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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부서진 영혼을 어루만지는 밤의 시간 [도서/문학]

밤이면 찾아오는 애디와 루이스의 믿음과 대화 그리고 사랑

by 최승윤 에디터
2026.10.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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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 은 홀트에 사는 두 노인 애디와 루이스가 지난한 서로의 고독을 어떻게 다독여주는지 보여준다. 각자 아내와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오던 두 사람은 애디가 루이스의 집에 문을 두드리면서 만남이 시작된다. 침대 위에 누운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 속에 받은 상처를 보여주고 사연을 들려준다. 그렇게, 영혼은 어떻게 조각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만남이 두 영혼을 어떻게 보듬어줄 수 있는지 귀기울이게 된다.

       

      켄트 하루프 작가의 마지막 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2017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바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제목이 다시 보였다. 제목에서 ‘밤’과 ‘영혼’, 이 두 글자의 의미는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분명하게 달라졌다. 이야기의 시작은 애디가 루이스의 집에 문을 두드리며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이들의 과거는 함께 누워 나누는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만남의 초입에서 예상해볼 수 있었던 전개는 노년의 나이에 혼자가 된 두 사람의 고독, 이어지는 잠자리와 사랑으로서의 해소다. 그러나 이야기는 두 노인의 삶을 들려줌으로써 독자가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함께'하는 것에서 오는 온기를 의식할 수 있게 만든다. 각자 남편과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애디와 루이스는,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던 이웃에서 빈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한다.

       

      또한 ‘밤’이라는 은밀한 시간은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되는 시간이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던 과거의 마음을 내려놓게 된 변화를 상징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더이상 신경쓰거나 눈치보지 않겠다는 의지 역시 느껴진다. 동네 사람들이 둘 사이를 눈치채고 떠드는 말에도 개의치않고,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식당으로 가 함께 식사를 한다. 이제 ‘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시간이 아닌 두 사람만의 공식적인 시간이다.

       

      노년기의 삶을 떠올려보면 아득한 공포가 몰려온다. 죽음이나 쇠약해진 신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가만히 죽여야하는 시간에 대해서다. 미디어나 작품에서 사랑이 다뤄질 때, 혹은 평범한 일상에 대해 다룰 때도 노인들의 삶에 대해 거의 본 기억이 없다. 늙어간다는 것에 사랑과 시작, 그 외의 감정들은 따라붙을 수 없다는 듯 마치 없는 존재와 시간처럼 다뤄져왔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애디와 루이스의 이야기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특히 두 사람은 현재에 와서야 과거에 실현시키지 못했던 가정의 구성을 이뤄내는 듯 보인다. 애디의 여섯 살 난 손자 제이미가 부모의 갈등으로 애디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이 변화는 확실해진다. 셋이서 함께 식당을 가고, 캠프를 가고, 개를 입양한다. 따듯하고 평화로워보이는 일상이지만 처음 제이미가 애디의 집에 오던 날에는 혼자서 잠을 자지 못한다. 울면서 잠을 깨고 계속 할머니(애디)를 찾는다. 불을 켜고 문을 열어두어야 하며 결국 애디의 곁에 누워야만 잠들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갈등과 소음 속에서 자라왔고 새로운 집에서 다시 버림받을까 두렵다. 그러한 제이미에게 애디와 루이스는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햄버거를 먹으러 가고, 정원에 물을 함께 주고, 생쥐가 새끼 낳은 모습을 구경하게 해준다.

       

      이 풍경은 마침 진(애디의 아들)이 아내와 불화할 때 애디와 루이스가 만나게 되어 제이미 곁을 함께 해줄 수 있었다는 식의, 단순하게 설명될 장면이 아니다. 애디는 첫째 딸 카니를 어린 나이에 잃었다. 교통사고였다. 동생인 진과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진은 자신이 카니를 길거리 차 앞으로 뛰어나가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 뒤로 남편인 칼과의 사이가 소원해졌고 칼과 진 역시도 무정한 부자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자란 진의 아들이 제이미다. 진 역시도 아버지의 역할, 좋은 아버지의 본보기를 알지 못한 채 아버지가 되었고 아내와의 갈등으로 아들을 애디에게 맡긴다.

       

      또한 루이스의 경우에는 타마라라는 여자와 바람을 폈던 과거가 있다. 그 집에서 타마라의 아이와 함께 지냈던 시기가 있었고 그러다 다시 아내인 다이앤과 딸인 홀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루이스는 이때를 회상하면서 다이앤에 대한 미안함이나 타마라와의 사랑이 아닌, 그 순간의 아쉬움을 말한다. 다시 말해 루이스의 아쉬움은 (바람폈던 여성과 사랑을 더 이어나갈 수 없음에 대한 미련이 아닌) 평범한 교사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 전반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보인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교사 일을 계속해야만 했던 꿈과 이상에 대한 미련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란 딸 홀리는 버림받을까 두려워하거나, 현재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관련한 대화를 꺼린다. 홀리가 갖는 남자에 대한 입장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식들을 보살피고 함께 보냈어야 했던 시간에 대한 부재가 애디와 루이스의 마음에 존재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이룬 가정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 미련, 부족함이 내면 기저에 잠식되어있을 것이다.) 제이미는 안정적인 부모의 보살핌 아래 안전하게 자라지 못한 과정의 되물림이다. 그리고 두 노인은 어린 아이를 보필하는 현재의 시간을 통해 과거에 자신이 주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 가족의 형태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말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주를 봐주는 그림이 마침, 우연한 계기라는 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후회의 시간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뜻깊게 작동할 수 있다. 노인이 되어서야 젊은 시절 미완으로 지나가버린 양육의 역할을 해내게 되는 것이다. 두 노인은 아이의 성장 곁에서 사랑과 추억을 쌓았다. 꺼져가는 감각의 삶 속에서 어린 아이가 합류하게 되면서 그 전과는 또다른 '함께'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 나이든 이웃 노인, 루스가 있다. 루스는 애디와 함께 장을 보러가거나 제이미와 루이스와 함께 나들이를 가기도 한다. “초콜릿은 안 먹는 게 좋다지만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죽을 거예요.”라는 그의 말은 눈치를 보느라 그간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지나쳐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애디와 루이스의 만남 역시 상징하고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특히 늙는다는 것, 이들의 나이와 시간에 대해 실감하게 만드는 대목은 갑작스런 루스의 죽음이다. 애디와 루이스 역시 노인이지만 이들보다 앞선 시간대를 살았던 루스의 죽음을 통해 일상 속의 죽음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두 사람은 이미 남편과 아내를 떠나보냈다. 만남의 시간을 통해 잊혀졌던 그 죽음, 이들의 앞날을 다시 감각하게금 한다. 직계가족이 없어 루스의 유골을 직접 뿌리면서 두 사람의 마음은 변화가 분명할 것이다. 남겨진 가족과 죽음, 그 이후.

       

      모든 것이 불에 타 없어지게 된다면 남는 것은, 혹은 남기를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영혼이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영혼’에 대한 말이 직접적으로 등장할 때는 루이스가 다이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다. 루이스는 옛날만큼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내세, 우리의 원래 자아로 돌아가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디는 지금 이 만남, 즉 물질적인 것이 좋다고 답한다. '영혼'은 보이지 않지만 둘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간 온전하지 못했다. 외로운 영혼은 부서져있다. 그러나 애디의 말처럼 물질적으로 닿을 수 있는 둘의 만남은, 결국 만져질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영혼에 닿았다.

       

      소설의 제목은 「밤에 우리 영혼은」이다. 종결되지 못했다. 끝끝내 정의내리지 못한 문장처럼 밤에 두 사람의 영혼은 깨진 부분이 접합되기도 하고, 희미해졌지만 끝내 살아있는 불같다. 자신과 연락하지 못하도록 진이 제이미를 협박했기 때문에 애디는 루이스와의 만남을 회피하게 되지만 결국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찾고 흔적을 좇게 되는 것처럼, 이들은 서로가 가진 지독한 외로움을 채워주었다. 성적 쾌락감을 충족시켜주는 잠자리가 아닌 대화를 하고 좋은 것을 함께 보고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다. 내가 이들의 만남을 처음부터 사랑으로 정리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적인 끌림의 사랑보다는 우정과 믿음에서 확장되는 가족애적인 사랑이다. 이성적 끌림으로만 이 사랑을 정의내릴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찾은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가.”

       

      책의 뒷표지에 큰 글씨로 적힌 문장이다. 작은 마을에서는 이웃끼리 서로 알고, 보는 눈이 많고 소문이 빠르다.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는 자식과 이웃들 전부 반대하거나 꺼림칙한 시선으로 본다. 마지막까지, 둘을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에 의해서(애디의 아들) 두 사람은 멀어지는듯하지만 결국 지난한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서로의 옆자리를 다시 더듬는다. 전화를 하고 서로를 생각했다는 말을 전하고 듣는다. 전화의 마지막 말은 대화의 맥락과 이어지지 않는 춥냐는 질문이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과 걱정, 그리고 언제나 침대의 옆자리를 채워주었던 온기의 상실이 느껴진다. 그것이 질문의 정확한 대답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제이미를 돌보던 당시 루이스는 자신의 집 앞에 새끼를 낳은 생쥐를 보여준다. 쥐가 배선을 갉아먹지만 않는다면 바깥에 있는 것은 상관없다고 말하자 제이미는 어떻게 그것을 하느냐 묻는다. 그 말에 루이스는 “쥐들은 못 가는 데가 거의 없거든”이라고 답한다. 사람들이 오면 쥐들은 겁이 나 도망간다. 그러나 밤이 되면 루이스가 애디의 집 문을 두드렸듯이 다른 이들의 비난과 자식의 만류에도 그들이 못 갈 곳은 없다. 나누지 못할 마음 역시 없다. 예기치도 못한 곳에서 잽싸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음이 어둠 속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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