이라기보단 학창 시절의 추억을 풍요롭게 만들 정도의 기억이었다. 아무튼, 시골 학교의 특성상 대부분의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게 되었고 공연을 보신 한 국어 선생님은 방과 후에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평소에 친분이 없던 선생님께선 나에게 시 낭송 대회에 나갈 생각이 없냐며 권유를 하셨고 목소리를 쓰는 일에 로망이 있었던 나는 흔쾌히 수락하였다. 시 낭송 대회에 나가게 된 에피소드의 결말은 생각보다 좋았다. 도 대회에서 2등을 했으니 의외의 성과에 나조차 의아해했다.
그 당시 몇 달 동안 외우고 또 외쳤던 시가 한 편 있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 이 책에도 수록된 유명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생소한 작품이었고 대회용 시를 선택하는 일은 선생님의 권한(?)이었기에 군말 없이 시를 받아들였다. 그때까진 시와 인사를 하는 방법을 몰랐다. 시는 누군가의 작품이자 결과물이었을 뿐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풀이와 해석이라는 안경을 쓰고 있어선지 시와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매일 같이 시를 읽으며 모든 연과 행에 나의 감정을 담는 연습을 하다 보니 대회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는 시점엔 시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를 성숙하고 더 굵게, 깔끔한 발성을 마무리 짓는 적당한 떨림, 시를 완성도 있게 낭송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점은 생각보다 많았고 큰 목표가 없었던 초반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개인적인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진지해졌다.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 시인의 마음 근처에 조금이나마 도달할 수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한 작품에 몰두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시인의 설렘이 느껴졌다. 첫 문장을 쓰기 전 갖고 있던 수줍은 설렘이 시를 통해 느껴졌다.
대회 당일엔 이상하면서도 몽환적인 경험을 했다. 평소 암기에 자신 있는 편이 아니라 시를 외우는데 꽤 골치 아팠다. 예선을 거치면서도 시와 친해졌지 않을까 싶었지만, 연습 때마다 몇몇 단어를 까먹어 재차 확인하느라 걱정이 됐었다. 본선에선 특히나 도 각지에서 올라온 동급생들이 많았고 굉장히 긴 시를 낭송하거나, 목소리가 중학생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중후한 친구들도 많아 위축되곤 했었다. 대회 막바지 나의 순서가 됐고, 조명이 비치는 무대 위로 올라가 백지의 종이를 들고 낭송을 시작했다.
시의 구성과 단어들이 뚜렷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눈이 부실 정도의 강렬한 조명에 살짝 눈을 감았고 습관처럼 입에서 시의 첫 문장이 나왔을 뿐이다. 눈을 떠보니 마지막 문장을 앞두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가슴에 이상하게도 먹먹한 감정만이 남았다. '답답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그 뒤범벅이 된 어떤 기쁨 같은 것이었다. 환희라고나 할까.'(p.31) 책에 나온 나태주 시인의 말을 인용했지만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그날 무대에서의 짧은 낭송이 나에겐 시와의 첫 만남이자 첫인사였던 것 같다. 일방적으로 듣거나 말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울고 웃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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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핀 꽃, 시
'시기 나에게 살라고 한다.' 어렴풋이나마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의 세계를 몇 문장의 편지를 통해 잠시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운 좋은 행복이라 느껴진다. 특히나 나태주 시인이 직접 꼽은 시들을 읽다 보면 나 또한 넓은 세상을 여행하며 수많은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는 듯하다.
김남조 시인의 '편지'라는 시에 대하여 나태주 시인은 이런 코멘트를 남긴다.
'편지란 마음의 표식. 말로는 차마 이룰 수 없는 마음의 하소연을 담는 정결한 그릇. 저녁에 쓴 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끝내 그 편지를 부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부치지 못하는 편지랄 지어도 그 애틋한 마음은 편지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처럼, 시인이 소개하는 모든 시에선 누군가를 향한 소중한 감정이 묻어나 있다. 114편의 우리를 위로해주기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는 시들은 읽고 나면 우리의 마음 어딘가에 오랜 시간 머무른다. 몸과 정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국의 약이 아니라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해 종이에 마음을 눌러 담은 시인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잠시 시간을 내어 읽어 본 이 책에서 우린 생각보다 많은 감정과 또 다른 우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114편의 시 중, 나의 마음을 다시 울린 2편의 시를 소개하겠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_저녁에
'좋은 시는 모름지기 좋은 영혼에서 나온 문장이다.' 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김광섭 시인의 깊은 감수성에 반하게 된다. 무척이나 유명한 시임에도 새롭게 다가온다. 시를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지기도, 좋아하는 음악이 연상되기도 하며 만들고 싶은 영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첫 문장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나에겐 시의 첫 문장과 첫 번째 연이 신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마종하_딸을 위한 시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한 진리임에도 나는 차마 직접 내뱉어 본 적은 없는 말을 시인은 자신의 딸에게 전해주고 있다. 시인의 교육관과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시를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느낀 적은 종종 있지만 무언가 인생의 진리를 배웠다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보통의 언어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시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크기변환]다운로드.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011/20201129220609_qappabsi.jpg)
나태주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