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의 초대로 어제 저녁 세종 체임버홀에서 있었던 성악가 변지현의 귀국독창회에 다녀왔다. 국문학 전공에서 성악으로 전공을 바꾼 그녀의 특별한 이력에 시선이 가서 이 공연에까지 다녀오게 되었는데,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도전이 되는 공연이었다. 성악가 변지현의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선곡과 함께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따뜻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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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s
Pf. 서민기
Pieta Signore(주여 들어주소서), A. Stradella(1639-1682)
Stabat Mater(성모애가), RV. 621, A. Vivaldi(1678-1741)
1) Stabat Mater Dolorasa
2) Cujus Animam Gementem
3) O Quam Tristis
Myrthen, Op.25, R. Schumann(1810-1856)
Die Lotosblume(연꽃)
Widmung(헌정)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 오페라
Intermission
H. Duparc(1848-1933)
Extase(황홀)
Lamento(탄식)
R. Hahn(1874-1942)
Infidelite(배반)
Si Mes Vers Avaient Des Ailes(만일 나의 시에 날개가 있다면)
Habanera, 오페라
O Mio Fernando,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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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프로그램은 슈만의 곡을 제외하고는 전부 종교적인 색채를 띤 곡이었다. 첫번째 곡부터 굉장히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의 Pieta Signore. 교회의 아리아(Aria Di Chiesa)라고도 하는 이 곡은 마치 시편 기자의 탄식과도 같았다. 주의 자비를 구하고 주의 얼굴을 내게서 돌리지 마옵시기를 구하며 속죄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그 간절함이 담담한 듯하면서도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홀을 가득 채웠다. 변지현은 처음 무대에 등장할 때 활짝 웃으며 무대에 올랐는데, 이 곡이 시작된 후에는 바로 캐릭터가 변해버렸다. 정말로 누군가의 참회를 목전에서 바라보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두번째 곡 역시 종교적인 곡이었다. 비발디의 성모애가였는데, 세 부분으로 나뉘는 이 곡은 누가복음 2장 35절의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라는 시므온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번째 Stabat mater dolorosa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옆에서 눈물 흘리는 마리아를 그렸다. Cujus animam gementem은 시므온의 말대로, 비탄에 빠진 마리아의 마음이 칼에 꿰뚫렸다는 말을 그림으로써 십자가 수난 중 마리아의 애통함을 담아내었다. 마지막 O quam tristis는 그런 아들의 슬픔을 목도한 어머니의 고통을 슬픔으로 노래하며 마무리되었다. 세 파트가 모두 짧게 구성되어 있어 곡 전체도 길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긴 서사를 한 번에 짚어가면서 변지현의 음성에 귀 기울이다보니 곡이 길었는지 짧았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몰입되었다.
세번째 곡은 1부에서 유일한 가곡이었다. 슈만의 가곡. 슈만의 가곡은 Dieterliebe(시인의 사랑)만 들어본 적이 있다. 미르테 꽃이라는 작품번호 25번은 처음 듣는 곡이었다. 슈만의 가곡이니만큼 낭만적이고 시적인 소곡일 것이라 기대가 되었는데, 당장 곡의 반주가 시작되자마자 무대의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미르테 꽃의 26곡 중 변지현이 선택한 곡은 1번 헌정과 7번 연꽃이었다. 정말 너무도 아름다웠다. 어쩌면 이전 곡들이 바로크적인 종교 곡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슈만의 서정성이 부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전까지는 신의 얼굴을 구하는 순례자같은 모습으로 무대 위에 서 있던 변지현은 어느새 사랑으로 만개한 꽃처럼 화사하게 서 있었다. 정말 지금 바로 눈 앞에 연인을 두고 속삭이는 것처럼 너무도 아름다운 무대였다. 7번 연꽃을 먼저 부르고 그 다음에 1번 헌정을 불렀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헌정을 뒤에 부르니 더욱 더 그 서정적인 감정이 극대화되는 기분이었다.
그 뭉클한 감정을 안고 1부의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다. 헨델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정말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였다. 파란 꽃다발을 안고 무대에 조심조심 발을 내딛으며 첫 소절을 시작했는데, 알미레나의 그 슬픔을 더 잘 표현하는 장치였던 것 같다. Blue한 그 슬픔으로 한 소절 한 소절 담담한 듯하면서도 극적인 감정을 담아 풀어내는 변지현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익숙한 곡이기에 오히려 더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 허를 찌르는 기분이었다.
2부에서 변지현은 바로 위의 사진과 동일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드레스에 맞추어 다홍빛의 레드립을 한 그녀의 모습은 1부에서 보여주었던 경건한 신앙인의 모습 그리고 사랑의 행복을 노래하는 여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2부의 첫 곡은 앙리 뒤파르크의 가곡이었다. 변지현은 뒤파르크의 곡들은 전부 명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녀가 그려내는 뒤파르크는 어떤 느낌일지 매우 궁금했다. 황홀과 탄식이라는 두 곡을 다 듣고 난 뒤 느낀 소회는 굉장히 오묘한 곡이라는 점이다. 가사를 보지 않아도 우수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녹아있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황홀이 그랬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의 곡. 그렇기 때문에 더 프랑스 가곡에 있어 그가 천재적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곡은 아닌데, 오히려 무대가 끝나고 더욱 더 곱씹어보게 되는 곡들이었다.
이어서 레이날도 한의 가곡이 이어졌다. 먼저 부른 곡은 배반이었다. 사실 들어보면 곡 자체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고티에의 시에 선율을 붙인 것이라 했는데, 가사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들으면서 제목과는 달리 곡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모든 것을 노래하고, 맨 마지막에는 que vous라고 읊조리며 노래가 끝나버렸다. 소름이 끼쳤다. 불현듯 이 곡의 제목이 배반이었다는 게 실감나면서 한이 이런 곡조를 붙여 시의 감정을 극대화한 것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변지현은 이 사무치는 감정을 위고의 시로 달래주었다. 위고의 시에 곡조를 붙여 만든 가곡 만일 나의 시에 날개가 있다면은 안정감있게 들을 수 있었다. 직전의 곡에서 한이 보여주었던 반전 넘치는 감정의 표현과는 또 다르게 서정성을 표현해주어서 그 느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것 같다.
2부의 세번째 곡은 하바네라. 내가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 바로 그 아리아였다. 어제 무대의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서민기는 오페라에서 이 아리아가 시작할 때의 도입부와는 조금 다르게, 첫 소절의 선율을 그대로 따와서 반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소절이 시작되기 직전의 그 유명한 전주부분이 시작되자 변지현은 무대 문을 열고 장미꽃을 쥐고 발을 굴리며 무대 위에 등장했다. 이 무대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붉은 드레스와 레드립 그리고 빨간 장미까지. 두 번째 드레스는 바로 이 무대를 위해서 준비된 것만 같았다. 위험한 듯한, 변덕이 심해 반항하는 새 같은 그런 사랑을 속삭이는 카르멘처럼 변지현은 부드럽게 속삭였다가 강렬하게 메시지를 쏟아내기도 하면서 완급을 조절했다.
사실 매번 생각하는 건데, 프랑스어로는 노래를 부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프랑스어에서 R 발음이 H와 비슷하게(하지만 좀 더 깊게) 나서 음정을 띄워 그 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당장에 하바네라의 첫 소절 L'amour est un oiseau rebelle에서도 두 번이나 r 발음이 포함된다. 중학생이었을 때, 하바네라의 r 발음을 불어 발음 그대로 살려서 하는 음원을 들었던 기억이 선명한데 지금은 그게 누가 불렀던 곡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혹적인 선율에 그 묘한 발음이 어울려서 프랑스 오페라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여하튼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변지현은 어떻게 하바네라를 부를 지 궁금했는데, 그녀는 보편적으로 성악에서 하는 대로 R 발음을 그대로 풀어서 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도니제티의 오페라 의 아리아 오 나의 페르난도였다. 왕의 애첩인 레오노라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페르난도. 왕의 허락으로 레오노라는 페르난도와 결혼할 수 있게 되지만 그녀의 비밀을 모르는 페르난도 아에서 레오노라는 결혼을 앞두고 복잡한 심경에 젖어든다. 페르난도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그를 속이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 그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떠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하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레오노라 자신의 마음.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얽혀 이 아리아에 녹아져 있었다. 1부에서 그렸던 아름답고 서정적인 사랑과는 달리 2부에서는 격렬하고,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너무도 세속적인 사랑을 그려내고 있었는데 그 정점은 이 마지막 곡에서 찍었다. 여전히 페르난도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비밀로 인한 배덕감. 그 감정의 덩어리들이 폭발하며 무대가 끝나는데, 정말 Brava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의 뜨거운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변지현은 이어서 앵콜 무대를 이어갔다. 이 추운 겨울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곡이라며 소개해준 그 작품은 김효근 선생님 작시/작곡의 '눈' 이었다. 우리말 가곡을 듣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었는데,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곡이었다.
성악가 변지현이 먼저 나서서, "국문학에서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어서 성악가가 되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그녀가 처음부터 음악을 공부해왔던 사람이 아니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도전은 정말 성공적이었고 나와 같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도전적이었다.
Dalton Baldwin으로부터 "따뜻하고 우아한 금빛 목소리"라고 찬사를 받은 메조소프라노 변지현은 정말로 따뜻한 음색을 가졌다. 그리고 정말로 다채로운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성악가였다. 신실한 성도와 같은 모습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여인에서부터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저력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앞으로의 무대에서 많은 것들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음을 이번 무대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이 다음에 성악가 변지현을 어떤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메조소프라노 변지현을 리사이틀에서 만나게 되든 오페라 무대에서 만나게 되든, 그녀는 또 다시 관객들을 자신의 매력으로 충분히 사로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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