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서를 2가지 목적에서 한다. 하나는 작가의 생각을 보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연대표처럼 흐름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김효정 교수의 <야한 영화의 정치학: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영화로 보는 성의 현대사(이하 야한 영화의 정치학)>는 후자에 가깝다.
제목부터 논문의 기운이 느껴진다. 학부 때 기억이 떠올랐다. 소설과 영화 분석을 하며 논문을 많이 읽었다. 영화/문학사의 흐름을 짚어주는 논문, 한 텍스트를 깊게 파고드는 논문을 동시에 읽었다.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한 뒤 미시적으로 들어가야 더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효정 교수의 저서 <야한 영화의 정치학>은 영화사를 색다른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단순히 여성의 역할 뿐만 아니라 ‘검열’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어 영상 텍스트를 분석했다. 영상 텍스트 속에서 성 재현,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검열되고 그 안에서 재생산되는지를 분석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열아홉 번째 챕터인 <구미호>(1994)다.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계층인 유색인종, 여성, 하류층, 동성애자 등이 괴물화되어 영상 텍스트에서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양에서 괴물화된 억압 계층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미치광이 살인마로 나타나 여성을 살해하는 쪽으로 그려지며, 동양에서는 여자 귀신으로 나타난다. 여귀 중 하나는 구미호로, 그녀는 죽어야 권력을 갖게 된다.
동서양의 공포영화 분석을 통해 문화권의 차이를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한쪽은 존재 자체를 지우고 다른 한 쪽은 부정적으로 보여진다. 어느 쪽이든 좋지는 않지만, 굳이 고르자면 후자가 낫다고 생각한다. 동양 배우들이 중심이 된 영화 <서치>, BTS 덕분에 인지도가 향상된 K-Pop 등 그동안 미국 문화에서 지워졌던 동양인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동양 배우의 존재 지우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준 미국 드라마 <킬링 이브> 팀은 주연인 ‘샌드라 오’의 무대 사진을 크롭해 올리기도 했으며, 영화 <메이즈 러너>의 ‘민호’는 작가의 조카 남편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지만, 영화 포스터에서 존재가 지워지기도 했다. 있는지도 모르는 것보다는 부정적으로라도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낫다. 눈에 보여야 생각도 할테니.
이 책을 읽으며 의외의 지식 또한 습득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영화 <무법자>(1943)에 러셀의 가슴, 빌리와 리오의 동성애 코드가 나오는데, 이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검열이 사라지는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야한 영화의 정치학>은 에필로그까지 239쪽의, 조금은 많아보일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는 데다, 영화 분석이 길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번 설, 잠시간 독서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