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되풀이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모티프는 마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불안정한 사랑의 끝을암시하는 듯 하다. 하지만 불안정함과 사랑의 견고함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 때때로 사랑은 현재 진행 중인 사랑보다 과거 추억의 모습일 때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르페우스의 사랑은 에우리디케와의 사랑했던 추억으로 현재 연인으로서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선택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강력하게 결혼을 거부하라 말하지 않은 것도, 현실에 상황에 대해 한 발짝 물러난 것도, 영원한 사랑을 느끼기 위해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아닌 영원하게 추억되는 기억을 가져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사랑은 초상화 속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마리안느가 처음 그린 초상화는 그림의 규칙과 관습에 따라 그린 그림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그린 초상화 속 엘로이즈의 모습은 그녀가 분노할 때의 굳은 입매, 웃을 때의 입 꼬리, 행복해할 때의 눈빛과 사랑할 때의 혈색 도는 뺨 등 엘로이즈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엘로이즈에게 수영은 미지의 세계이다. 그녀는 수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엘로이즈에게 마리안느 또한 미지의 세계이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산책을 같이하고, 자신을 훔쳐보며,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미지의 세계는 때때로 긴장감과 불안정함, 초조함 등을 느끼게 하지만 내가 그것을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다. 비록 끝이 허무하거나 내 기대와 다를지라도 나를 덮쳐오는 파도 속에 걸어 들어가 보는 것, 허락되지 않은 미지의 상대를 사랑해 보는 것 모두 새로운 세계로 걸어 들어가 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비록 물에 잠기고, 사랑이 식어 재가 될 지라도 내 마음속에 강렬히 남아있는 처음은 평생 잊히지 않는 부표가 될 것이다.
영화 속 울려 퍼지는 비발디의 사계는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활기찬 여름대신 강렬한 북풍과 장마, 번개를 묘사한 사계를 따라가듯 마냥 아름답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처음으로 수녀원의 음악이 아닌 교향악단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엘로이즈의 모습을 보면 어떤 이별은 영원한 사랑을 만드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녀와 야수 속 나오는 장미 또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긴 위해선 그것을 만지고, 느끼고, 물을 주는 대신 투명한 유리 속에 보관해놔야 한다. 사랑이 무슨 죄가 있을까. 처음으로 사랑에 타오르는 여인의 모습은 보는 나로 하여금 그들의 강렬한 사랑에 동화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상대를 만지고, 느끼는 사랑과 반대로 유리관 속 보관되어 있는 사랑의 존재만으로도 묘한 위로감을 선사한다. 적어도 유리 속 보관된 사랑이 깨지거나 닳아 없어지진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