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 쾌적함, 즐길 거리의 3박자
난지 한강공원에서 하는 페스티벌은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두근거리는 마음과 인천이 아니라는(요즈음의 음악 행사는 인천인 경우가 잦더라) 안도를 안고 향한 난지 한강공원은 다음에도 가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접근성이 좋았다. 셔틀버스도 있었다.
접근성에 더해 ‘쾌적하다’라고 느꼈던 건 페스티벌 외적인 요소도 분명 있을 테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는 XMF와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 락페스티벌과 날짜가 겹쳐, 내 예상보다 사람이 적었다. 겹경사로 정오를 넘어가니 햇볕도 그리 따갑지 않았다. 인파가 적은 덕분이었을까, 직원들도 친절했고 짐 검사의 속도도 빨라서 입장이 수월했다. ‘락페스티벌’이 가지는 독고다이의 이미지와는 달리 가족 단위 관객들도 많았고, 아이들도 제법 보였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왔을 때 무대 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은 것도 호감이었다 암표근절 부스, 다양한 F&B 부스, 무알코올 맥주 부스 등등 볼 것과 먹을 것이 있었는데, 알코올 금지 페스티벌이니만큼 가족끼리 오기 더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을 특화하면 렛츠락 페스티벌만의 색이 좀 더 갖춰지려나?
무대들이 참 좋았어!
바바핀스의 죽이는 기타와 함께 관람을 시작했다. 라인업 사진에는 분명 정장을 입을 말쑥한 밴드의 느낌이었는데, 웬걸 무대를 보니 모두가 바람막이 같은 캐주얼한 옷에 흥겨운 락을 하는 밴드였다.
앨리스신드롬 공연도 좋았다. 비주얼에서 예전에 좋아했던 일본 락밴드 BAND-MAID가 생각났는데, 음악은 그것과 다르게 팝적인 느낌이 강했다. 공연한 곡들 중 [Deep Dive]가 마음에 들었다. SNS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기도 했던 느낌인데, 데뷔곡이더라! 앞으로가 기대되는 밴드였다.
타고난 엔터테이너의 기질이란 뭘까? 김승주의 무대를 본 친구의 ‘멘트는 정말 못 하는데 너무 웃기다’라는 평을 듣고 한 생각이다. 곡과 곡 사이의 관객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그러나 못하는데 웃긴 사람은 생각보다 적고, 그게 나에게 웃음을 주면 그때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무대가 좋아야 하지만 말이다! 앙상블 백트랙이 꽉꽉 들어찼던 노래들이 좋았고, 중간에 물도 뿌려주는 퍼포먼스도 있어 흥이 났다. 다음에도 김승주의 공연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윤지영의 무대에선 베이스가 참 잘 들렸다. 물론 당일의 음향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아 악기 소리가 다 잘 들렸지만, 아름다운 키보드 옆으로 유난히 잘 들리는 베이스가 둥둥 내 심장을 울리는 듯했다. Blue Bird에서 꽃다발을 던져주었는데, 마음먹은 것처럼 던져지지 않는 듯한 꽃다발에 약간 웃음이 나기도 했다.
PITTA(강형호)의 순서는 여러 가지 장르를 들어볼 수 있는 신기한 무대였다. 포레스텔라의 곡들, 락발라드, 미공개 신곡(fuck과 luck을 합친 fluck이라는 제목이었다), 메탈까지! 무대 매너도 굉장했다. 끊임없는 멘트, 고난이도의 노래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Phantom of the Opera의 메탈 버전까지 선보였다. 어머니뻘 팬들이 많은 가수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플레이리스트에 생경한 기분이었다. 당일 잔디밭 관객을 챙긴 유일한 가수였는데, 페스티벌이라는 매체의 성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좋은 공연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돌, 남우현의 무대도 즐겼다. ‘너의 남자’라는 노래가 가장 호응이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인피니트가 아닌 남우현의 노래는 잘 몰라서 따라 부르지는 못했다. 소녀팬을 챙기는 모습에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아이돌의 모습이 보여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전반적으로 밝고 신나는 플레이리스트로 무대를 채워줘서 그 ‘포카포카’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의 페스티벌들과는 다르게 무대가 하나고, 각 공연 순서 사이의 사운드체크 시간이 대부분 10분뿐이어서 굉장히 촉박해 보였다. 드럼 운반을 무대 위 레일로 했으니, 얼마나 촉박한지 눈으로 보이더라. 관객 입장에서는 빠른 진행이 편했는데, 공연자들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화장실 한 번 가면 놓치는 노래들이 생겨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헤드라이너는 준비시간을 길게 주어 음향이 확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소위 ‘시끄러운’ 노래들이 많은 Nothing But Thieves의 노래들이 잘 들렸다.
노을이 지던 순간에 공연했던 NELL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 아름다웠다. 전후의 ‘달리는’ 공연 사이에 마법같이 각인된 불타는 노을과 추억의 ‘기걷시’를 잊지 못할 것 같다. 특히 맑고 까랑까랑한 기타의 톤이 고막에 박힐 듯 예뻐서 더 행복했다. 얼마나 황홀했는지는 아래 사진을 보아주길 바란다.
내년이 기대되는 행사
렛츠락 페스티벌은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 여러 페스티벌과 날짜가 겹쳐 라인업도, 방문 관객 수도 조금 아쉬웠을 수 있겠지만 분명 내일은 더, 내년은 더 많은 사람이 올 행사라고 확신한다. 쨍한 정오의 햇살도, 해질녘의 타오르는 노을도 좋은 음악과 함께하니 피곤해도 행복했다. 내년에 더 좋은 돗자리, 더 좋은 선크림과 함께 돌아와야겠다. 내년에 봐, 렛츠락!