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파트너 아트인사이트 덕분에 언더스터디를 보고 왔습니다. 장소는 혜화역 근처의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제가 관람한 13일 4시에는 모든 좌석이 매진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좌석에 앉아서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려보니 양희은씨가 옆에 앉아 계셨는데요. 신기한 경험이였습니다. 관람 목적이 언더스터디 감상이기 때문에, 모른 척 관람을 했습니다. 물론 언더스터디를 보시면 옆 좌석에 누가 있더라도 신경을 쓰실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언더스터디란
언더스터디는 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연극 언더스터디는 배우를 위한 연극, 연극을 담은 연극, 인생을 말하는 연극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은 배우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을 바탕으로 연극의 본질과 그와 닮아있는 우리의 삶을 비추어 그려냈습니다. 언더스터디를 보시면 왜 이런 말로 이 작품을 소개하는지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연극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무대 공간의 모습
언더스터디의 무대는 1층과 2층으로 나눠져있습니다. 1층은 현실을, 2층은 연극 무대를 의미합니다. 언더스터디의 줄거리를 보시면 오선생이 < 베니스의 상인 >의 샤일록을 연기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선생이 샤일록이 연기하는 무대가 2층입니다. 즉 1층과 2층은 현실과 가상의 벽입니다. 또한 주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오선생의 분장실입니다. 이곳은 1층이죠. 언더스터디는 연극이 끝난 뒤 분장실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즉 현실의 오선생과 그를 따르는 제자 류태호가 그 곳에 존재합니다. 류태호는 < 베니스의 상인 >의 샤일록의 역할의 언더스터디입니다. 언더스터디는 메인 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를 의미하는데 한국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제도입니다. 한국에서는 한 역에 두명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더블 캐스팅을 주로 사용하죠. 오선생을 따르는 제자 류태호가 오선생 대신에 < 베니스 상인 >의 샤일록 역할을 맡는 과정을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여정이라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2.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말
언더스터디 팜플렛을 보시면 한 문구가 눈에 뜁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을 배워라. 연극 한 편에 배우의 성패가 걸려 있다는 욕심은 버려. 단지 충성스럽게 너의 영혼을 드러내 보이는 거야. 매번 공포에 떨면서도 같은 짓거리를 반복해야 하는 게 연극 배우의 정해진 숙명 아니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너의 범선을 띄우고 키를 잡을 때가 오지. 때로는 너를 좌절시키기 위해 태풍과 암초가 복병처럼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래도 너의 범선을 멈추지 말아라. 미안하구나, 이번 항구에서 나 먼저 내리마." 이 문구는 연극에서 직접 오선생이 하는 대사입니다. 언더스터디를 관람하기 전에는 이 문구가 어떤 의미인지 문맥적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자신이라는 배를 목적을 향해서 멈추지 말고 향해해라, 그 곳에 역경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이것이 이 문구에 대한 제 느낌이었습니다. 언더스터디를 보시다보면 < 베니스의 상인 >의 오셜록 역을 연기한 오선생이 왜 저런 단어와 말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샤일록의 상황과 저 대사의 연결을 직접 관람하신다면 감동은 배가 될 것입니다.
3. 60년 인생의 연극과 현실
언더스터디는 배우란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현실적인 인간이면서 동시에 무대라는 환영 속에 존재하며 또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따라서 배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는 자들로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합니다. 오선생 역을 맡은 배우 오현경의 연기를 보다보면 이 이야기가 배우 오현경의 실제 이야기인지, 언더스터디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배우 오현경이 60년 연기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 연극에서 연기를 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만큼 배우 오현경의 모습이 오선생의 모습과 일치되며, 경계선 상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4. 연극을 되돌아보며
언더스터디를 보고 나오면서 마음 속에 남은 단어는 단 하나입니다. 퇴장. 퇴장이라는 말이 이토록 아름다운 말인지 몰랐습니다. 흔히 퇴장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축구 시합의 퇴장이 떠오릅니다. 허나 언더스터디의 퇴장은 다릅니다. 언더스터디의 퇴장은 아름답고 정리적이며, 상징적이면서도 씁쓸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나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이 자신을 정리하는 것. 누구든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정리하는 일은 씁쓸한 일입니다. 정리라는 것은 존재의 의미가 깎여나가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오선생은 이러한 정리를 자신의 제자, 정환과 자신 그리고, 관객을 위해 행합니다. 자신의 제자가 무대에 서는 기회가 될 수 있게, 더 이상 무대에 오르기 힘든 자신의 몸 상태의 호전과 관객에게 자신이 온전한 연기자로 기억되기 위해. 물론 오선생은 계속해서 연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현실의 벽에 부딫혀 그 일이 불가능할 때, 아름다운 정리를 할 수 있다는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정리를 택합니다. 그의 그러한 선택에서 씁쓸함이 묻어나지만 정환의 새로운 출발은 그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오선생이 관객에게 하는 말은 그러한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넘어서. 인생이라는 바다의 자신이라는 함선
언더스터디는 삶을 논한다고 말했습니다. 무대에 올라서면 대역은 없다는 언더스터디의 말은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은 타인이 아닌 본인 그 자체입니다. 내가 아닌 누구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됩니다. 본인이 본인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언더스터디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PS) 제 리뷰에 부족한 정보는 아래 팜플렛에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