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ew]
동양 여성보다는, 소리꾼 박인혜
판소리 오셀로
자, 먼저. 무릎 꿇고 반성. 삐딱한 시선으로 프리뷰를 썼었다. 그래도 찌질하게 한마디 하자면, '동양 여성'이 다분히 '서양 남성'적인 오셀로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필자한테는 썩 유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서 처음 공연장에 앉아있을 때도 뻔뻔하게 양 겨드랑이에 다른 쪽 손을 넣고, "좋아. 뭐가 그렇게 다른지 설명해보시지"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며, 반성한다. 그래도 게으르기 짝이 없는 필자가 바로 다음날 리뷰를 쓰는 것에도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이데올로기나 젠더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공연을 기대했던 필자의 잘못이었다. 감히 말하건대, <판소리 오셀로>는 올해 본 문화예술 공연 중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또 찌질하게 한마디 더 하자면, 필자는 이 좋은 공연을 특정한 프레임으로 엮은 홍보 방식이 '정말 몹시 매우' 불만이다. 소리꾼의 재량 자체가 이미 그 모든 요소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는데, 꼭 공연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의미'를 부여해야 했을까? 관객들은 공연장에 들어간 순간부터 소리꾼에 홀려버릴텐데, 거기다 대고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나타나는 서양-남성적 서사와 민족 설화 <처용가>의 동양-여성적 서사의 비교연구 '를 줄줄히 읽었어야 했을까? 판소리를 보고 나온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경험을 했겠지만, 최소한 필자에게는 '홍보물'인 <판소리 오셀로>와, 실제 '공연' <판소리 오셀로>간의 차이가 컸다.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한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든 적절하게 무언가를 표현해낼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 된다. <판소리 오셀로>가 완전히 두 이야기를 비교하고 뒤집는 이야기가 되었어도 괜찮다. 다만, 광고랑은 너무 다르지 않은가. 마치 '나는 분명 딸기맛 케이크를 시켰는데, 라즈베리맛 케이크가 나온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막상 나온 라즈베리맛 케이크가 너무 맛있는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두 케이크다 빨갛고 베리 류니까 똑같은거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건 그냥 녹두앙금빵과 단팥빵 같은거니 그냥 두개 다 드시면 된다. 그래도 우리는 삶을 즐기기 위해서 째째하게 색과 식감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하지 않겠는가.

필자가 먼저 기대했던 딸기맛 케이크는, 조선 기생 설비 단이 이야기하는 '오셀로'와 '처용가'의 차이와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이 안타까움은 동양-여성적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필자가 맛본 라즈베리맛 케이크는, 소리꾼 박인혜가 이끌어가는 '오셀로'의 이야기다. 처용가의 이야기가 처음과 끝에 조금씩 끼어들긴 하지만 두 이야기가 동등하게 비교가 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공연장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소리꾼은 그들의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표현하긴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설비 단'이라기보다, '박인혜'같았다.
사실 공연을 보는 내내, <판소리 오셀로>보다는 <무형문화재 박인혜 콘서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설비 단'이기는 실패했지만, 좌중을 휘어잡는 '소리꾼'이기는 성공했다. 그녀는 처음 관객들을 마주했을 때 날씨에 대해 언급하고, 극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유로운 이야기와 몸사위,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음색은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졌다. 이야기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그녀는 '동양 여성'이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떠돌고 전하는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그날 밤 잠에 들기까지 꽃을 휘적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 나름의 연출에 대해서 세세하게 늘어놓고 싶은데, 뭔가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생각해보면 한 인물이 모든 인물을 연기하고 여러 상황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같다. 신이 들렸다는 말이 그나마 그녀의 표현력에 가까울까? 극장을 나왔을 때 '박인혜'라는 이름만 입에 맴도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하나로 엮여 <판소리 오셀로>의 가장 감명깊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오셀로를 판소리로 표현했다는 점, 박인혜 소리꾼의 놀라운 실력이 그것이다. 그래서 아주 멋진 공연이었다. 나는 우려먹을만큼 우려먹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또 이런 맛을 낼줄은 몰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